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입학정원 확대를 두고 혼선이 가중되고 있다. 300명~500명은 기본으로 ‘1000명 이상’, ‘3000명’ 등 자극적인 수치만 입에 오르내릴 뿐 명확히 확정되지 않았다.
의료계는 숫자만 흘리는 정부를 두고 “아무 계획도 없는 정치적 수사”라고 지적하고 있다.
실제 의대 입학정원 확대를 논의 중인 정부와 국회는 의료 불균형을 해결할 지원책과 자금 확보에 대해 구체적인 계획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돈 들이기 싫어 이렇게 끌어가고 있는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는 최근 지방의료 격차 해소에 나선 다른 선진국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미국 연방 상원 보건·교육·노동·연금(HELP)위원회는 지난 9월 21일 지역 일차진료 관련 프로그램과 의료인력 양성에 260억달러(약 35조2560억원) 이상을 지원하는 법안을 의결했다.
청문회에 이어진 위원회 투표 결과는 14대 7로 나타났다. 민주당 의원 전원과 공화당 의원 3명이 법안을 지지했다. 과거 유사한 법안이 하원 에너지상업위원회에서 공화당에 가로막힌 전력이 있어서 향후 채택까지는 여러 장애물을 넘어서야 하지만 위원회의 의지는 강하다.
법안을 대표발의한 버니 샌더스 상원 보건·교육·노동·연금위원장은 투표 후 성명에서 “미국은 다른 나라보다 1인당 의료비 지출이 2배나 많지만 수백만명의 미국인은 일차진료와 치과진료에 접근조차 어렵다. 의사, 간호사 등 의료인력이 상당히 부족하다. 이번에 초당적인 법안이 의결되면서 그 위기를 해결하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이 법안에는 지역 일차진료 인프라에 대한 다양한 지원책이 마련됐다.
우선 3년간 지역 보건소에 연간 약 7조8500억원의 지원 내용이 포함됐다. 추가로 지역 보건소의 치과진료와 정신건강 서비스 확대에도 약 4조605억원이 할당됐다.
의료 취약지역 의료진에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국가보건의료지원단(NHSC)에는 3년간 매년 약 1조2858억원을 지원된다. 이를 통해 약 2만명의 의료진이 장학금과 채무 감면을 받을 수 있다.
새로운 의료인력 확보에 대한 지원도 담겼다. 보건소전공의수련 프로그램에 향후 5년간 약 2조295억원 지원해 700명의 일차진료 레지던트를 채용하는 것이 목표다. 이를 포함해 2031년까지 총 2800명의 일차진료 인력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더해 2032년까지 2000명의 일차진료 의사를 추가 양성하기 위해 약 2700억원, 2년제 대학을 졸업한 간호사 6만명 양성에 1조6236억원의 보조금이 마련된다.
미국, 면밀한 의료인력 수요 추계 기반해 정책 수립
이 같은 지원금과 의료인력 증가는 단순 추정이 아닌 면밀한 분석에서 비롯됐다. 일례로 미국의과대협회(AAMC)는 인구 증가, 고령화 등 인구학적 요인을 기반으로 2019~2034년 의료인력 수요를 예측했다.
이에 따르면, 2034년 미국 의료수요 대비 활동의사인력 공급은 3만7800~12만4000명 부족할 것으로 예측됐다. 특히 일차진료 의사는 1만7800~4만8000명 부족할 전망이다.
추계를 기반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지방의료를 지원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이번 법안에도 포함된 국가보건의료지원단과 보건소전공의수련 프로그램이 있다.
국가보건의료지원단을 통해 지난 2011~2020년 의료 취약지역의 의사 4만8000여명이 인센티브를 받거나 장학금 및 학자금 상환 프로그램 혜택을 봤다. 이 혜택을 본 의사들은 최소 2년간 의료 취약지역에서 근무해야 한다.
보건소전공의수련 프로그램은 의료 취약지역의 일차진료 레지던트 양성을 지원한다. 2022~2023학년도 미국 23개주 72개 전공의수련보건소에서 960여명의 레지던트를 교육하는 데 총 1억5500만달러(약 2095억원)가 지원됐다.
미국은 이 밖에도 의료진의 임상 현장 복귀를 지원하는 의사 재훈련·재진입 프로그램, 공공서비스 학자금 대출 상환 면제 등을 시행 중이다.
미국 의사부족 관련 정책을 분석한 김현주 국회도서관 해외자료조사관은 “한국 의사 부족 문제는 어느 하나 방안으로는 해결할 수 없으며, 중단기적으로 가능한 모든 정책을 동시에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총량만 증가했다가 실패 맛본 일본...증원 숫자보다 지원책 선행 중요
의대 입학정원 확대 사례로 자주 언급되는 일본도 지역별 장학금, 정주 여건 개선, 의료인력 재배치 시스템을 중심으로 지방의료 격차를 해소하고 있다.
일본은 과거 단순히 의료인력만 늘렸다가 큰 실패를 맛봤다. 지난 1956년 당시 일본 정부는 의료인력을 확보하며 도시에 의사 공급이 이 늘면 경쟁이 심화되면서 시장 원리에 따라 의사 중 일부가 과도한 경쟁을 피해 농어촌 등으로 이주할 것을 기대했다.
이에 따라 1965~1980년 의대 33곳을 신설한 결과, 일본 의사 수는 1990년 인구 10만 명당 171.3명에서 2006년 217.5명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이 정책은 오히려 의사 분포의 지역 불균형을 더 가속화했다. 지난 2006년 기준 서쪽 지역인 도쿠시마현 의사 수는 인구 10만 명당 270.1명으로 평균보다 높다. 반면 동쪽 사이타마현은 인구 10만 명당 135.5명으로 평균보다 훨씬 낮았다.
이후 일본은 2006년 ‘신 의사 확보 종합대책’과 2007년 ‘긴급 의사 확보 종합대책’ 등을 통해 지방 정부의 역할과 지원을 강조한 국가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자체별 정책을 수립해 지역의 의사 부족 현상에 대처해 나가고 있다.
김동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일본 정책을 분석하며 “우리나라는 농어촌 의료인력 확보를 위해 의료인력 총량 증가에 따른 낙수효과를 기대하고 있으나, 일본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농어촌 지역에 근무하는 전담인력을 전문적으로 양성하는 방안 마련을 숙고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