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대진 기자
] 최근 잇따라 발생한 의사들의 안타까운 희생과 관련해 유가족들이 고인을 대신해 불합리한 의료제도를 지적하고 나서 관심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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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잃은 슬픔에도 불구하고 비극적 상황이 도출될 수 밖에 없었던 불안한 진료환경과 열악한 근무환경 등을 여과없이 전달함으로써 더 큰 울림을 주고 있는 모습이다.
진료 도중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유명을 달리한 강북삼성병원 임세원 교수의 유가족은 의료진 안전을 보장하고 정신질환자가 편히 치료받는 환경 조성을 동시에 당부했다.
임세원 교수의 여동생 임세희씨는 빈소가 마련된 적십자병원 장례식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가족의 자랑이었던 오빠 임세원 의사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말했다.
검은 상복을 입은 임씨는 수척한 모습이었지만 차분한 목소리로 고인과 유족의 뜻을 전했다.
그는 “의료진 안전과 모든 사람이 정신적 고통을 겪을 때 사회적 낙인 없이 치료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이어 “오빠와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분들은 진료권 보장을 걱정하지만 환자들은 인격적으로 대우받기를 동시에 원한다”며 “그분들이 현명한 해법을 내줄 것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의사들의 안전한 진료환경과 함께 자칫 이번 사건으로 정신질환자에 대한 세간의 편견이나 차별적 시선, 의료계의 무조건적인 경계 심리 등이 확산될 가능성을 우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임세원 교수 유가족은 조문객들이 낸 조의금 절반은 강북삼성병원에, 절반은 고인이 못다 한 일을 하기 위해 동료들에게 기부했다.
지난 설 연휴 근무 중 숨진 국립중앙의료원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의 부인은 평소 곁에서 지켜본 남편의 고단한 삶을 전했다.
그는 기자회견이나 입장문 발표 등 적극적인 행보로 고인의 유지를 전하지는 않았지만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비통한 심정을 털어놨다.
부인이 전한 평소 윤한덕 센터장의 생활에서는 워라벨(Work and Life Balance)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일주일에 한번 정도 집에 들어와 15분간 얼굴을 보여준 남편이었다.
그는 “일주일에 15분 정도 남편을 봤다. 집에 안 올 때는 옷을 싸서 병원으로 갔지만 바쁜 남편은 속옷 받으러 나올 시간도 없어 그냥 차 안에 넣어 두고 오곤 했다”고 술회했다.
이어 “남편은 너무 힘들게 일했다. 스트레스는 많고 잠은 늘 부족했다”며 “숨진 남편을 처음 봤을 때 결국 과로해서 이렇게 됐구나 싶어 너무 마음이 아팠다”며 윤 센터장을 잃은 심경을 털어놨다
윤 센터장의 부인은 남편이 몸 담았던 응급의료 분야의 열악한 환경에 대해서도 전했다.
그는 “남편이 힘들어 한지는 한참 전부터였다. 사직서도 몇 번 썼지만 본인이 그만두면 이 일 자체가 무너진다고 여겨 매번 마음을 다잡았다”고 말했다.
이어 “응급의료 분야는 일이 많고 힘들어 의사들이 기피한다고 들었다. 짐을 나눌 사람이 있었으면 좀 수월했을텐데 그 부분이 많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당직실에서 숨진 채 발견된 가천대 길병원 소아청소년과 2년차 레지던트의 누나 신은섭 씨는 기자회견을 통해 전공의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을 지적했다.
누나 신 씨는 지난 14일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준비한 기자회견에 참석해 동생이 살인적인 노동환경에서도 환자와 자신의 꿈을 위해 희생해 왔다고 강조했다.
그는 “동생 죽음은 병원의 주장대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다”며 “그러나 병원은 수련환경이 아닌 동생의 근무태도 등에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답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다시는 이런 슬픔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전공의 처우가 개선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며 “다시는 전공의들에게 아픔과 슬픔이 반복되지 않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유가족의 이 같은 적극적인 행보는 고인의 숭고한 희생을 조명함과 동시에 그동안 간과돼 왔던 의사들의 고충을 인식시키는 울림이라는 평가다.
한 의료계 인사는 “가족을 잃은 비통함 속에서도 잘못된 의료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유족의 일침은 더 간절하게 다가올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유족 바람대로 고인들의 희생이 헛되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동료사회인 의료계는 물론 전사회가 관심을 갖고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