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울산광역시는 지난 2021년 2월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대규모 감염병 사태에 대처하기 위해 울산의료원 건립을 결정했다.
20년 동안 시민들 소망이었던 울산의료원 건립이 코로나19라는 정책의 창(窓)을 통해 본격적으로 추진된 것이다.
울산 시민들도 이에 호응해 당시 시(市) 전체 인구의 약 20%에 해당하는 22만 명이 울산의료원 건립에 서명했다.
그러나 지난 2023년 5월 울산의료원 건립은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진행한 예비타당성 재조사에 근거해 무산되고 말았다.
비용대비 편익이 0.65에 불과해 경제성이 없고, 정책 및 지역균형 발전 측면에서도 타당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KDI 보고서 요지였다.
예타 조사, 경제성 분석에 기반해 '추정 오류' 다수
이런 상황이 그리 낯설지는 않다. 최근 지방의료원 설립에 있어 예비타당성 조사 또는 재조사를 통과한 사례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현재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사업으로 추진되고 있는 대전의료원 설립도 지난 2017년 예비타당성 조사에 탈락했고, 울산의료원과 더불어 추진됐던 광주의료원도 2023년 11월 예비타당성 재조사에서 탈락했다.
예비타당성 조사에 통과한 세종충남대병원(2014년)이나 시흥배곧서울대병원(2021년)과 달리 유독 의료원은 왜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하기 어려울까.
사람마다 여러 주장과 논쟁이 있을 수 있지만, 의료시설 건립 관련 예비타당성 조사 지침이나 과정이 내용적으로나 절차적으로 과학적이지 못하다. 또한 그 이면에 녹아있는 의료원에 대한 편견과 백안시 때문은 아닌지 한 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런 추정이 비롯된 데에는 KDI에서 공개한 울산의료원 설립에 관한 예비타당성 재조사 보고서에 수많은 오류와 그 근거가 된 의료부문 예비타당성조사 수행을 위한 세부지침 상 문제점이 큰 역할을 했다.
구체적으로, 그 비중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예비타당성 조사 또는 재조사의 한 축을 담당하는 경제성 분석에서 여러 타당성 문제가 확인됐다.
가령 의료원 수요를 응급 사망자 수로만 추정하고, 범위도 28개 중증응급질환이 아닌 3대 주요 응급질환으로만 한정하고 있다.
또 편익 범위가 제한적이고, 설정한 진료권 내 지역의 이동시간 절감 편익을 배제하는 등 이동시간 절감 편익을 과소 추정하고 있으며, 이동시간 절감 편익과 교통비용 절감 편익을 같은 기준으로 평가하지 않고 있다.
더불어 뇌졸중 재활환자 수를 잘못 추정하고, 재활로 인한 편익을 매우 제한적으로 설정한 점, 간호간병통합서비스에 대한 잘못된 이해로 간병비용 절감 편익을 과소 추정한 점, 만성질환 관리 편익을 당뇨로만 한정하고, 당뇨마저도 완치 질환으로 간주해 만성질환 관리 편익을 잘못 추정한 것 등 다수 문제점이 있다.
보건의료 전문가가 아닌 경제학자 '공공의료원 평가'
예비타당성 조사의 또 다른 축인 정책성 분석과 지역균형 발전 분석에도 한계점이 드러났다.
특히 정책성 분석에서 코로나19와 같은 대규모 감염병 관련 필요성을 평가하겠다고 해놓고서는 이를 제대로 분석하지 못한 점은 큰 문제다.
코로나19를 계기로 추진된 울산의료원이 대규모 감염병 사태에 대비한 타당성은 반영되지 못한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지역균형발전 분석의 경우에도 보건의료 분야와 관련성이 떨어지는 경제파급과 관련된 지표들로 주로 구성돼, 해당 보고서는 대도시 내에라도 취약지, 취약계층이 존재할 수 있음을 전혀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의료시설 건립 관련 예비타당성 조사의 절차적인 정당성이 부족하다는 점은 더 큰 문제로 지적받을 수 있다.
예비타당성 조사 결과를 종합하는 데 계층화 분석 기법이 사용되는데, 여기에 참여하는 이해당사자가 과연 전문성을 갖고 공정하게 울산의료원 타당성을 평가했는지 확인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보건의료 분야 전문성을 두루 갖고 의료원의 기능에 이해도가 높은 예방의학자가 배제된 채 주로 경제학자 관점에서 울산의료원 건립 타당성을 평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예비타당성 조사 내 비용편익 대비 편익으로 요약되는 경제성 분석 비중을 줄인다고 공언했지만, 전체 사업의 타당성 평가를 여전히 경제학자 위주로 진행한다면 예비타당성 조사가 경제성에만 초점을 두고 진행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지자체, 지방의료원 적극 지원해서 낙인 극복 필요
다만 대학병원의 경우 예비타당성 조사가 통과되는 사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때문에 지방의료원의 타당성을 보다 인정받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지방의료원에 대한 편견을 불식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즉, 지방자치단체들은 지방의료원에 더 적극적인 지원을 제공하고 그 성과를 제대로 모니터링해 지방의료원이 지역주민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에 코로나19 대응에 첨병 역할을 한 여러 지방의료원 덕분에 지방의료원이 불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좀 누그러들었지만, 그동안 지방의료원이라고 하면 적자 누적 및 비효율성, 취약계층만 방문한다는 낙인 등으로 매도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지방의료원의 낙인을 극복하는 것은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료원 의무일 것이다.
공공의료원 예타 조사, 영역‧항목 전면 재검토
하지만 아직 설립되지도 않은 지방의료원 운영상의 문제점을 벌써 걱정해 건립부터 막는 것은 지나친 처사다.
따라서 의료원 등 공공보건의료시설 설립 타당성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현재 예비타당성 조사와 재조사의 영역과 항목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고, 그 절차를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즉, 의료원 등 공공보건의료시설 설립은 경제 분야 전문가만이 아닌 보건의료 분야 전문가의 전문적 식견까지 반영돼 검토될 필요가 있고, 지역 간 건강형평성 문제를 해소할 수 있도록 지역주민의 의사까지 반영될 수 있는 절차의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
더불어 공공보건의료시설 설립의 타당성 평가를 제대로 진행할 수 있는 기존 혹은 별도의 전문기관을 육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추진된 공공보건의료시설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법안들은 기존 의료시설 건립 관련 예비타당성 조사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와 관련된 사회적 논의는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고, 공공보건의료시설 설립 타당성 조사를 개편하기 위한 논의가 더 적극적으로 이뤄질 필요가 있다.
공공보건의료시설을 무조건적으로 확대하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지금의 의료시설 건립 관련 예비타당성 조사는 결코 과학적이라고 볼 수 없어 보인다.
공공보건의료시설 설립 로드맵과 우선 순위를 결정하는 합리적인 절차가 조속히 마련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