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얼마 전 희귀질환으로 알려진 젊은환자 시술을 힘들게 마치고 결과가 좋아서 무척 만족한 적이 있었다.
이 환자는 대학병원을 몇 군데 다녔지만 치료가 어렵다는 말을 듣고 우리 병원을 찾아왔다.
몇 달 전 넘어지면서 생긴 압박골절을 검사하는 과정에서 척추 혈관병변이 발견됐다. 문제는 약해진 뼈에 압박골절이 오면서 발생한 통증이었다.
통증이 너무도 극심해 잠시도 가만 있지를 못하고 소리를 쳐대는 통에 주위 가족은 물론 의료진들을 엄청 힘들게 했다. 최고 통증 스케일 10점에 해당되는 견딜 수 없는 통증이다.
진통제라는 진통제는 다 써봤지만 좀처럼 듣지를 않았다. 계속 통증 주사제를 투입했지만 통제가 어려운 상황이 지속됐다.
헌데 문제는 환자가 의료진들에게 “나는 왜 이렇게 아픈 것이냐?” “치료 잘 한다는 소문을 듣고 왔는데 왜 못고쳐 주느냐”고 하면서 급기야 본인이 겪고 있는 모든 고통에 대한 책임을 의료진에게 전가하기 시작해 필자를 매우 당혹스럽게 했다.
지금까지 적지 않은 신경중재의학 시술을 해 오면서 절박한 환자를 몇 번 본적이 있다.하지만 “이번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등 점점 고민이 깊어졌다.대학병원에서도 고치지 못한다는 환자를 왜 입원시켰는가 하는 자책감이 들기까지 했다.
심지어 환자 본인 고통에 대한 책임마저 따지는 마당에 필자가 비난의 대상이 되지 않을까 하는 후회가 들기 시작했다.
문득 과거 비슷한 환자들에 대한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되살아났다. 이런 경우 환자가 느끼는 고통은 질병으로 인한 극심한 통증과 함께 두려움, 그리고 이로 인해 일상생활을 할 수 없다는 데서 비롯된다.
그러한 상태는 일종의 극한 상황이다. 세상 삶이 너무나 고통스러워 보인다. 옆에서 보면 저런 상태로는 더 이상 이 세상을 살아가기가 힘들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환자가 마치 이 세상 사람처럼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이런 상황을 맞닥트릴 때마다 의사로서 만약 할 수만 있다면 어떠한 위험과 어려움을 무릅쓰고라도 반드시 치료를 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리지 않을 수가 없다.
“환자 상태에 대한 결과가 나빠질 수도 있을 것이라는 우려만 한다면 과연 무슨 해결책이 있겠는가”라고 반문하면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가지 다른 생각들이 머리 속에서 교차했다. 다른 대학병원에서는 왜 치료를 못한다고 했을까 등등.
만에 하나 잘못돼 환자 상태가 지금보다 더 나빠진다면 그 책임과 비난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안될 수 없었다.
맹자는 “태산을 끼고 북해바다를 건너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한계를 자각하고 그 한계를 초월하는 힘을 발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왕건래예 (往蹇來譽, 어려움 앞에서는 되돌아오는 것이 명예롭다)가 답이란 말인가?
사실 필자는 이와 유사한 질환을 세계 최초로 치료했고 그 결과를 학회에 보고한 적이 있다. 매우 드물지만 너무나 힘들고 드라마틱한 치료를 했던지라 환자가 마치 꿈처럼 회복됐을 때 반드시 보고해야 겠다고 마음을 먹고 미국신경영상의학과 학회지인 AJNR에 2예를 보고했다.
그 때가 벌써 20년 전이다. 당시 미국학회 보고 이후 전세계 의사들이 필자 논문을 이 질환의 시발점으로 인정하면서 인용하고 있을 때는 정말 이 분야를 전공한 보람을 느꼈다.
두명 중 한분은 젊은 여자였는데 잘 걷지를 못하는 상태였다.치료 후 수년이 지났을 어느 날 가족과 함께 외래를 찾아왔을 때 감격은 지금도 눈에 생생하다. 귀엽게 잘 자란 아이들 둘을 데리고 와서는 수줍은 인사를 시킬 때 너무나 기분이 뿌듯했다.
그 때 이 시술 위력을 더욱 의미있게 느꼈을 뿐만 아니라 “나도 어느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훌륭한 의사인가?”라는 우쭐함에 잠시 빠진 적이 있었다.
과거 한 때 뿌듯함이 스스로를 위로해주는 것도 잠시, 오만가지 생각이 어지럽게 교차하는 현실로 돌아왔다.
