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을 둘러싸고 의료계 학회들의 문제 제기가 이어지고 있다.
필수의료 보호와 사법 리스크 완화라는 입법 취지에는 일정 부분 공감하면서도, 중대한 과실 기준의 모호성, 임상 현실과의 괴리, 형사특례 요건 구조, 책임보험 중심의 부담 체계 등이 오히려 현장 부담을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응급·중증 상황에서 사후 기준으로 진료를 평가하는 구조가 필수의료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대한마취통증의학회는 10일 성명을 내고 형사특례 요건 구조와 임상 현실 간 괴리를 중심으로 비판을 제기했다.
마취통증의학회는 “필수의료 현장의 실제 진료 환경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채 의료인에게 과도한 요건을 부과하고 있으며 형사법 및 민법 기본 원리와 긴장 관계에 놓일 수 있는 구조적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보험 가입 여부 및 설명의무 이행, 손해배상 여부 등이 형사절차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는 책임주의를 기본 원리로 하는 형사법 체계와 충돌한다”고 지적했다.
중대한 과실 기준과 관련해서도 임상 현실과의 괴리를 지적했다. 학회는 “모든 마취 약물에 대한 사전 검사가 권고되지 않으며 일부 약물은 예측이 매우 제한적이거나 표준화된 검사법이 존재하지 않는다”며 “응급 상황에서는 이런 검사를 일률적으로 시행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밝혔다.
또 “사고 발생 후 7일 내 설명의무는 원인 규명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마취사고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대한내과학회도 중대과실 판단 기준과 적용 방식에 우려를 나타냈다.
내과학회는 10일 성명을 내고 “의료진이 안심하고 진료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려는 입법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자칫 필수의료 기피 현상을 심화시킬 수 있다”며 “특정 상황이나 결과가 발생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를 곧바로 중대과실로 간주하는 것은 부적절하고 당시 의료환경, 환자 상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중대과실은 단순한 실수나 일반적인 과실이 아니라 형사책임을 물을 수 있을 정도의 고의성 또는 현저한 부주의가 있는 경우에 한해 매우 제한적으로 인정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신경과학회 “설명 의무·보험 구조 보완해야”
응급의학의사회 “중과실 기준 없다” 비판
대한신경과학회 역시 입법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제도 보완 필요성을 강조했다.
신경과학회는 지난 8일 성명서를 통해 “의료사고 발생 시 신속하고 합리적인 중재를 통해 사법 리스크를 줄이고 필수의료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려는 정책적 방향성에는 뜻을 같이한다”면서도 “임상현장의 특수성과 필수의료의 구조적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특히 “응급 신경계 질환은 치료 직후 수일 내 최종 예후나 인과관계를 명확히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적지 않다”며 “설명 시점을 일률적으로 짧은기간 내 강제하면 불완전한 설명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또한 “책임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면서 의료기관이나 의료인 개인에게 추가적인 부담을 주는 구조는 필수의료 인력 이탈을 가속화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는 보다 강하게 개정안을 비판했다. 응급의학의사회는 지난달 30일 “실질적 내용은 오히려 후퇴했음에도 의료계의 요구를 수용한 것처럼 포장한 기만적인 법안”이라며 “형사면책이라는 허울 좋은 포장지로 덮은 최악의 개악”이라고 힐난했다.
이어 “중과실이 없을 때만 형사기소를 면제한다고 했지만 무엇이 중과실인지에 대한 기준은 어디에도 없다”며 “결국 환자 측이 동의하지 않으면 중과실로 몰아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책임보험이나 공제 가입을 의무화하고 손해배상을 형사 면책의 조건으로 내건 것은 감옥에 가지 않으려면 천문학적인 합의금을 지급하라는 구조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각 학회는 세부 쟁점에 차이를 보였지만, 개정안이 임상 현장의 특수성과 필수의료 구조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공통된 인식을 보였다.
중대한 과실 기준, 형사특례 요건, 책임보험 중심 구조 등을 둘러싼 논쟁이 이어지면서 향후 본회의 논의 과정에서 제도 보완 여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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