의료계에 부담으로 작용할 현안들이 빠른 속도로 입법 절차를 밟고 있어 긴장감이 고조된다.
의료기관 행정업무 부담을 늘릴 법안부터 의료기관 시설 확충에 대한 의무, 앞서 간호법처럼 보건의료 직역 간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법안 등이 국회에서 대거 논의되며 속도를 내고 있다.
의료기관 의무 신고 ‘출생통보제’ 국회 통과
최근 수원 미등록 영유아 살해·유기 사건으로 사회적 공분이 뜨거운 가운데, 여야가 합의해 신속하게 처리한 법안은 ‘출생통보제’다.
지난 6월 2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가 전체회의에서 출생통보제를 골자로 하는 ‘가족관계 등록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대안)’을 의결한 데 이어 법안은 곧바로 30일 본회의에서 압도적 찬성표(재석 267명 중 266표)를 얻어 처리됐다.
지금까지 의료기관의 아동 출생신고는 선택사항이었기에 보건복지부 온라인 출생신고 사업 등에 대학병원 위주로 참여하고 있었다. 해당 법안이 시행되면 의료기관들은 아동 출생 사실을 지자체에 의무적으로 신고해야 한다.
의료기관이 진료기록부상 출생 정보를 14일 이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 통보하고, 심평원이 전산을 통해 이 정보를 지방자치단체에 대신 등록하는 구조다. 출생정보 등록체계 구축 등을 위해 해당 법안은 공포 후 1년 뒤 시행된다.
그간 산부인과 등 의료계는 행정적 추가 부담 뿐 아니라 신고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시스템 상 문제 등도 의료기관이 떠안을 수 있다는 이유로 출생통보제를 반대해왔다.
이와 관련, 법사위 국민의힘 간사인 정점식 의원은 “의사는 진료기록부만 작성하면 되고 의료기관장은 클릭 한 번으로 심평원에 전송하면 된다”며 “의료기관 부담이 크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정부와 의료계가 협의했다”고 밝혔다.
다만 출생통보제만 시행되면 의료기관 밖 출생이 오히려 늘어날 것이라는 부작용이 예상되면서 ‘보호출산제’와 함께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의료기관이 산모의 익명 출산을 지원하는 것이다.
해당 법이 시행되면 의료기관은 산모가 원한다면 신원이나 개인정보를 파악하지 않고도 출산을 지원해야 한다.
보호출산제는 부작용에 대한 우려 등 여야 이견이 있는 상황이다. 지난달 26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가 제1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고 논의했지만 처리가 불발됐으나 여야는 출생통보제 시행 준비 기간 내 보호출산제 입법을 추진키로 의견을 모았다.
CCTV 설치 임박···환기시설·임종실 설치 등 의무화 촉각
오는 9월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법안 시행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의료기관들은 또 다른 시설 확충에 대한 의무를 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9일 복지위 전체회의에서 의료기관 환기시설 설치 및 임종실 설치 규정을 담은 의료법 개정안(대안)이 의결됐다. 아직까지 법제사법위원회, 본회의 절차가 남아있지만 소관 상임위원회 위원들의 공감을 얻으면서 추이가 주목된다.
해당 법안은 메르스 사태 후 병원 내 환기시설을 의무화하는 법이 만들어졌음에도 유지·관리규정이 없어, 고장난 채 방치되고 청소가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이를 관리하겠다는 취지다.
의료계는 “이미 건축법 등 관련법이 존재하는데 별도 의무와 처벌 규정까지 만드는 게 부적절하다”는 취지로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앞서 대한병원협회는 법안 검토 의견을 통해 “현행대로 건축법, 실내공기질 관리법 등에 의해서 관리 점검되도록 운영되는 것이 바람직하며, 의료기관만을 대상으로 특별한 기준을 신설하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의료기관 환기시설 관리·점검에 관한 사항을 의료법에 별도로 규정할 경우, 관리 및 점검 주체가 이중으로 규정돼 환기시설 관리·점검에 대한 지도·감독 업무가 중복될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복지위 전체회의에서 의결된 의료법 개정안(대안)에는 종합병원, 요양병원 등 일정 규모 이상 의료기관 개설자 준수사항으로 임종실 설치에 관한 사항을 포함토록 하는 내용도 담겼다.
병원협회는 “의무화보다는 병원 자율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임종실 운영 병원은 필요 인력·시설·감염관리 등에 대한 제반 비용을 고려해 건강보험 수가 신설 등 여러 지원책을 종합 검토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보건소장, 의사 없으면 한의사·치과의사·간호사도 임용되나
직역과 관련해서는 지역 보건소장 자리가 의사 외 직역에게 확대, 개방될 예정이어서 직역 간 마찰이 예상된다.
올해만 해도 경산시와 대구시에서 보건소장직을 놓고 ‘의사 대 非의사’ 구도가 펼쳐지며 장기간 임용에 난항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지역 의료계와 지자체가 충돌하는 등 보건소장 의사 임용 원칙 균열은 커지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29일 복지위 전체회의에서 ‘지역보건법 개정안(대안)’이 의결됐다. 이는 기존처럼 보건소장에 의사를 우선 임용하되 치과의사, 한의사, 간호사, 조산사도 임용될 수 있도록 하는 게 골자다.
원안은 “한의사, 치과의사, 간호사, 약사 등 보건의료 전문 지식을 가진 이도 우선 임용한다”는 내용이었지만, 직역 간 입장 차를 인식해 대안에는 ‘의사면허가 있는 사람 중 임용하기 어려운 경우’라는 전제가 추가됐다.
한편, 지난 3월 김동수 동신대 한의대 교수가 ‘지역보건소장 임용 실태 밀 개선 방안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지난 2021년 기준 전국 258명의 보건소장 중 106명(41%)이 의사 보건소장이었다.
지난 10년으로 범위를 넓히면 의사 보건소장 비율은 40% 내외로 유지되는 중이다. ▲2012년 42.5% ▲2014년 39.7% ▲2016년 40.8% ▲2018년 38.9% ▲2020년 41.4%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