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갈등 해법 핵심 과제 '전공의 수련'
'전공의=값싼 노동력' 종료…의료계, 수련환경 개선 포함 '미증유 길'
2026.01.02 10:12 댓글쓰기



의정(醫政) 갈등이 전공의들의 복귀로 일단락되며 의료 현장은 표면적인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다. 그러나 2025년, 대한민국 의료계는 그 어느 때보다 거대한 지각변동의 중심에 서 있다. 이번 사태는 ‘K-의료’의 화려한 성과 뒤에 숨겨져 있던 ‘전공의 착취’라는 기형적 구조를 만천하에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더 이상 과거의 도제식 수련과 착취에 가까운 노동 강도로는 의료 시스템을 지탱할 수 없다”는 뼈아픈 자성 속에, 국회와 정부는 ‘수련환경 법적 강제’와 ‘국가 재정 투입’이라는 칼을 빼 들었다. 국회 보건복지위 법안소위를 통과한 ‘전공의법 개정안’의 상세 내용과 보건복지부의 ‘혁신 지원 사업’을 입체적으로 분석하고, ‘전공의 수련 국가책임제’로 가는 과도기에서 의료계가 마주한 기대와 우려, 그리고 남겨진 과제들을 심층 진단한다. 


현장 “인프라 없는 시간 단축은 재앙”…‘교육 질(質)’ 담보 딜레마


대한민국 전공의 수련환경이 1950년대 인턴제 도입 이후 가장 급진적인 변화 시기를 맞이했다. 


국회와 정부가 주도하는 이번 개혁은 단순히 근무시간을 줄이는 ‘복지’ 차원을 넘어, 전공의를 저임금 근로자에서 ‘피교육자’로 재정의하고, 병원 인력 운용 구조 자체를 ‘전문의 중심’으로 뜯어고치는 ‘의료 개혁’ 성격을 띠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가 최근 의결한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이하 전공의법)’ 개정안은 수련환경 ‘마지노선’을 법적으로 확정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가장 파급력이 큰 조항은 단연 ‘연속근무 24시간 제한’이다. 현행법상 36시간(응급 상황 시 40시간)까지 허용되던 연속근무가 24시간(응급 시 28시간)으로 대폭 축소된다. 


이는 미국(24시간), 유럽(24시간) 등 의료 선진국 기준을 준용, 수면 부족으로 인한 전공의 집중력 저하와 이에 따른 환자안전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조치로 해석된다.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여야 의원들이 발의한 4건의 법안을 병합 심사한 이번 개정안에는 전공의들의 ‘방어권’을 보장하는 내용도 다수 포함됐다. 


특히 ‘의료사고 배상 책임보험 가입 지원’ 및 ‘병원장의 법률적 지원 의무화’ 조항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동안 전공의들이 필수의료과 지원을 기피했던 핵심 원인 중 하나인 ‘사법 리스크’에 대해 병원이 1차적인 방패막이 역할을 하도록 법제화했기 때문이다.


또 부당한 처우나 개인 사정으로 휴직한 전공의가 복귀할 때, 병원이 ‘동일 연차 및 동일 과목 복귀’를 보장하도록 명시했다. 


이번 조치는 수련 과정에서 불이익을 우려해 부당한 지시를 감내해야 했던 수직적인 문화를 개선할 법적 근거가 될 전망이다.


‘기울어진 운동장’ 수평위, 전공의 지분 확대


수련환경 정책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수련환경평가위원회(수평위)’ 인적 구성 개편도 이번 법안의 핵심 성과다. 


그동안 수평위는 병원 경영진을 대변하는 위원 비중이 높아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웠다.


개정안은 수평위 위원(총 15명) 구성을 대한병원협회(사용자) 4명, 대한전공의협의회(근로자) 4명, 대한의학회(교육자) 4명으로 동수 배정하고, 나머지 3명을 복지부 공무원과 전문가로 채우도록 했다. 


이는 노-사-정이 동등한 위치에서 정책을 논의할 수 있는 ‘황금 비율’을 맞춘 것으로, 향후 전공의 정원 배정이나 수련병원 지정 취소 등 민감한 사안에서 전공의측 입장이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의료계 관계자는 “과거 수평위에서는 전공의 위원들이 소수의견을 내는 데 그쳤으나, 이번 개편으로 인해 병원협회의 일방적인 주장이 관철되기 어려운 구조가 됐다”며 “이는 수련 정책의 민주성을 확보하는 중요한 전환점”이라고 평가했다.


행정부 지원…“교육 비용, 이제 국가가”


입법부가 ‘규제’를 강화했다면 행정부는 ‘재정’이라는 당근을 제시했다. 


보건복지부는 사상 처음으로 전공의 수련 비용을 국가 예산으로 지원하는 ‘2025년 전공의 수련환경 혁신 지원 사업’을 확정하고, 상급종합병원 35곳과 종합병원 25곳 등 총 60개소를 선정했다.


이 사업의 핵심은 ‘지도전문의 내실화’다. 그간 대학병원 교수들에게 전공의 교육은 진료 수익 창출 압박에 밀려 ‘부수적인 업무’ 혹은 ‘무보수 봉사’로 치부돼 왔다. 


정부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수련 과정을 총괄하는 ‘책임지도전문의’와 교육을 전담하는 ‘교육전담지도전문의’를 지정하고, 이들에게 국고로 수당을 지급하기로 했다. 


