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1] 투자 급감으로 국내 제약바이오 벤처기업들의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 일부 회사들은 자산 처분, 구조조정, 임상시험 중단 등 위기에 봉착하는 모습이다. 지난 2000년 바이오벤처 기업 붐 이후 이 분야는 지속적으로 창업이 늘었다. 최근 5년간 평균 창업기업 수는 400개로 이상으로 이전에 비하면 매우 높은 수준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셀트리온 등 대기업과 신약개발 벤처기업들의 지속적인 연구개발, 사업 확장 등을 통해 2010년말 국내 증시 2%에 불과했던 헬스케어 섹터가 2022년말 기준 10%를 넘어서면서 국내 3대 대표 업종에 등극했다. 특히 코로나19 특수를 누리면서 제약바이오분야 투자가 급증했다. 3300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글로벌 바이오헬스 시장에 국내 기업들이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하지만 최근 금리 인상과 글로벌 경기 침체, 엔데믹 등으로 투자가 급감했다. 기술수출 계약마저 크게 줄었다. IPO(기업공개)에서 자금난은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기업들은 이를 통해 자본시장에 입성한 후 공모 자금으로 임상비용을 마련해 회사를 성장시켜 나갔다. 지난 2021년 대폭 증가했던 바이오 IPO는 2022년 이후 확연히 줄었다. 주가도 침체 분위기를 보이면서 전환사채(CB) 발행이나 상환전환우선주(RCPS) 실적도 신통치 않다. 특히 시장 금리 상승으로 제약바이오기업의 장기 임상시험에 대한 시장 대응력에 대한 한계가 이어질 것이라는 시각이 크다. 이런 가운데 정부도 예산 효율화를 이유로 내년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임상시험 국가 지원 축소로 사실상 신약 개발 사다리가 끊길 상황에 놓이게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데일리메디가 제약바이오 시장 진단과 위기에 처한 관련 기업들의 상황을 살펴봤다. [편집자주]
국내 바이오 업계가 경기 침체 및 코로나19 기저 효과 감소 등에 따라 투자 위축이 현실화 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바이오 기업에 대한 투자금이 크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 투자금이 줄어 들면서 그동안 주목받았던 바이오 기업들의 임상시험 건수도 쪼그라 들고 있다.
벤처 투자 정보 플랫폼 더브이씨에 공개된 기업별 투자 모금액을 취합한 결과, 금년 바이오·의료 기업 투자 모집액은 6792억원(9월 7일 기준), 전체 투자건수는 113건으로나타났다.
반면 지난해 같은 기간(2022년 1월 1일부터 9월 7일까지) 바이오·의료 기업들의 투자 유치금액은 총 2조 6927억원으로, 전체 투자 건수는 290건을 기록했다.
작년과 비교 했을때 올해 투자 금액만 무려 2조원 가량 줄어든 것이다. 구체적으로 전년 동기 대비 투자 금액은 약 74% 감소했고, 투자 건수의 경우 61% 가량 쪼그라들었다.시리즈 A·B·C 등 각 단계별 투자도 모두 감소했다.
시리즈는 기업 업력, 성장 가능성, 규모 등으로 알파벳 뒤 쪽으로 갈수록 투자 모금액이 커지나 진입이 어렵다. A의 경우 초기 기업, C는 이미 이름이 알려진 기업들이 포진돼 있다.
지난 2022년 1월 1일부터 9월 7일까지 바이오·의료 기업들에 대한 ▲시리즈A 투자금액은 3179억원/47건 ▲시리즈B 1조 4239억원/47건 ▲시리즈C 3219억원/18건을기록했다.
반면 금년 1월부터 9월까지 바이오·의료 기업 투자금액은 ▲시리즈A 1178억원/17건 ▲시리즈B 1833억원/21건 ▲시리즈C 647억원/8건을 기록했다. 시리즈B에서만 작년 대비 투자가 1조원 줄었다.
비상장사 가운데 작년 투자 유치 금액 상위 기업은 보타메디(8022억원)가 이름을 올렸고, 올해 비상장사 중에서 상위 투자 유치 기업은 큐로셀(1063억원), 바임(800억원) 등이었다. 작년과 올해 투자 금액만 열 배 차이다.
상장사 가운데에서 지난해 가장 투자를 많이 받았던 기업은 랩지노믹스(1840억원), 루닛(364억원) 등이다. 반면 올해 9월까지 가장 많은 투자를 유치한 기업은 지아이이노베이션(260억원)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바이오 업체 관계자는 “우리 회사도 투자를 못 받고 있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바이오사 대부분이 코로나19 기간 받았던 관심이 낮아지면서 투자를 받기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코로나19 동안 회사에서 연구하던 분들이 바이오 이름만 붙여도 상장하고, 투자를 받는 주변 사례가 많아지면서 창업한 분들이 많은데 문제는 실제 기술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 투자는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투자 악화에 임상시험 축소…바이오제약사들 촉각
특히 투자가 줄어들고 있는 만큼 임상시험 연구가 중단되는 바이오 업체들도 눈에 띈다.
