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정부가 해내지 못한 걸 이루겠다"며 4대 개혁 중 하나로 의료개혁을 시작한 윤석열 前 대통령이 취임 2년 11개월 만에 파면됐다.
의대 2000명 증원·필수의료패키지 등 '윤석열표' 의료개혁이 동력을 상실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4일 오전 헌법재판소 재판관 8인 전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인용했다. 12·3 비상계엄이 단초가 됐다.
이에 지난해 4월 출범한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는 수장을 잃었다.
임기는 이달까지였지만 최근 임기 1년 연장이 결정된 상태였다. 그러나 연장도 어려워질 수 있단 전망이 지배적이다.
의개특위는 지금까지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2차 병원 육성 및 실손·비급여 개혁,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 등을 골자로 하는 의료개혁 실행 방안을 2차례 발표했다.
조만간 초고령사회 대비 의료전달체계 개선 및 미용시장 관리체계 구축안 등을 담은 3차 실행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런 가운데 기존 예측됐던 '개원면허제'는 당장은 추진하지 않기로 한 상태다.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시범사업은 이미 47개 상급종합병원이 모두 참여 중인 상황이지만, 이를 포함해 나머지 과제들이 정권이 교체되면 표류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정부가 내세운 지역·필수의료 강화라는 방향성은 코로나19와 응급실 표류사고 등으로 이미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고, 의료계 또한 동의하기에 형식이 달라져도 계속 추진될 수 있다.
의료개혁 향배를 놓고 의료계와 시민단체·노동계·환자단체가 그리는 전망은 다소 차이가 있다.
대한의사협회, 대한전공의협의회,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 등 의료계는 "일방 강행한 의료정책을 즉각 중단하고 지속가능한 미래 의료를 위해 대화의 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동계는 의료개혁 방향성을 바꿔 '올바른 개혁'으로 바꿔나가야 한다고 봤다.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는 "의사 중심, 대형병원 중심이 아니라 공공성 강화에 중심을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는 "의료민영화로 들통난 윤석열의 의료개혁부터 폐기하자"며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 치료와 돌봄을 받을 수 있는 공공의료·공공돌봄을 쟁취하자"고 선언했다.
반면 의료대란을 겪으면서도 정부를 믿고 의료개혁을 지지해 온 중증환자들은 "탄핵 정국으로 의료개혁이 중단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윤석열의 파면은 계엄이라는 무리수의 책임을 물은 것이지, 의료개혁과는 무관하다. 의료계는 백지화 요구를 멈추라"며 "지난 1년 간 환자들의 피눈물을 외면한 정책 노선 변경은 결코 안 된다"고 울분을 토했다.
···한덕수 총리 "차기선거 관리 최선"·우원식 의장 "국정협의회 역할 중요"
대통령 탄핵과 동시에 대선레이스가 시작된다. 차기 대선일은 6월 3일이 유력하다. 한편, 정부는 대선 정국 동안 역할 수행에 최선을 다한다는 입장이다.
한덕수 국무총리 대통령 권한대행은 이날 대국민담화문을 통해 "국민 여러분의 뜻을 받들어 헌법과 법률에 따라 다음 정부가 차질 없이 출범할 수 있도록 차기 대통령 선거관리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나라 안팎으로 엄중한 상황인 만큼 정부 운영에 소홀함이 없도록 모든 공직자들은 책임 있게 임해주길 바란다"며 "정치권과 국회에도 차이를 접어두고 힘과 지혜를 모아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국회도 국정 공백 최소화를 위해 노력할 예정이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이날 오후 국회에서 대국민담화를 열고 "국회 중심부터 잡겠다"고 밝혔다.
우 의장은 "오늘 헌재의 결정은 어느 한 쪽의 승리가 아니다. 헌법과 민주주의 승리다. 대한민국에서 그 누구도 법 위에 군림할 수 없음을 거듭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국회부터 중심을 잡고, 각 정당 간에, 정부와도 소통과 협력을 강화해 국정 공백을 최소화하겠다"면서 "기쁘게 진행돼야 할 대통령 선거 일정이 현안의 블랙홀이 되지 않도록 국정협의회가 분명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헌재는 윤 前 대통령의 포고령이 헌법은 물론 계엄법 조항을 위반했다고 봤다. 해당 포고령 5항에는 '전공의 등 의료인은 24시간 내 복귀하고, 위반 시 계엄법에 의해 처단한다'는 이례적인 내용이 담겨 의료계의 큰 반발을 불렀다.
헌재는 직접적으로 의료인 내용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비상계엄하에 기본권을 제한하는 요건을 정한 헌법, 계엄법 조항, 영장주의를 위반해 국민의 정치적 기본권·단체행동권·직업의 자유 등을 침해했다"고 일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