단순히 돈을 주는 것을 넘어, 병원이 체계적인 교육 커리큘럼을 짜고 운영토록 강제하는 효과를 노린 것이다.


또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등 필수의료 8개 과목에 대한 집중 지원과 함께, 소아청소년과 전공의에게 지급되던 월 100만 원의 수당을 분만, 응급 등 타 필수과목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이는 붕괴 직전인 필수의료 인프라를 ‘사람’에게 투자하여 살려내겠다는 정부 의지가 반영된 대목이다.


특히 인턴 수련 과정 대수술이 예고됐다. ‘의사면허를 가진 잡역부’라는 오명을 썼던 인턴들에게 전담 지도전문의를 붙여, 실제 환자 진료에 필요한 술기를 익히는 교육 과정으로 탈바꿈시킨다는 계획이다.


‘수련 시간’ 줄었는데 ‘공백’ 누가 메우나?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장에서는 기대보다 우려 목소리가 높다. 가장 큰 문제는 전공의 근무 시간 단축에 따른 ‘업무 공백’과 ‘비용’이다.


전공의가 24시간 근무 후 퇴근하면, 야간 당직이나 응급 콜을 받을 대체 인력이 필요하다. 정부와 병원계는 이를 ‘진료지원(PA) 간호사’와 ‘전문의’로 메우겠다는 구상이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전문의 채용은 지방 병원일수록 ‘하늘의 별 따기’며, PA 간호사 역시 법제화 과정에서 업무 범위에 대한 직역 간 갈등이 여전한 불씨로 남아 있다.


지방 국립대병원 기조실장은 “전공의 1명이 줄어든 시간을 전문의로 대체하려면 인건비가 3~4배 더 든다”며 “정부 혁신 지원 사업비는 마중물 수준일 뿐, 근본적인 수가 인상 없이 병원에게 인력 충원을 강요하면 결국 경영 악화와 진료 축소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수련시간 감소, 질적 저하 우려


외과계 교수들은 ‘수련의 연속성’ 단절을 심각하게 우려한다.

 

수술이 10시간 이상 걸리는 고난도 수술이나 중환자관리는 전공의가 환자 상태 변화를 끝까지 지켜보는 것이 중요한 교육 과정이다. 


그러나 기계적인 24시간 제한이 적용될 경우, 수술 도중에 전공의를 내보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서울 소재 상급종합병원 흉부외과 교수는 “미국의 경우 근무 시간을 제한해도 철저한 ‘인계인수 시스템’과 ‘백업 인력(Hospitalist)’이 갖춰져 있어 환자 안전에 문제가 없다. 하지만 우리는 인프라 없이 시간만 줄이다 보니, 전공의들이 환자를 ‘보다가 마는’ 경험만 쌓고 전문의가 될까 두렵다. 이대로라면 ‘수술 못하는 외과 의사’가 양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국립대병원을 중심으로 ‘권역 임상 교육 훈련 센터’를 확대해 시뮬레이션 교육을 강화하겠다고 밝혔지만, 실제 환자를 보며 체득하는 임상 경험을 얼마나 대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건보재정’ 땜질 처방 넘어 ‘별도 기금’ 조성


결국 모든 문제는 ‘지속 가능한 재원’으로 귀결된다. 현재 정부 지원책은 대부분 건강보험 재정에서 끌어다 쓰는 방식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에 불과하며, 건강보험 재정이 고갈되면 지원도 중단될 수밖에 없는 불안정한 구조라고 지적한다.


이 때문에 의료계와 국회 일각에서는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을 위한 별도 기금’ 조성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담배소비세(건강증진부담금)의 일정 비율을 전공의 수련 지원에 의무 할당하거나, 미국의 메디케어(Medicare) GME(Graduate Medical Education) 지원 시스템처럼 국가 예산 항목에 ‘전공의 수련비’를 법제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립의대 예방의학교실 관계자는 “전공의 수련은 사립병원에 속해 있더라도 공공재적 성격을 띤다”며 “안정적인 재원 확보 없이 병원의 자구 노력에만 기댄다면, 이번 개혁 역시 과거 ‘전공의법’ 제정 때처럼 선언적 의미에 그칠 공산이 크다”고 제언했다.


‘전문의 중심 병원’으로 가는 과도기, 진통은 필연


의정 사태가 남긴 상처는 깊지만, 역설적으로 한국 의료 시스템을 선진화할 기회를 제공했다. ‘값싼 전공의’에 의존하던 병원은 이제 생존을 위해서라도 ‘전문의 중심 병원’으로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


법안소위를 통과한 ‘24시간 제한법’과 정부의 ‘재정 지원’은 그 시작점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책의 디테일을 다듬는 정교함이다. 


▲현장 혼란을 최소화할 단계적 로드맵 ▲PA 간호사와의 명확한 업무 분장 ▲교육 질을 담보할 평가 체계 고도화 ▲그리고 무엇보다 흔들리지 않는 재정 지원 법제화가 맞물려야 한다.


전공의 수련환경 변화는 단순히 의사들 ‘워라밸’ 문제가 아니다. 이는 곧 환자가 만나는 의사 실력과 직결되는 문제이며, 대한민국 의료 미래 경쟁력을 좌우할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다. 정부와 의료계가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실질적인 ‘수련 혁명’을 완수해낼지 귀추가 주목된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겨울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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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답변 글쓰기
0 / 2000
  • 이상원 01.03 08:17
    필수만 아니라 보상보험

    <br/>모든 의사는 보험 가입하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