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료사고 발생 시 형사책임 부담을 완화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이 발의되면서 의료계와 환자단체 간 입장 차가 다시 부각되고 있다.
필수의료 인력 이탈을 막기 위한 제도 필요성에는 공감대가 있지만, 형사특례 범위를 둘러싼 해석은 뚜렷하게 엇갈리는 분위기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최근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관련 법 개정안에 대해 입장문을 내고 “필수의료 기피 현상 위기를 극복하려는 개정안 입법 취지에는 공감한다”면서도 “환자 생명권과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할 수 있는 규정에 대해서는 명확한 반대 의견과 조건부 찬성을 밝힌다”고 했다.
이어 “안전한 진료환경 조성과 환자의 생명권·재판받을 권리는 함께 보장돼야 한다”며 “필수의료 기피 해소라는 명분 아래 환자 기본권을 침해하는 입법이 이뤄져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김윤·박희승 의원과 국민의힘 한지아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이들 개정안은 의료사고 예방부터 사후 구제까지 전(全) 과정을 포괄하는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을 목표로 마련됐다.
공통 내용으로는 의료사고심의위원회 설치 및 의료기관 배상책임보험 가입 의무화, 반의사불벌 특례 적용 범위 확대, 기소 제한 특례 등이 포함됐다.
심의위원회는 필수의료행위 해당 여부와 중대한 과실 여부를 판단하는 기구로 의료인·법조인·환자단체·공무원 등 20인으로 구성되며 심의 기간 동안 수사기관 소환을 자제토록 했다.
형사절차 특례는 형 감경, 반의사불벌, 공소 제한 구조로 설계됐다. 설명의무를 이행하고 책임보험 또는 공제에 가입한 경우 형 감경이 가능하며, 조정·중재가 성립되고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을 경우 공소제기 제한 범위는 기존 경상해에서 중상해까지 확대된다.
또 필수의료행위 가운데 중대한 과실이 없고 손해배상이 완료된 경우 상해·사망 여부와 관계없이 수사기관의 공소 제기를 제한할 수 있도록 했다.
피해구제 장치도 포함됐다. 무과실 보상 대상은 기존 분만 사고에서 필수의료 전반으로 확대됐고, 중대한 의료사고 발생 시 의료기관 설명 의무가 명문화됐으며 필수의료 고위험 진료 특성을 고려한 보험료 국가 지원 근거도 담겼다.
이에 연합회는 특히 공소제기 제한 특례에 대해 반대 입장을 피력했다. 이들은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업무상 과실에 대해 합의나 배상만으로 검사의 공소권을 원천 박탈하는 제도는 우리나라 법체계상 유례가 없으며 법적 정의에도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상해보다 법익 침해가 훨씬 중대한 사망까지 공소를 제한하는 입법은 위헌 판단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또한 “소방·경찰·군인 등 고위험 공익 종사자에게도 허용되지 않는 형사면책 특권이 의료인에게만 부여되면 특정 직역에 대한 과도한 특혜이자 형평성 위배”라며 “보험으로 해결하면 그만이라는 식의 형사면책은 의료인 안전 확보를 무력화시키고, 결과적으로 환자 생명을 경시하는 사회적 풍조를 조장할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어 “특례 적용 범위를 난도 높은 고위험 기피과 필수의료 붕괴를 막기 위한 공익적 목적을 넘어 광범위하게 확대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수용되기 어렵다”며 “범위를 응급, 외상, 분만, 중증소아로 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의료계 “의료사고 발생 시 형사절차 우선 진행되는 구조 타파 절실”
반면 의료계에서는 형사책임 부담 완화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다. 의료사고 발생 시 형사절차가 우선 진행되는 구조가 고위험 진료과 지원 감소와 방어진료 확산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문제 제기가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특히 응급·외상·분만 등 고위험 필수의료 분야는 진료 특성상 예측 불가능한 합병증과 사망 위험이 존재하는 만큼 형사 책임 기준을 일반 진료와 동일하게 적용하는 것은 구조적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의료계에서는 형사처벌 부담이 방어진료를 유발하고 결과적으로 의료비 상승과 진료 지연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우려한다.
의료사고 분쟁이 조정이나 민사 절차보다 형사 수사 중심으로 진행되는 구조 자체가 의료현장 위축을 낳는 요인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중증환자를 다루는 진료과일수록 치료 난이도와 불확실성이 높은데도 동일한 형사 책임 기준이 적용되는 것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수도권 소재 상급종합병원 A 교수는 “필수의료는 본질적으로 위험도가 높은 진료인데 결과만 놓고 형사 책임을 묻는 구조가 지속되면 결국 해당 분야를 기피하게 될 수밖에 없다”며 “환자 보호와 의료진 보호를 함께 설계하지 않으면 필수의료 붕괴 문제는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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