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갈등 사태가 장기화 되면서 우려했던 의사 배출 절벽이 가시화 되는 모습이다. 신규 의료인 관련 각종 시험과 전형에 응시자가 급감하면서 체감도가 확연하다.
의대생, 전공의, 군의관‧공보의, 전문의 등 의료인 양성체계 구조가 붕괴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지만 관계당국은 ‘의료개혁’이라는 구호만 되풀이 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새내기 의사 첫 배출지인 의사 국가시험부터 빨간불이 켜졌다. 의과대학 증원 방침에 반발한 의대생 대부분이 휴학한 가운데 2025년 의사국시 필기시험에는 304명만 접수했다.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에 따르면 지난 10월 8일 마감한 제89회 의사 국가시험 필기시험에 신청서를 접수한 인원은 304명에 불과했다.
올해 1월 치러진 제88회 의사국시 필기시험에 3270명이 접수한 것과 비교하면 90% 이상 급감한 수치다.
통상 의사국시 필기시험은 의대 본과 4학년 3000여명에 전년도 시험 불합격자, 외국 의대 졸업자 등을 포함해 총 3200여명 규모였다.
하지만 이번 의정갈등 사태로 대부분의 의대생들이 휴학에 들어갔고, 학사일정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응시자 역시 급감했다.
실기시험 역시 처참한 상황이다. 지난 7월 마감한 제89회 의사국시 실기시험 접수결과 총 접수자는 364명이 원서를 제출했다. 전년도 응시자(3212명)의 11.3%에 불과한 수치다.
특히 2020년 의료대란 속에 시행했던 제85회 실기시험 응시자수(423명)보다 적다.
당시에도 전국 의대생들은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설립 등에 반대했고, 이들 중 86% 가량이 의사국시 응시를 거부했다.
이후 의료계와 정부 간 합의가 이뤄졌고, 정부는 신규 의사 배출 공백을 막기 위해 이례적으로 다음 해 추가 시험 기회를 부여해 2700여명이 상반기 추가 실기시험을 치렀다.
신규 의사 배출이 급감하면 당장 대학병원 수련시스템 붕괴는 물론 공중보건의사와 군의관 등 인력수급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위기감의 발로였다.
교육과 수련을 마치고 본격적인 진료 역량을 펼칠 수 있는 전문의 배출도 문제다.
대한의학회에 따르면 최근 마감된 제68차 전문의 자격시험 원서 접수결과 평상시 대비 5분의 1 수준인 566명이 지원했다.
제67차 전문의 자격시험에 2782명이 응시한 점을 감안하면 80%가 줄어든 셈이다. 그나마 불합격자 등을 감안하면 내년에 배출되는 신규 전문의 수는 500명 안팎에 그칠 전망이다.
응시자 566명 중 대부분은 내년 2월 전공의 수련을 마칠 예정이며, 80명은 지난 9월 모든 수련을 끝낸 상태다.
전문과목별로 살펴보면 내과가 106명으로 가장 많았고, 가정의학과 92명, 정형외과 57명, 정신건강의학과 42명, 응급의학과 30명, 마취통증의학과 25명, 소아청소년과 24명 순이었다.
피부과(7명), 심장혈관흉부외과(6명), 예방의학과(6명), 진단검사의학과(5명), 방사선종양학과(3명), 핵의학과(1명) 등은 응시자가 한 자리수로 우려를 키웠다.
의사국시 필기‧실기 응시자 90% 줄었고 전문의 자격시험은 예년 대비 1/5 수준
군(軍) 의료 공백 우려 속 내년 전공의 모집 촉각
내년도 신규 의사 배출 절벽이 현실화 되면서 공보의, 군의관 인력공백 우려도 커지고 있다.
통상 의사면허 취득 후 수련병원에 인턴으로 취직할 때 ‘의무사관후보생 전공의 수련 동의서’를 작성하고 신원조회를 거쳐 의무사관후보생으로 선발된다.
매년 1회 모집해 5월 초에 약 1100~1200여명이 선발되며, 이들은 향후 군의관 또는 공중보건의사로 병역 의무를 다한다.
하지만 최근 병무청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의무사관후보생으로 선발된 인원은 전년대비 87% 감소한 184명에 그쳤다.
올해 배출된 병역 의무가 있는 젊은의사 대부분이 의정갈등 사태로 수련병원에 인턴으로 취직하는 것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2025년도 전공의 모집이다. 의정사태로 수련현장을 떠난 1만명의 전공의들 복귀 여부가 의료인력 수급의 결정적 변곡점이 될 전망이다.
보건복지부 수련환경평가위원회는 내달 초 2025년도 상반기 전공의 전형계획을 공고한 뒤 수련병원별 모집에 나설 예정이지만 전망은 그리 밝지 않은 상황이다.
의료계는 요지부동한 정부 탓에 전공의 복귀가 요원한 상황에서 내년 상반기 전공의 모집 역시 무의미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수련병원들의 암울한 전망은 앞서 실패했던 전공의 모집결과에 기인한다. 지난 7~8월 진행된 하반기 전공의 모집 당시 지원율은 1.6%에 불과했다.
실제 수련병원들은 지난 7월 올해 하반기 전공의 채용을 위해 7645명을 모집했으나 지원자는 104명(지원율 1.36%)에 그쳤다.
특히 의사들 선호도가 높은 수도권 '빅5 병원'(서울아산, 삼성서울, 세브란스, 서울성모, 서울대)에도 지원자가 45명에 불과했다.
정부는 전공의에게 수련 복귀 기회를 최대한 부여하겠다는 취지로 추가모집도 실시했지만 이조차 지원자는 0명에 가까웠다.
의료계 한 인사는 “의료현장에서는 당장 내년도 신규 전문의와 의사인력 배출 절벽이란 전대미문의 재앙적 상황이 닥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어 “정부의 의대 증원 추진 이후 한국 의료계는 한마디로 ‘총체적 난국’”이라며 “이제 한국 의료는 그야말로 공멸 또는 극적 타개의 기로에 서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