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맥 진단과 웨어러블 기기 발전 '명암(明暗)'
차명진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교수
2023.12.04 05:21 댓글쓰기

[특별기고] #1 어느 날 건장한 체격의 30대 환자가 어두운 표정으로 진료실에 입장했다. 


환자는 최근 들어 누구나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는 스마트워치를 구매했고 심전도 기능이 있어 재미로 측정해봤는데, 측정할 때마다 판정 불가 소견이 나와서 신경이 쓰인다고 말했다.


환자는 아무 증상이 없고 건강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병원에 올까 말까 많이 망설였지만, 자꾸 반복되다 보니 결국 병원에 올 수밖에 없었다며 출력해온 결과지를 건넸다. 


환자의 자료를 검토해보니, 다행스럽게도 모든 내용이 정상 범위에 속했다. 얼굴에 걱정이 한가득했던 환자는 설명을 듣고서야 안심하는 한숨을 내뱉으며 집으로 향했다.


#2 다양한 기저 질환이 있지만 활기차게 생활하는 80대 어르신이 스마트워치의 검사 결과를 갖고 병원을 찾아왔다. 


아무런 증상이 없어 자녀들이 선물해준 스마트워치를 처음에는 착용하지 않았지만, 자녀들의 성화에 못 이겨 스마트워치로 심전도를 측정해봤다. 


그런데 심방세동이라고 알람이 반복해 떴다. 진료실에서 결과지를 확인해보니 정말 심방세동이었고 정밀 검사에서도 심방세동이 정확히 확인됐다. 심방세동은 무증상이라도 무서운 뇌졸중을 일으킬 수 있는 부정맥이다. 


환자는 미리 약물치료만 잘해도 상당수를 예방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다행이다”라고 안도하며 돌아갔다.


예상치 못한 순간 나타나는 신체 이상신호, 스마트워치로 '상시 체크' 가능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부정맥 질환이나 심전도 같은 용어는 대다수 사람에게 낯설었다. 이런 인식을 바꾼 것은 아마도 스마트워치와 같은 웨어러블 기기가 아닐까 싶다. 


사람의 심장은 태아 시절부터 사망까지 멈추지 않고 박동하고, 그 심장 박동은 심전도 신호로 표현된다. 이 중요한 생존 신호는 피부 표면에서 측정될 만큼 크고 정확하다. 따라서 몸에 부착해 정보를 수집하는 웨어러블 기기의 주요 활용 분야 중 하나가 되고 있다.

 

웨어러블 기기로 심전도 신호를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에는 수많은 순기능이 있다. 


“어디 한 번 두근거려보십시오”라며 진찰할 수 없는 부정맥 질환 특성상, 증상이 있는 그 순간에 심전도 신호를 측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전에는 증상이 나타날 때마다 의료기관을 찾거나 불편한 장기 심전도 모니터링 검사를 받아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덜 정확하더라도 웨어러블 장치를 활용해 검사할 수 있다. 


이렇게 부정맥을 빠르게 발견하고 적절한 치료를 통해 더 심각한 합병증을 예방하는 사례도 많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에도 한 환자가 반신반의하며 새로 산 스마트기기에 두근거림이 찍혔다며 약간은 상기된 얼굴로 병원에 찾아왔다.


오랫동안 두근거림으로 고생하며 병원도 가고 응급실도 갔지만 갈 때마다 정상이라 거짓말쟁이가 됐다며 답답해했다.


확인해보니 발작성 상심실성 빈맥이라는 부정맥으로 의심되는 기록이 나타났다. 


환자는 질병이 진단됐는데도 오히려 홀가분한 얼굴이었다. 직업상 두근거림이 많이 문제가 되던 상황에서 치료 방법이 있다는 설명에 기뻐하는 모습도 보였다.



들쭉날쭉한 정확도에 환자도 의사도 혼선


그러나 모든 케이스가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아는 것이 대부분 힘이 된다지만, 가끔은 병이 되기도 한다. 


아무 증상이 없는데 알람이 울리거나, 혹은 재미로 측정했는데 정상 소견이 나오지 않는 경우 사람들은 불안을 느끼며 점점 기기 의존도가 올라간다고 한다. 


심한 경우에는 기기에서 비정상으로 나오는데 병원에서 괜찮다고 한다고 얘기해야 하는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또 각각의 웨어러블 기기마다 부정맥을 진단하기 위한 알고리즘이 다르며, 심박수에 따른 진단 정확도 역시 다르다.


하지만 이런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고 활용하는 사람은 드물고, 사용 중인 기기에 대해 자세히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더욱 드물다. 


웨어러블 기기로 심전도를 측정했을 때 정상이 나오지 않는 경우에도 그 이유를 스스로 이해하고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의사를 만나기 힘든 국가에서는 스마트워치의 심전도 결과를 놓고 온라인에서 갑론을박을 벌이다가 이상한 결론에 도달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진단 정확도 역시 문제가 될 수 있다. 병원에서 여러 선을 주렁주렁 달고 검사하는 것보다 일견 간편해 보일 수도 있지만 검사 기법이 단순한 만큼 질환에 따라 정확도가 낮아진다. 


애매한 웨어러블 결과에 대해 정밀 검사를 권유받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불편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웨어러블 기록만 보고 괜찮다고 말하기 어려운 경우도 분명히 있는데 말이다.

 

앞으로 더 많은 종류의 기기에서 너무 많은 데이터가 쌓이면서 중요한 신호를 놓치는 경우가 발생할까 봐도 우려스럽다. 


검사했는데 정상이라고 잘못된 판독이 나와버리면 더 이상 진단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또 의료기관에서 부정확한 기기의 데이터를 해석하고 판단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있으며, 이에 대한 책임소재 또한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 


웨어러블 기기, 맹신 말고 적절한 활용 중요


이런 이유로 부정맥학회에서도 부정맥 진단에 대한 전문가 견해 및 가이드라인을 제작하는 등 다각도의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앞으로 점점 더 범위도 넓어지고 활용도도 높아질 웨어러블 기기가 정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누구일지, 불안을 경험할 환자는 누구일지 아직까지 명확하지 않다. 


그리고 그것을 안다고 하더라도 병원에서 처방하는 진단기기가 아닌 이상 적절한 제한을 설정할 방법도 없다. 


과학기술 발전은 항상 우리 예상보다 빠르고 그 부작용을 예측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웨어러블 장치는 부정맥 분야에서 분명한 발전이며 현재 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이런 커다란 혜택에 따르는 그림자를 잘 이해하고 적절하게 활용한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혜택을 더 잘 누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댓글 0
답변 글쓰기
0 / 2000
메디라이프 + More
e-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