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필수의료’ 살리기에 사활을 걸고 나서면서 각종 제도 개선과 법령 정비, 지원 정책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정작 필수의료 현장에서는 체감도가 높지 않은 모습이다. 고된 업무와 의료사고에 대한 부담이 일상인 만큼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수반돼야 한다는 명제에는 이견이 없지만 유독 운신의 폭이 좁은 비급여 영역도 짚어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비필수의료 진료과목의 경우 각종 비급여를 통한 수익 보전이 일반화된지 오래지만 필수의료 분야는 비급여 항목이 많지 않아 건강보험 급여 의존도가 절대적인 상황이다. 젊은의사들의 필수의료 기피현상 기저에는 과중한 업무를 비롯해 저수가 의료분쟁 스크 외에도 ‘비급여 역설’이 자리한다는 분석이다.[편집자주]
비급여 비중-진료과 인기 ‘정비례’
보건복지부의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안과와 정형외과 의사 연봉이 10년만에 90% 가까이 늘었다. 백내장, 신경차단술 등 실손보험이 수입 증가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같은 기간 소아청소년과 의사 연봉은 16%나 감소했다. 산부인과 의사 보수는 90% 정도 인상됐음에도 인기과 대비 상대적으로 소득은 낮았다.
진료과목 간 크게 벌어진 수입 격차는 필수의료 붕괴를 가속시키는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정부가 필수의료 살리기와 비급여 통제에 속도를 내고 있는 이유다.
환자들은 비급여 진료비가 비싸더라도 주로 실손보험으로 비용을 치른다. 이는 비급여 시장의 과잉 팽창과 인기과 의사의 소득 증가로 이어졌다.
실제 의사가 임의로 비용을 책정할 수 있는 비급여 진료항목과 전문과목 인기도 순위는 정확히 비례한다.
안과, 정형외과, 피부과 등은 비급여 진료 항목이 많은 반면 필수의료에 해당하는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외과 등은 비급여 항목이 적다.
자연스레 이들 필수의료 의사 소득은 낮아졌고, 젊은의사들의 기피현상이 지속되면서 급기야 ‘필수의료 붕괴’라는 현실을 마주해야 했다.
필수의료 분야의 비급여 역차별은 수치상으로도 어렵지 않게 확인된다.
건강보험노동조합 정책연구원이 공개한 ‘혼합진료 금지를 통한 실질의료비 절감방안’ 자료에 따르면 의원급 의료기관 기준 비급여율 1위 재활의학과, 2위 안과, 3위 정형외과 순이었다.
반면 대표적인 필수의료 분야인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일명 ‘내외산소’는 대부분 하위권에 머물렀다.
비급여 진료 바로미터인 실손보험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현재 비급여 진료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환자가 전액 부담하고 있고, 대다수 환자가 실손보험으로 보장받고 있다.
대형 손해보험사 5곳(메리츠·삼성·현대·KB·DB)의 주요 진료과별 실손보험금 지급현황 통계를 보면 지난해 비급여 진료 관련 지급액은 5조3524억원으로, 전체의 57.6%를 차지했다.
정형외과와 가정의학과 등에 지급된 실손의료 보험금 중에서 비급여 보험금 비율이 70%를 넘어섰다. 전체 진료과별 평균 비급여 비율인 57%대를 훌쩍 웃돌았다.
정형외과에 지급되는 금액은 1조원대에 이른다. 도수치료와 증식치료, 체외충격파치료 등 비급여 물리치료 때문에 비급여 비율이 높고 보험금 지급액도 많은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 필수의료 분야인 산부인과 비급여 비율은 51.5%로, 평균보다 낮았다. 일부 산부인과에서 요실금 수술 후 하이푸 수술, 전립선 결찰술 등의 사례가 있기는 하지만 비중은 크지 않다.
대표적인 비급여 수혜 진료과목으로 꼽혔던 안과의 경우 2020년에는 비급여 비율이 80.3%로 높았으나 최근에는 30% 이하로 떨어졌다.
비급여인 백내장 수술 관련 ‘입원 치료 필요가 없다’는 대법원 판결 이후 실손보험 보상 기준이 강화된 영향이다.
의료계 관계자는 “비급여와 실손보험 비중이 인기과와 비인기과를 나누고 필수의료를 기피하게 만드는 원인이 된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수가 인상이 능사 아니지만 자생력 키워줘야”
정부도 이러한 기형적 구조에 대한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에 나섰지만 정작 필수의료 현장에서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필수의료에 대한 수가 인상과 함께 비급여 통제를 통해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강화하겠다는 정부의 정책 설계에 대한 아쉬움이다.
전체적인 방향성에 대해서는 십분 공감하지만 건보재정의 한계를 감안하면 작금의 필수의료 상황을 반전시킬 정도의 파격적인 수가 조정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정서가 팽배하다.
실제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수립한 건강보험 시행계획을 살펴보면 필수의료에 대한 적정 보상이 핵심이다.
모자의료 진료협력 시범사업 확대와 소아진료 협력체계 구축 시범사업의 본사업 전환 검토, 심뇌혈관질환·응급의료 공백 대응을 위한 사후보상 강화 등이 담겼다.
특히 건강보험 등재 의료행위 분류 체계를 재정비해 필수의료 의료진에게 적절한 보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이를 통해 올해 하반기까지 저보상 필수의료의 수가를 인상하고 2030년까지 균형수가를 달성하는 게 목표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도 필수의료 강화를 염두한 조직 신설을 추진 중이다. 지역의료와 필수의료, 공공의료 등 3개국을 나눠 운영될 예정이다.
다만 완전한 신설 보다는 기존 조직에서 재정리, 조합하고 신설이 필요한 부분은 신설하겠다는 방침이다.
사실 이에 앞서 복지부는 지난 수 년 동안 소아를 비롯해 분만, 심뇌혈관 등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수가를 꾸준히 인상해 왔다.
하지만 전체 진료비에서 필수의료 비중은 여전히 20%를 밑돌면서 건강보험의 재정적 보상만으로는 무너져가는 필수의료 생태계를 복원하기에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미애 의원에 따르면 전체 진료비 중 필수의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2022년 20.9%에서 2023년 19.3%, 2024년 19.2%로 꾸준히 하락했다.
의과대학 광풍 속에서도 정작 필수의료 인력이 감소하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수가를 인상했지만 의료현장의 체감도와 정책 효과 간 차이가 있음을 방증한다는 해석이다.
그나마 필수의료특별법이 최근 국회를 통과한 만큼 내년부터 연간 약 1조1000억원 규모 ‘지역필수의료 특별회계’가 신설되는 부분은 고무적이라는 평가다.
다만 해당 특별회계 중점 투자 분야로 국립대병원 등 책임의료기관의 경쟁력 강화와 지역 의료인력·인프라 확충이 지목된 점은 일선 필수의료 의사들 기대감을 떨어뜨리고 있다.
한 필수의료 분야 의사는 “특별회계가 마련돼도 국립대병원에 편중된 지원 가능성이 농후한 만큼 필수의료 현장의 체감도가 얼마나 달라질지 의문”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결국 필수의료 분야 자생력을 키워줄 필요가 있다”며 “비급여 역설을 풀어내는 노력이 그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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