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응급실 뺑뺑이’로 10대 소녀를 사망케 한 대학병원에 대한 정부의 보조금 지원 중단 조치가 정당하다는 판결에 의료계가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배후 진료과 전문의가 없어 부득이 환자를 수용하지 않았음에도 패널티를 부여하는 것은 과도하고, 필수의료‧응급의료 붕괴를 가속화 시킬 것이라는 지적이다.
앞서 서울행정법원은 대구가톨릭대학병원이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제기한 시정명령 취소 소송에서 원고 청구를 기각했다.
지난해 3월 건물에서 추락한 17세 A양이 대구 지역 대학병원과 종합병원 응급실을 전전하다 끝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복지부는 조사 끝에 경북대병원, 계명대동산병원, 대구파티마병원, 대구가톨릭대병원 등에 '정당한 사유 없는 수용 거부'를 이유로 시정명령과 6개월 보조금 지급 중단 처분을 내렸다.
이에 대구가톨릭대병원은 처분이 부당하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신경외과 전문의가 없어 다른 병원을 추천한 것일 뿐 응급의료를 거부한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오히려 무리해서 응급환자를 수용했다가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치게 만드는 게 의료과오에 해당한다고 병원 측은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병원 측 입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응급의료를 요청한 자 또는 응급환자로 의심되는 자에 대해 기초진료조차 하지 않은 경우"라고 판시했다.
이어 "응급실에 시설 및 인력 여력이 있었음에도 수용을 거듭 거절해 결국 환자가 사망에 이르는 중대한 결과까지 발생해 비난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해당 판결 소식을 접한 의료계는 반발했다. 특히 응급의학과, 신경외과, 심장혈관흉부외과, 산부인과, 외과 등 필수의료 분야 의사들이 크게 동요했다.
이들은 응급의료법에 명시된 ‘진료 거부의 정당한 사유’에 해당함에도 불구하고 결과만 놓고 무조건 병원에 책임을 전가하는 행태라며 공분했다.
실제 해당 지침에는 '응급의료자원의 가용 현황에 비춰 응급환자에게 적절한 응급의료를 할 수 없는 경우'는 진료 거부·기피의 정당한 사유 중 하나로 포함돼 있다.
한 대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수술할 의사가 없어도 무조건 환자를 받으라는 판결”이라며 “응급실에 누워 있다 잘못되더라도 그 책임은 고스란히 의사들의 몫”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무리한 정책 추진만 아니었더라도 정상 작동되고 있을 진료현장이었다”며 “정책 실패 책임을 병원과 의료진에 전가하려는 정부 행태에 몸서리가 쳐진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대학병원 진료부원장은 “배후 진료과 의료진이 부재한 상황에서 응급환자를 받는 것은 오히려 치료기회를 잃게 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 응급실에 불을 켜져 있지만 야간, 휴일에는 제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곳이 태반”이라며 “작금의 상황은 환자와 병원 모두에게 재앙”이라고 덧붙였다.
대한전공의협의회 박단 비상대책위원장도 개인 SNS에 “이제 정말 응급실로 돌아가면 안 되겠다”며 “최종 치료가 불가능한데 환자를 어떻게 받으라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이어 “식물인간이 되더라도 심장만 뛰게 하면 되나. 인공호흡기를 달아 놓고 그래도 살려 놨으니 소임은 다했다며 스스로를 위로하면 되는 것이냐”고 덧붙였다.
필수의료를 살리겠다며 추진 중인 정부의 의료개혁이 오히려 필수의료 붕괴에 가속도를 붙이고 있다는 지적도 터져나왔다.
의정갈등 사태로 촉발된 이번 사건 역시 일명 ‘바이탈(vital) 진료과’로 불리는 필수의료 분야 전공의들의 전공 포기와 교수들의 이탈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다.
한 대학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과장은 “이번 판결은 필수의료 기피현상에 기름을 부은 격”이라며 “진료현장 의료진의 절망과 좌절은 형용이 어려울 정도”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소중한 생명을 살리는 필수의료 분야 의료진에 대한 존경은 바라지도 않는다”며 “가슴을 치는 이런 상황이 잦을수록 자괴감만 커져간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