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솔한 겸양의 미덕 갖춘 전문가 존중받고 필요한 시대"
[특별기고] 희망의 횃불을 높이 들고 출발한 2020년은 출발 20여일 만에 실질적으로 좌초됐다. 이렇게까지 독할 줄은 전혀 예상 못했던 덫에 걸린 것이다.
처음에는 하찮은 독감이나 폐렴 쯤으로 생각하고 중국독감이냐? 우한폐렴이냐? 하는 쓸데없는 논란을 벌였고, 결국 중국 눈치를 보며 ‘중국’이란 말을 빼라는 등 엉뚱한 일에 집중했다.
여기에 WHO 망동은 그 위상에 스스로 상처를 냈고, 자본 논리에 휘둘리는 모습은 점점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며 사무총장 해임 건의에 수 십만명이 동조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결코 뒤돌아 보고 싶지 않은 잔불들이 꺼지지 않은 채 2021년이라는 새해를 맞는 게 개운치만은 않다.
마치 내 의지와 무관하게 떠밀리고 끌려가는 힘의 논리 속에 두 다리가 허공에 매달려 버둥대는 것 같은 기분이다. 새해의 희망보다 우울함이 연속되는 그저 그런 과정이라는 생각이다.
올해는 단순히 코로나19 창궐이나 의료계를 엄습한 불합리한 정책적 책동(策動)만이 문제였던 것은 아니다. 온 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윤리, 의료 등 모든 분야에서 후안무치한 주장과 탈주자들의 폭주를 보는 듯했다.
"보편타당한 사회 윤리와 인간적 정의 사라진 것 같은 2020년 안타까워"
보편타당한 사회 윤리와 인간적 정의와 정리는 버려야 할 구태로 치부됐다. 세상을 살아가는 잔꾀는 누가 더 빨리 인성(人性)을 버리고 탈인간화를 성취할 수 있나 하는 분경(奔競)의 한해였다.
1930년대에 태어나 근현대사의 질곡을 체험한 국민이라면 과거 한 세기 동안 일어났던 모든 역사적 환란을 1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응축적으로 경험한 한 해였는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가운데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나 자신과 내 이웃이라는 사실을 인식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참담한 일이다.
이미 나 자신은 내가 아니고 어제까지 다정했던 이웃과 동료는 더 이상 반갑게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은 슬픈 일이다. 자고 일어나면 대척점에서 나를 응시한 어제의 동료를 바라봐야 하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혼탁한 사회의 자연발생적 현상인지 모르지만 무수히 많은 사람들로부터 괴로움을 당해야 했다. 결코 전문가라고 생각되지 않는 사람이 전문가를 자처하고 자기 생각을 강요했다.
혹은 해결사임을 과시하는 사람들과도 마주쳐야만 했다. 대개 이런 부류는 권력의 어두운 그림자가 곁들여 있고 스스로가 득도(得道)의 경지에 도달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증상만경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면서 이 사회에 온갖 오물을 뿌려대는 작폐를 자아냈다.
스스로가 만든 오만함의 독배(毒盃)를 절대 마시지 않을 듯 보였고 애꿎은 이웃들이 대신 독배를 마시고 쓰러져 가는 듯했다.
하지만 독배는 그것을 만든 주인을 찾아가는 게 사회 정의다. 잘못된 것을 알고도 이를 무시한 채 선행(善行)으로 포장하는 자는 한마디로 나쁜 사람이다.
그러나 무지의 소치나 자기 자신의 애착에 빠진 결과적 행동이라면 그것은 ‘병(病)’이다. 금년도 의료계 파업 사태 때도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넘쳐났다.
다른 방법으로 문제가 해결됐을 때는 그들은 삽시간에 흔적도 없이 번개같이 사라졌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창궐하는 사회는 정의롭지 못하고 코로나19에 감염된 사회나 마찬가지다.
아름답지 못한 과거 거울 속에 비춰진 오류에 집착하는 것 또한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희망이 없어 보이지만 그 속에 기대를 걸 수 있는 것을 찾고 추구하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야할 이유인지도 모른다.
앞으로 우리가 극복해야 할 삶이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의료가 복합적으로 뒤엉켜 발생되는 일을 합목적적인 시각으로 해결해야 한다.
"바이러스 대유행 지속적 발생, 의학 의료적 차원이 아닌 사회 총량적 결집으로 해결책 모색해야"
향후 4~5년을 주기로 바이러스 대유행은 지속적으로 발생될 것으로 예견된다. 이러한 문제를 의학이나 의료적인 차원만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엄중한 질병에 의한 엄혹한 사회현상은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이기 때문에 사회 총량적인 힘의 결집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우리를 끝없이 괴롭히고 있는 코로나19에 대해 어느 한 원로 의학자의 주장과 같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의학적 지식의 접근만으로는 다원화된 사회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의과대학 교육에서 바이러스에 대한 학문적 연구와 교육이 중요한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지만 의대생들이 질병의 전 세계적인 대유행이 발생했을 때 적절하게 대처하기 위한 정치, 경제 , 사회, 윤리와 문화적인 해결점을 이해하고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질병을 예로 들기는 했지만 앞으로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발생되는 문제에 대해 이 같이 다원적인 해결의 실마리를 찾도록 준비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현재 우리에게 가장 큰 희망의 등불은 제4차 산업혁명 물결에 따른 변혁의 추구라고 생각한다.
인간에 의해 개발되는 인공지능(AI)은 인간의 삶을 위협할 수도 있지만 향후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는데 동반자적 관계, 불교에서 말하는 즉 삶의 도반으로 동행할 준비를 해야 한다. 그래야 인공지능 노예가 되지 않고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
이렇게 현명한 준비를 위해 개인으로서 갖춰야 될 덕목 중에 하나가 진솔한 겸양의 미덕을 갖춘 전문가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증상만경의 오만함 속에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스스로가 마셔야 할 독배(毒盃) 뿐이라는 엄중한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일견 암울해 보이는 2021년 새해에 희망을 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