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별기고] 만성콩팥병(Chronic Kidney Disease, CKD)은 더 이상 특정 환자군 질환이 아니다. 고령화와 당뇨병, 고혈압의 증가로 인해 우리 나라에서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대표적인 ‘복합만성질환’이다.
문제는 이 질환이 상당히 진행될 때까지 뚜렷한 증상이 없다는 점이다. 콩팥 기능을 콩팥점수(100점 만점, 높을수록 좋음)로 알기 쉽게 표현하는데 기능 90%가 망가져 10점이 될 때까지 증상은 뚜렷하지 않다. 이로 인해 조기 발견이 어렵고, 정기적인 검사를 통해야만 악화 속도를 알 수 있게 되고 이에 따른 대처를 하게 된다.
실제로 당뇨병, 고혈압, 심장질환, 뇌경색 등을 앓고 있는 많은 환자들이 뒤늦게 신장내과를 찾아와 비로소 투석이나 이식과 같은 신대체요법을 고려하게 된다. 만성 콩팥병이 “복합만성질환”이기 때문에 잠재된 환자들은 무수히 많다.
이 시점에서 환자와 의료진은 중요한 선택을 마주한다. 대부분은 혈액투석과 복막투석, 두 가지 치료 방법 중 하나를 결정해야 한다. 신장이식은 가족이던 뇌사자이던 간에 누군가에게 정상 기능을 하는 콩팥을 기증받아야 하기 때문에 제한적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환자 상태와 선호가 충분히 반영되기보다는 고착화된 의료환경과 정보 접근성의 한계로 인해 선택이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복막투석은 분명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복막투석은 환자 복강 내에 존재하는 복막을 이용해 노폐물과 수분을 제거하는 방식이다. 혈액투석과 달리 병원을 주 3회 방문하지 않아도 되고, 환자가 일상생활을 유지하면서 치료를 지속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장점이 있다.
특히 고령 환자나 거동이 불편한 환자, 또는 직장생활을 유지해야 하는 환자에게 복막투석은 경제적인 사회 활동을 가능케해 환자 및 가족들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는 중요한 대안이 된다.
또한 복막투석은 초기 잔여 콩팥 기능을 더 잘 보존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심혈관계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다. 이는 환자 예후와 직결되는 중요한 요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복막투석 비율은 약 5% 내외로 주요 선진국 20~30% 수준에 비해 현저히 낮으며, 오히려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단순히 의료적 문제라기보다는 구조적이고 정책적 문제의 결과로 봐야 한다.
환자 교육 부족 및 인프라 불균형 등 총체적 난관
첫째, 환자 교육 부족이다. 많은 환자들이 투석을 시작하는 시점에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한다. 치료 선택이 ‘설명 후 동의’가 아닌 ‘권유 후 수용’ 형태로 이뤄지는 경우가 여전히 적잖다.
복막투석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과 상담 프로그램이 부족한 현실에서 환자 스스로 적극적인 선택을 하기란 쉽지 않다. 다행히 최근에 확대된 ‘복막투석 재택관리 시범사업’에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유의사결정 과정’을 시범사업 안에 반영해 환자 선택지를 넓히고 있다.
둘째, 의료 인프라 불균형이다. 복막투석은 환자 교육 및 감염 관리,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를 뒷받침할 전문인력과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러나 제대로 된 건강보험 보상체계가 없어 서울과 지방, 대형병원과 의원급 의료기관 역량 차이가 클 수 밖에 없다. 이 또한 필수의료 영역인데도 말이다.
셋째, 결국은 정책적 지원의 부재다. 복막투석은 장기적으로 의료비 절감 효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초기 교육 및 관리에 대한 보상 체계는 충분하지 않다. 의료진이 복막투석을 적극적으로 권장하기 어려운 현실적인 구조적 이유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별 의료기관이나 민간학술단체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국가 차원의 체계적인 관리와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올해 2월에 발의된 ‘만성콩팥병 관리법안’ 필요성이 대두된다.
만성콩팥병 관리법안은 복합만성질환인 만성콩팥병을 치료하는 수준을 넘어, 조기 발견부터 치료 선택, 장기 관리까지 전주기를 아우르는 국가적 전략을 담고 있다.
특히 투석 치료 선택 과정에서 환자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고, 복막투석을 포함 다양한 치료 옵션이 공정하게 제공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법제화해 다른 선진국들의 국가 주도 콩팥병 관리체계를 국내에도 확립하려는데 의의가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식 전환이다. 투석은 단순히 생명을 연명하기 위한 치료가 아니라 환자 삶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이다. 복막투석은 환자에게 ‘병원 중심 삶’이 아닌 ‘삶 속의 치료’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두 젊은 부부 사연, 복막투석 삶의 질(質) 개선 ‘기여’
작년 말 두 젊은 부부가 진료실로 찾아왔다. 남편은 면역글로불린 A 신증(Ig A nephropathy)이라고 하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많은 사구체 신염을 10대 후반에 진단받았고, 10년간 악화돼 결혼한 지 6개월 만에 투석을 해야하는 상태가 됐다.
