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한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을 둘러싸고 의사단체 간에도, 환자·소비자단체 간에도 찬반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동일한 법안을 두고 사법 리스크 완화 및 피해자 권리, 신속한 보상 등 서로 다른 가치가 충돌하면서 찬반 구도가 단순한 대립을 넘어 다층적으로 전개되는 양상이다.
경기도의사회는 지난 17일 성명을 내고 해당 개정안을 “붕괴 직전 필수의료를 소생시키기는 커녕 면책이라는 사탕발림 속에 ‘처벌의 덫’을 숨겨놓은 희대의 기만책”이라며 즉각적인 법안 강행 처리 중단을 요구했다.
이번 개정안은 필수의료행위 과정에서 의료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중대한 과실이 없고 설명의무 이행, 책임보험 가입, 손해배상 등의 요건을 충족할 경우 형사 기소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경기도의사회는 “의료사고심의위원회 설립 목적이 의사에 대한 수사와 책임 추궁임을 분명히 명문화하고 있다”며 “비전문가들이 120일 안에 의사 과실 여부와 특례 적용 여부를 심의·결정하는 초법적 권한”이라고 비판했다.
사고 발생 후 7일 이내 경위를 설명토록 한 조항에 대해서도 “의사에게 자백을 강요하는 독소조항”이라며 “정확한 사인 규명조차 어려운 상황에서 이뤄지는 설명은 향후 법적 분쟁에서 의료진을 옥죄는 족쇄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와 함께 중대한 과실 기준과 관련해 “범위가 지나치게 모호하고 광범위하다”며 “단지 결과가 나쁘다는 이유만으로 의학적 판단을 중과실로 매도한다면 어느 의사가 소신 있게 생명을 다루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책임보험 의무화에 대해서는 “국가 책임을 회피하고 의사에게 비용을 전가하는 ‘강제 보험’을 거부한다”며 “필수의료 유지를 위한 재정 지원은 외면한 채 의사에게 책임보험 가입을 강제하고 비용을 떠넘기는 것은 명백한 국가의 직무 유기”라고 주장했다.
반면 대한의사협회는 앞서 상반된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의협은 지난 12일 “필수의료 분야 사법리스크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개정된 부분에 환영의 입장을 표한다”며 “의정협의체에서 실무적으로 논의를 진행하면서 의료계 우려를 전달했고 이런 내용이 정부안(案)에 많이 반영돼 개정안이 진행되는 것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12대 중과실 기준이 해석 여지가 넓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점과 심의기구에 대한 의구심은 여전히 지적할 부분”이라며 “책임보험 의무화 역시 필수와 비필수 의료로 구분하면서 발생하는 모순을 어떻게 법안에 반영할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면서 경기도의사회와 일부 유사한 문제를 제기했다.
공동행동·중증질환연합회 찬성…환자단체연합회·경실련 반발
같은 의료계 내부에서도 평가가 엇갈리는 가운데 환자·시민사회단체 역시 일치된 입장을 보이지 않고 있다.
‘더 나은 의료시스템을 함께 만들어 나가는 의료소비자·공급자 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은 지난 17일 성명을 통해 이번 개정안의 보건복지위원회 통과를 환영했다. 다만 일부 조항에 대해서는 보완 필요성도 함께 제기했다.
공동행동은 “환자와 의료진 간 소통을 위한 법적 안전망을 마련하고, 피해에 대한 재정적·심리적 지원을 강화하며, 형사기소 이전 의학적 판단 절차를 도입하는 등 피해자의 고통을 덜고 의료체계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개정안”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의료사고 판단 과정에서 의료진 개개인의 과실 여부를 밝혀내는 데 집중하기보다는 사건의 근본 원인을 조사해 시스템 미비를 파악하고 개선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의사가 고의적인 해악을 가했는지, 정상적인 판단이 가능한 상태였는지, 현장 프로토콜이나 절차를 위반했는지, 비슷한 수준 의료진이라면 저지르지 않았을 과실인지, 정상 참작 사유가 있는지 등을 순차적으로 따져 개인 과실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국중증질환연합회도 지난 16일 “해당 법안을 강력히 지지한다”며 “환자와 가족에게 실익이 되지 않는 언쟁을 끝내고 환자 생존을 돕는 안전망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환자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끝없는 법정싸움이 아니라 사고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와 신속한 보상”이라며 제도 방향성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와 달리 환자단체연합회 등은 형사면책으로 인한 재판받을 권리 침해와 환자 안전 약화 우려를 이유로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환자단체연합회는 “과실 인정이나 사과·유감 표현 없이 보험으로 해결하면 그만이라는 식의 형사면책은 의료인 안전 확보 노력을 무력화시키고, 환자 생명을 경시하는 사회적 풍조를 조장할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업무상 과실에 합의나 배상만으로 검사 공소권을 원천 박탈하는 제도는 우리나라 법체계상 유례가 없고 소방·경찰·군인 등 고위험 공익 종사자에게도 허용되지 않는 형사면책 특권”이라고 덧붙였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도 해당 개정안에 대해 “환자의 사망이나 중상해 의료사고에도 형사기소를 제한하는 것은 환자 안전과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위헌적 규정”이라고 반발했다.
이처럼 이번 개정안은 동일한 제도를 두고도 의료계와 환자·시민사회 내부에서 서로 다른 판단이 이어지며, 향후 입법 과정에서 추가 논의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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