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진료 자괴감 느낀 서울대병원 교수들
호흡기내과 4인 의기투합, 토요일 별도 외래 개설 환자 1명당 '15분 진료'
2015.03.10 20:00 댓글쓰기

"환자를 철저하게 보지 못했다는 느낌, 심지어 환자들이 하는 말을 끊을 수밖에 없는 현실, 그리고 이로 인한 자괴감에 고개를 떨구는 의사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일반적인 병원의 외래와 차이점은 한가지. 토요일 오전 15분에 1명씩 진료하면서 1시간 동안 4명의 환자를 진료하는 기존 한국적 현실과는 다른 이국적 광경이 펼쳐진다.

 

'정상적인 외래 진료 실천'을 모토로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 젊은 교수들이 의기투합하고 있는 서울대병원 호흡기내과 이야기다. 금년 초부터 임재준 분과장을 포함 4명의 교수들이 토요일 이를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서울대병원을 처음 방문하는 호흡기 환자들을 번갈아 진료키로 하고 병원에 추가 외래 개설을 신청, 매주 토요일 진료실을 열었다.


"정상적인 진료 해보고 싶은 취지에서 시작"

 

서울대병원 임재준 호흡기내과 분과장[사진]은 10일 데일리메디와 인터뷰에서 "환자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것은 물론 꼼꼼히 진찰하고, 차분히 생각할 수 있는 정상적인 외래 진료를 한번 해보고자 한다"고 취지를 밝혔다.


"3분 진료가 환자한테만 피해를 줄 것 같지만 사실 의사들한테도 악영향을 준다"는 판단에서 출발했다.


임 교수는 "비뚤어진 우리나라 시스템을 고쳐보겠다는 거창한 목표 때문이 아니다"고 선을 긋고 "그저 3분에 1명씩 총알같이 환자를 진료하는 것을 지양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그는 "검사나 잔뜩 의뢰하는 기계적인 의사가 아닌 15분 동안만이라도 환자와 대화하면서 진찰하고, 환자에게 공감하는 진짜 의사로 반나절을 보내는 경험을 해보는 것이 목표"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3시간여 KTX 타고 올라와 겨우 3분 남짓 의사 만나는 환자들"


그 간의 경험을 언급한 임재준 과장은 "3시간 가까이 KTX 기차를 타고 올라와 3분 남짓 의사를 만나고 돌아가는 것이 우리나라 일상적인 외래 진료 모습이라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임 교수는 "더욱이 3분 진료는 서울대병원처럼 다른 병원을 다니다가 병원을 옮기는 환자들에게 취약하다"면서 "각종 기록이나 CD에 담아온 영상 검사를 찬찬히 살펴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대한민국 외래 진료가 이렇게 후진적일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원인을 진단했다. 


임 교수는 "전혀 작동하지 않는 의료전달체계, 어떤 환자라도 일단 많이 진료해야 겨우 병원을 유지할 수 있는 수가 수준 등 여러 복합적인 이유들이 얽혀있다"고 짚었다.

 

그는 "짧은 시간에 환자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으니 도리없이 검사들에 의존하게 되고 그 덕에 병원이 겨우 문 닫지 않고 버틸 수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대한민국 병원계의 현실"이라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1년에 14.3번 의사를 만나는데 이 수치는 다른 국가에 비해 월등히 높다. 핀란드 사람들은 1년에 단 2.7번만 의사를 만날 뿐이다.

 

임 교수는 "쉬지 않고 환자를 진료해야 병·의원이 겨우 버틸 수 있는 왜곡된 수가 시스템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결국 3분 진료라는 기이한 행태를 낳고 말았다"고 꼬집었다.


이어 "속전속결과 박리다매를 강요하는 의료시스템이 환자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꼼꼼하게 진찰하고, 유능

하면서도 따뜻한 의사의 출현을 제도적으로 막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고 호소했다.


실제 정부가 내놓은 '차등수가제(의원급 의료기관에서 하루에 75명이 넘는 환자를 진료할 경우 급여를 삭감하여 지급하는 제도)'는 근본 원인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는 언발에 오줌 눗는식의 미봉책이라는 것이다.


"진료해보니 15분도 모자라-깊은 대화 등 상응하는 수가 책정 절실"


최근 분당서울대병원 이연주 교수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온종일 평균 91명의 외래 진료를 마친 의사들 중에는 절반이 넘는 의사들이 악화된 감정 상태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임재준 교수는 "미국 의사들은 평균적으로 16분에 1명씩 환자를 진료하는데도 환자를 보는 시간이 너무 짧아 제대로 진료할 수가 없다고 아우성이라고 한다"며 환기시켰다.


그는 "16분에도 힘든 일을 우리나라 의사들은 어떻게 단 4.7분 만에 환자 이야기를 듣고 진찰하고 검사결과를 확인, 처방하며 거기에 더해 환자 고통 공감까지 가능할까"라고 반문했다.


물론, 이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서울대병원 호흡기내과의 이번 시도가 반드시 좋은 결과를 얻을 것이라고 장담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임 교수는 "놀랍게도 15분도 모자란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의료의 질 향상은 비싼 약과 첨단 의료기기 영향도 있지만 환자들이 얼마나 의사를 신뢰하는 지가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다행인 것은 저수가로 점철돼 있는 현 주소 때문에 분명 회의적일 수 있음에도 병원측이 "응원하겠다"는 뜻을 피력했다는 측면이 그나마 안도할 수 있는 배경이다.


끝으로 임 교수는 "정부에 올바른 의료전달체계 확립이 시급하다"며 "대한민국 의사들이 충분히 진찰하고 환자와 깊은 대화를 해도 그에 상응하는 수가가 책정되길 바란다"고 소박하지만 현실적으로 힘든 바람을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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