데일리메디가 국내 바이오기업 시총 1000억원 이상 40개 기업을 대상으로 임상 현황을 조사한 결과, 1년새 5개 기업이 임상을 중단하거나 줄였고, 나머지 기업들은 유지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코로나19 기간 동안 임상시험 건수가 크게 늘었던 게 사실이지만, 엔데믹 이후 경기 침체 기조에 투자 시장 규모가 크게 줄어 들면서 바이오사의 전반적인 임상시험이 대폭 감소하고 있는 모습이다.
국가임상시험지원재단이 발간한 ‘2022년 한국임상시험 산업정보 통계’에 따르면 국내 제약바이오 업체들의 팬데믹 전후 임상시험 승인 건수는 2021년 679건에서 2022년 595건으로 줄었다.
올해의 경우 진원생명과학. 엔지켐생명과학, 파미셀, 지놈앤컴퍼니, 휴메딕스 등 바이오 업체들의 임상 축소 등 변화가 감지된다. 시가총액 1000억~5000억원대 달하는 주목받았거나 주목받는 업체들이다.
진원생명과학(대표 박영근)은 지난해 반기까지 진행 중이던 연구개발 진행 품목 건수가 17건(적응증 19건) 이었지만, 올해 연구개발 건수가 10건으로 큰 폭으로 줄었다. 현재까지 연구 완료된 신약은 없다.
특히 진원생명과학은 19년 째 손실을 기록 중인 회사로, 현재 GLS-5300, GLS-5700 DNA 백신 등 바이오 신약과 GLS-1200 항염증 치료 신약 등을 개발 중이다.
엔지켐생명과학(대표 손기영)은 지난해 반기 기준 화학합성 신약 EC-18을 가지고 적응증 별로 13건의 임상 연구를 진행 중이었지만 올해는 동기간 9개 적응증으로 임상 연구 건수가 줄었다.
엔지켐생명과학의 경우 2021년 3000억원의 유상증자 계획을 공시했으나, 지속된 적자에 2022년 최종 유상증자 금액은 1685억원으로 확정짓는 등 재원 확보에 어려움을 겪은바 있다.
이 마저도 청약 흥행 참패로 실제 주주모집 금액은 500억원에도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엔지켐생명과학 시총은 팬데믹 발생 직후인 2020년 8000억원에서 현재 1300억원까지 줄었다.
줄기세포치료제 연구 전문 기업 파미셀(대표 김현수)은 지난해 반기 기준 5개의 바이오 신약에 대한 임상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지만 올해 임상 적응증 건수가 3건으로 줄었다.
실제로 파미셀은 지난해 12월 전립선암을 적응증으로 가지고 있던 Cellgram-DC-PC, 난소암 적응증 바이오 신약 Cellgram-DC의 임상 1상을 조기 종료했다.
휴온스 그룹 계열사 휴메딕스(대표 김진환)는 작년 상반기 18개 합성 및 바이오 의약품 연구개발을 진행했지만 올해 반기 기준 14개로 연구개발 목록이 축소됐다.
휴메딕스가 공시한 반기기준 연구개발 목록에 따르면 그동안 연구개발 완료한 의약품은 안구건조증을 적응증으로 가지고 있는 휴쿠아에스점안액이 유일한 상황이다.
지놈앤컴퍼니(대표 배지수)는 지난해 연구 중이던 마이크로바이옴, 항체 등 7개 파이프라인 가운데 일부 적응증 임상이 중단됐다. GEN-001 고형암 대상 임상 1b상을 조기종료했다.
특히 항암발진, 아토피피부염 등 적응증을 가진 GEN-501의 경우 임상 계획 연구목록에서 돌연 삭제돼 현재 진행 중인 임상은 7개에서 6개로 임상 건수가 소폭 줄었다.
이처럼 임상을 중단하거나 실적이 저조한 기업들은 투자 유치도 어려워지고 있고 주가마저 하락 추세다. 물론 임상을 확대하거나 실적이 좋은 기업은 여전히 주가가 오르거나 기대감이 큰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HLB제약, ABL바이오, 지아이이노베이션 등 올해 임상 성과를 거둔 업체들은 주가가 상승하는 등 상대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경기 침체에 따른 투심 악화가 오히려 옥석 가리기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바이오 투자 업계 관계자는 “투자가 없으니 임상이 줄어드는 건 당연하다”라며 “사업성이 없는 연구는 빠르게 중단하기도 하지만 소위 상장, 투자를 위한 보여주기식 임상들도 많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하지만 투자 상황이 어려워진 만큼 진짜 기술을 가진 기업들이 눈에 띄거나 주목 받을 수 있는 옥석가리기의 시기로 봐도 될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가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