이런 희귀질환에서 치료 결과를 쉽게 예단하는건 매우 어렵다. 이 같은 질환을 왜 의사들이 회피하겠는가? 그 만큼 위험(리스크) 부담이 크고 공을 많이 드려야 하기 때문이다.
여러가지 생각을 뒤로하고 날로 드세지는 환자 고통과 그로인한 치료 요구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자칫 명예스럽게 돌아올 수 없는 길로 가기 위한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는 것인가?
마침내 환자와 보호자에게 선언을 할 수밖에 없었다. 먼저 치료에 대한 위험과 부담에 대해 설명드리고 필자가 못할 수도 있으니 지금이라도 다른 병원에 갈 수 있으면 가보라고 권했다.
하지만 환자와 보호자는 받아 주는 병원이 없어 갈 데도 없고 너무 아파서 움직일 수도 없다고 하면서 필자를 압박했다.
그리고 “선생님이 이 분야 대가(大家) 시라면서요?” 할 때는 너무 마음이 무거웠다. 왜 하필 내가 이럴 때만 대가란 말인가? 결국 필자는 시술을 하기로 결정했다.
몇 차례에 걸쳐 단계적으로 시술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환자와 보호자에게 설명하고 잘 될 경우와 잘 되지 않을 경우에 대해서도 별도 설명하자 환자는 기꺼이 시술을 받겠다고 답했다.
척추의 큰 다발성 혈관병변에 대해 3차례에 걸쳐 시술을 했는데 시술을 거듭할 수록 조금씩 나아지면서 최종적으로는 병변 중심으로 들어가 거의 완벽히 제거할 수 있었다.
천만 다행스럽게도 환자 통증이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해서 퇴원 때는 웃으면서 대화를 할 수 있는 정도가 됐다.
3개월째 추적 검사를 하러 왔을 때 환자의 호전된 상태와 추적 영상을 보고 만족스러운 결과에 뿌듯한 보람까지도 느꼈다. 진통제를 먹지 않을 정도로 통증은 거의 사라지고 일상생활도 가능하게 된 것이다.
“희귀혈관질환 치료하는 의사의 특별하면서도 답답한 경험”
하지만 이런 보람도 잠시,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이 환자 시술과 관련해서 보험심사조정(삭감) 통보를 받은 것이다.심사조정은 가끔 있는 일이지만 이 경우는 필자의 마음을 엄청 무겁게 했다.
세계적으로 보고도 많지 않은 이처럼 어려운 시술을 힘들게 성공하고 환자가 완치된 상황인데 삭감 예정이라니, 말문이 막히고 사실 어이가 없었다.
시술료의 많고 적음은 차치하고라도 상당 부분이 재료대이며 결국 재료비는 제조회사가 그대로 가져가는 실정이다.
그런데 많은 재료대 부분이 심평원에 의해 삭감된다면 병원에서 시술료는 물론이고 재료비까지도 물어줘야 되는 것이다.
필자가 재직했던 대학병원에서는 그런 일이 없었지만 만일 누군가 필자에게 “대학병원에서도 못 받아준다는 병을 왜 고친다고 나섰는지, 그리고 왜 병원이 손해까지 봐야하느냐?”고 묻는다면 도대체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하는 것인지 난감했다.
환자의 환부를 거창하게 열고 수술한 것도 아니다. 더욱이 바늘을 몇 개 찔러 그 구멍으로 무엇을 했는지도 모르게 시술을 했다면 그런 오해를 받을 만도 할 것이다.
심평원의 삭감 조정 통지를 받고 도저히 내키지 않아 얼마간 서류를 묵혀뒀다. 일종의 자괴감 때문이었다.
“내가 대롱을 통해 세상을 엿보고 있었단 말인가?” 편작이 말하는 진정한 의술을 펼치지 못하였단 말인가? 이런 시술을 하는 의사도 많지 않고, 심지어 하지 말라고 말리는 분위기인데 필자가 한 시술의 인정을 위해 이의까지 제기해야 하는 처지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만일 시술 결과가 나빠졌다면 아마 법적 책임까지도 묻게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그러던 어느 날 마음이 좀 차분해졌을 무렵 ‘그래도 담당자를 설득시키고 이 시술 의미와 중요성을 납득시켜야 한다’고 스스로 위로하면서 순천응인(順天應人) 심정으로 다시 펜을 들고 재심사요청서를 꺼내 들었다.
병원 직원들이 애꿎은 피해를 보지 않도록 성의있게 작성하고 또 환자에게 이 시술이 얼마나 절실하게 필요했는지에 대한 당위성도 피력코자 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