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감자였던 PA(Physician Assistant), 진료보조(Unlicensed Assistant) 등의 명칭이 ‘진료지원인력’으로 명명됐다. 외국과 달리 별도 직역 신설이나, 제도화·양성화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이제 그에 맞는 업무 범위를 명확히 규정, 관리·운영체계를 만들고 현장 혼란과 법적인 문제를 해소하는 일이 남았다. 고질적 난제 해결의 기미가 보인다는 점에서 기대도 크다.
정부가 직접 나선 점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일의 순서가 틀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 시점에서 진료지원인력의 의료행위는 분명 불법이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이를 국민들에 알리고 해당 업무에서 배제시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4월부터 진료지원인력에 맞는 의료기관별 업무범위를 명확히 하는 관리·운영체계(안) 타당성 검증 사업을 시작한다. 약 1년간 시행 후 기간 연장 등은 모니터링을 거쳐 검토 된다.
사업 참여 당사자들의 곱지 않은 시선도 문제로 부각된다. 주변 눈치만 살피는 의료기관들, 특히 이들 진료지원인력과 호흡을 맞춰가야 하는 젊은 의사들의 극심한 반대는 사업 설계 적정성 및 필요성에 의문을 갖게 한다.
사업 참여기관 공모는 당초 공지됐던 기간을 2주나 연장하고 명단 비공개 약속 끝에 겨우 10여곳 의료기관이 신청을 마쳤다. 이마저도 힘 없는(?) 국립대병원을 중심으로 참여기관을 꾸렸다는 후문이다.
업무범위에 대한 법적근거 마련 전인데다 별도 수가도 부여되지 않는 사업의 참여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이유다. 사업에 반대하는 의료계 비판이나 내부 직역간 불화 발생 우려도 크다.
최근 복지부는 진료지원인력 관리·운영체계 타당성 검증 사업에 관한 설명자료를 통해 업무기준(안)을 공개하기도 했다.
의사단체는 즉각 반대했다. 진료보조인력 업무범위 문제 해결을 위해선 먼저 의사가 해야 하는 의료행위와 위임될 수 있는 행위를 명확히 구분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정책적 규제보다 완화를 시행하는데 있어선 보수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정책 시행에 있어 의료계의 가장 큰 불만은 정부가 ‘뭔가 보여 주기 위해서’ 너무 서두른다는 것이다.
누구나 자신 있는 일에는 상대적으로 노련하고 느긋하다. 돌다리도 두드려 보는 여유와 전후좌우 앞뒤를 살펴가며 입안에서 시행, 환류까지 모두 염두에 두고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반대로 어디인가 부족하고 약점이 있는 사람이나 정부는 “우리가 나서면 된다”고 호언장담하듯 ‘결과를 내기 위해’ 마냥 서두르기만 한다.
정책이 시행됐을 때 정책오류로 인한 후폭풍은 차차 개선해 나가면 된다는 생각이 크다. 일시적 미봉책,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사탕발림에 넘어가 무조건 발표부터 해보자는 꼴이다.
펄펄 살아 움직이는 사회현상을 조율하고 관리해야 할 정부가 조급하고 서두르면 될 일도 안 된다. 믿고 기다릴 테니 제발 ‘뭔가 보여주려고’ 서두르지 말았으면 좋겠다.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진료보조인력이 생길 수밖에 없었던 구조적 문제에 대한 이해와 접근은 너무나 부족하다. 저수가(低收價)는 많은 문제의 근본적 원인이다.
이번 시범사업 추진 후 제도 도입으로 의사 진료권을 훼손이나 전문성을 쌓아 나가는 전공의 수련 기회조차 박탈은 눈에 보이는 문제다.
우리나라 면허제도의 근간 훼손, 불법 의료인의 합법적 양성화, 직역 간 갈등 초래 등 의료계 혼란을 초래하고 나아가 보건의료체계를 균열을 야기할 수 있다.
“교과서적인 진료와 법대로 하면 망한다”는 우리가 가진 의료시스템 민낯을 까발리는 일이다. 다른 문제를 낳을 수 있는데다 의료체계 패러다임까지 바뀌게 될 수 있다. 천천히 가도 제대로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