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다영 기자] 같은 증상으로 8시간 사이에 두번이나 병원을 찾은 환자에게 별도 검사 없이 1차 내원 때와 동일한 처방을 내린 의료진의 진료 행위가 불성실한지 여부를 놓고 법원 간 의견이 갈렸다.
대법원은 최근 손해배상 소송에서 이 같은 의료진의 행위를 불성실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는 원심을 파기하고 환송한 결정이었다.
제1심에서는 의료진의 추가 검사를 진행했더라도 이후 환자의 상태에 적절한 대처를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 봤지만 항소심에서는 의료진이 불성실한 진료를 한 것으로 판단했다. 대법원이 항소심 재판부에 재심리를 요구하고 환송하면서 병원과 유족 간 법정 공방은 길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은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A씨는 2011년 2월 18일경 두통과 구토 증상으로 오후 8시경 B병원에 내웠했다.
B병원 의사 C씨는 A씨에 혈액검사를 실시했지만 특이소견이 없어 경도의 구토 증세만 있다고 판단하고 수액과 진토제인 멕소롱을 투여했다.
A씨는 증상이 호전돼 같은 날 오후 9시 45분경 귀가했다.
하지만 19일 오전 4시 30분경 구토 증상이 재발해 A씨는 다시 B병원에 내원했다.
C씨는 A씨의 생체징후가 정상범위 내에 있으며 8시간 전인 1차 내원 당시 혈액검사 결과가 정상이었다는 이유로 수액과 멕소롱을 재차 투여했으며 혈액검사는 별도로 실시하지 않고 A씨를 일반병실에 입원시켰다.
1시간 가량이 흐르고 오전 5시 50분 경 A씨는 안색이 창백해지며 호흡곤란과 복통을 호소했다. 간호사가 A씨에게 심호흡을 유도하면서 산소를 투여했음에도 증세가 호전되지 않았다. A씨는 오전 7시 45분경 혼수상태에 빠졌다.
A씨의 상태를 보고 받은 B병원 응급실 당직의 D씨는 오전 7시 55분경 A씨에 대해 뇌 CT 촬영을 실시하고 오전 8시 10분경 중환자실에 입실시키고 혈액검사를 실시한 결과 대사성 산증 및 급성신부전으로 진단했다.
A씨의 증세가 호전되지 않고 혼수상태에서 회복되지 못하자 D씨는 A씨를 E병원으로 전원시켰다.
E병원 의료진은 대사문제로 인한 의식저하로 보고 투석치료를 실시했다.
2월 20일 15시 35분경 E병원 의료진은 A씨에 대해 뇌 CT촬영을 실시한 결과 전날보다 뇌부종 증세가 악화된 사실을 확인하고 바이러스성 뇌염의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하지만 A씨가 이미 뇌사가 의심되는 상태였기 때문에 E병원 의료진은 생명유지를 위한 보존적 치료만을 계속했다.
A씨는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같은 해 3월 8일 간부전, 심부전, 호흡부전 및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사망했다.
A씨의 유족은 B병원과 E병원 의료진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며 환자의 사망에 의료진의 과실이 있다고 주장했다.
B병원은 유족의 주장에 대해 C씨와 D씨가 조기 진단과 응급처치를 시행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망인의 사망과는 인과관계가 없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법원은 유족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두 병원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A씨가 2차 내원했을 때 B병원 의료진이 A씨에게 검사와 치료를 적절히 실시했는지 여부를 이 사건의 쟁점으로 봤다.
재판부는 "A씨의 사망은 바이러스성 뇌염으로 추정되는 감염의 급속한 악화에 기인한 것으로 봄이 상당하고 B병원 의료진이 조기에 혈액검사를 시행해 처치했더라도 적절히 대처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2차 내원 이후 망인이 혼수상태에 빠지기까지 3시간 동안 적절한 검사 및 처치를 시행하지 않은 업무상 과실이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이 과실과 망인의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유족은 법원의 판결에 불복해 항소심을 제기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원심의 결정을 파기했다.
항소심 법원은 A씨가 2차 내원을 때 B병원 의료진은 필요한 조치를 적절히 취하지 않았으며 불성실하게 진료를 행했다고 판단했다.
서울고등법원은 "A씨 유족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4천만원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재판부는 A씨가 2차 내원을 했을 때 상태의 위중함을 인식하지 못하고 1차 내원 때 실시했던 치료만 반복한 것에 과실이 있다고 봤다.
법원은 "망인이 호흡곤란을 호소한 이후에도 원인을 확인하기 위한 진료나 검사를 실시하지 아니함으로 2차 내원 이후 망인이 혼수상태에 빠질 때까지 적절한 검사 및 치료를 시행하지 않은 과실이 있다고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1차 내원 이후 7시간만에 구토, 오심, 두통 등 동일한 증상으로 내원했고 저혈압 및 빈맥 증상까지 있었기 때문에 동일한 처방을 내린 의료진의 행위에는 과실이 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2차 내원 당시 혈액검사나 이학적 검사를 실시할 필요가 있었다고 봤다.
이어 "망인이 의식을 상실할 때까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음으로써 망인에게 나타난 뇌병증의 원인을 찾아 치료할 수 있는 기회조차 갖지 못하도록 한 것은 불성실한 진료를 행한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며 "B병원은 망인 및 유족이 입은 정신적 고통에 대해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A씨 유족과 B병원, E병원은 모두 이에 불복하고 상고심을 제기했다.
대법원은 항소심의 판결을 파기했다. B병원 의료진의 진료행위가 불성실한 정도는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재판부는 "이 사정을 종합해 보면 망인이 2차 내원한 이후 혼수상태에 이를 때까지 적절한 치료와 검사를 지체했다고 하더라도 일반인의 수인한도를 넘어설 만큼 현저하게 불성실한 진료를 행한 것으로 평가될 정도에 이르지 않는 한 B병원의 위자료 배상 책임을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이어 "B병원에 위자료 배상책임을 인정한 원심 판단에는 의료사고의 과실과 손해배상책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 이 부분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기 위해 원심법원에 환송한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