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의 전반적인 건강을 책임지는 ‘내과’가 젊은 의사들에게 외면받고 있는 가운데 일선 임상 현장에서 이를 분석한 연구 결과가 발표돼 이목이 집중된다.
대표 진료 중 하나로 불리던 내과가 ‘기피과’라는 오명을 쓰게 된 배경에는 변화한 의료환경과 세대 간 인식 차이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최근 이진호·우종신 경희의료원 심장내과 교수는 대한내과학회지(Korean Journal of Medicine)에 ‘젊은 의사가 내과의사를 하지 않는 이유(Why Young Doctors are not Choosing Internal Medicine)’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연구에서 “내과 지원 기피 현상이 단순한 선호도의 문제가 아니라 향후 중환자 진료 등 필수의료 기반을 위협하는 구조적 문제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환자 지키려다 의사 무너지고 보람보다 리스크가 더 크다"
논문에 따르면 젊은 의사들이 내과를 기피하는 주된 이유는 ▲과도한 업무량 ▲낮은 보상 ▲높은 법적 책임이다.
특히 병동·중환자실·응급실 등에서 환자 상태 변화에 지속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내과 특성상, 업무 강도는 매우 높지만 이에 상응하는 대우는 부족하다는 점이 부정적 인식의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교수는 “내과는 사람을 살리는 진료과라는 점에서 여전히 매력적이지만, 생사를 넘나드는 진료 과정에서 의료진이 감당해야 하는 사회적 기대와 법적 리스크는 과거보다 훨씬 커졌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최근 의료소송이나 민원 사례가 SNS나 커뮤니티를 통해 빠르게 공유되면서, 내과 전공의들은 일찌감치 “법적으로 덜 위험한 진료과”로 눈을 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내과는 손해 보는 전공" 인식 확산
의료계 내부 사정에 밝은 젊은 의사들은 이제 과거처럼 "막연한 사명감"으로 진로를 선택하지 않는다.
커뮤니티, 익명 SNS, 온라인 수련 후기 등을 통해 각 진료과의 업무강도, 당직 빈도, 수익 구조, 병원 내 평가 등이 손쉽게 공유되면서, 수련과 진료 이후의 ‘삶의 질’이 진로 결정의 핵심 지표가 된 상황이다.
이 교수는 “삶의 균형을 추구하는 젊은 세대는 내과 특유의 강도 높은 업무와 낮은 보상, 법적 부담을 감당하려 하지 않는다”며 “이러한 분위기는 단순히 개인의 가치관 변화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추구하는 노동 패러다임 변화와 맞닿아 있다”고 진단했다.
또 내과 내에서도 일부 세부 전공의 경우 시술까지 병행해야 하지만, 그에 비례한 보상은 이뤄지지 않고 있어 상대적 박탈감을 키우는 원인이 되고 있다.
고령화 만성질환 증가 사회서 중요한 내과 기반 흔들
의료계에서는 이 같은 흐름이 장기화될 경우 고령화와 만성질환 증가에 대비한 국가 필수의료체계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내과 의사가 줄면 중증·응급 진료에 큰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내과학회를 중심으로 한 혁신적인 근무환경 개선과 보상체계 개편, 법적 리스크 완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며 “특히 인공지능(AI) 및 디지털 헬스 기술을 활용해 내과 진료 업무 효율성을 높이는 구조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내과 수련 과정 전반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수련 초기부터 과도한 당직과 책임을 지는 구조가 젊은 의사들에게 내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심는 만큼, 전공의법을 포함한 제도 개선 논의도 병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지금은 젊은 의사들을 질책할 때가 아니라 그들이 왜 내과를 떠나는지 귀 기울이고, 현실적인 대안을 모색할 때다. 단순한 호소가 아닌 실질적 정책 변화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내과가 다시 보람 있는 진료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선 학회와 정부, 병원 모두 역할을 나누고 책임 있게 움직여야 한다”며 “지금이야말로 과감한 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