두려움에 떨리는 부인 목소리와 얼굴 표정에 전문가로서 용기를 주고 싶었다. 삶에 대한 희망을 주고 싶었다. 우선 신장이식에 대한 설명을 했지만 당사자들은 콩팥을 공여 받을 상황이 되지 않았다.
아내가 본인 콩팥을 주겠다고 했으나 남편은 극구 반대했다 최근 가족 간 콩팥 공여보다는 뇌사자 콩팥 공여를 원하는 분들이 훨씬 많다. 당연한 일이다. 아내 건강이 자신의 건강보다 더 소중했을 것이다.
나는 두 부부에게 뇌사자공여 신장이식을 목표로 하고, 콩팥을 받을 때까지는 복막투석으로 투석 생활을 하며 기다리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환자 자신이 집에서 직접 복막투석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두 부부를 더욱 두렵게 한 눈치였다.
그들에게 복막투석은 별다른 큰 기술이 필요없고, 시간이 자유로우며 무엇보다도 직장을 계속 다닐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해줬고 남편은 그게 가능하냐고 반문했다. 진료실에서 부부 핸드폰에 있는 유튜브앱을 열어 ‘내신장이 콩팥콩팥 복막투석’을 검색하게 했다. 대한신장학회에서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로 환자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많은 의학적 컨텐츠가 있다.
특히 20대 청년이 투석을 시작하며 무너졌던 멘탈을 복막투석으로 바꾸면서 친구들과 운동도 하고 여행도 하며 많이 제자리를 찾았다는 쇼츠영상을 소개했다.
진료실에서 마주한 부부는 신체건강 뿐 아니라 마음도 너무 불안하고 지쳐있었기 때문이다. 진단명부터 ‘말기콩팥병’ 아닌가. 30대 신혼부부 가정에 말기라는 단어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았다.
복막투석 환자 진료시간은 건강검진에서 우연히 발견된 소변검사 이상을 가지고 오는 일반 환자와 동일하게 5분간 진료시간으로 예약됐 있고, 진찰비도 같다. 이 부부에게 내가 시간을 많이 할애하면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환자의 불만이 쌓일 수 밖에 없다.
이러한 것이 제도적인 모순이라고 생각한다. 외래 진료시 모든 질병과 중증도를 하나의 기준으로 보상하는 제도는 과연 정의인지 아니면 모순인지 묻고 싶다.
두 부부에게 우리병원 복막투석 교육실을 안내하고, 장기이식센터 코디네이터를 연결했다. 복막투석 교육실에서는 투석실 경험이 많은 복막투석 전문간호사가 자세한 교육 및 재택 모니터링에 대해 설명해 주고 재택관리사업에 등록하게 했다.
장기이식코디네이터는 뇌사자이식 절차를 설명하고 신장이식 대기를 위한 코너스(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 등록을 시켜주었다. 이 두 전문인력은 너무 소중한 자원이다. 벼랑 끝에 몰린 말기콩팥병 환자와 가족들 길잡이 역할을 해주고 그들의 마음을 보듬어주기 때문이다.
복막투석을 위한 간단한 복막투석도관 삽입을 하고, 복막투석 적응과 교육을 위해 1주일 정도 입원했을 때 장기이식을 위한 대기자 검사도 병행했다.
퇴원날 두 부부 얼굴에는 두려움보다는 자신감이 느껴졌다. “복막투석 별거 아니네요, 괜히 겁먹었네요.”하며 머쓱해하는 남편을 부인이 흐뭇하게 바라보는 모습은 필수의료 인력 부족이 심각하여 의정사태가 끝나도 당직을 계속 서야 하는 50대 지방대학 신장내과 교수의 지친 마음을 보람으로 잠시 달래줬다.
이미 여러 국가에서는 복막투석 활성화를 통해 환자 삶의 질을 높이고, 의료비를 절감하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우리 역시 더 이상 늦출 수 없다. 고령사회로 진입한 대한민국에서 만성콩팥병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가 됐다.
복합만성질환인 만성콩팥병에서 복막투석은 그 해답 중 하나다. 그리고 그 해답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현실을 잘 반영한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이제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책임 문제다. 환자가 본인 삶을 지키는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사회가 그 선택을 가능케 해야 할 때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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