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양보혜 기자] 정부가 '발사르탄 파동'의 책임을 제약사에게 물을 방침을 밝힌 가운데 제약업계가 무책임한 처사라고 성토했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 및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제시한 가이드라인을 준수해 제네릭 의약품을 판매했는데, 예측이 어려운 사건 발생에 대한 책임을 제약사에 전적으로 돌리는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이다.
복지부는 최근 열린 건정심에서 문제가 된 의약품 재처방 및 조제 등으로 발생한 피해규모를 조사해 제약사를 상대로 구상권 또는 손해배상을 청구한다는 안(案)을 보고했다. 건보공단은 이미 식약처에 자료 검토를 요청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제약업계와 관련 전문가들은 보건당국의 대응에 대해 비판의 날을 세웠다. 사건 초등 대응부터 마무리까지 '아마추어' 같다는 혹평을 쏟아냈다.
발사르탄 사건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던 사건이고, 제약사들이 식약처가 제시한 가이드라인에 맞춰 의약품을 판매하고 있었다는 점이 모든 책임을 제약사에 돌릴 수 없는 이유로 꼽혔다.
중국 제약사가 자발적으로 해당 사실을 보고하지 않았다면 선진국 의약품 규제기관도 파악하기 힘든 일에 대해 국내 제약사에게 지나치게 무거운 책임을 묻는다는 것이다.
판매 중지 조치를 받은 한 제약사 관계자는 "식약처 발표에 따르면 이번 사건은 중국 원료의약품 공급사가 화학 구조를 바꿔 완제품으로 제조하는 과정에서 발암물질이 생성된 것으로, 미국 FDA나 유럽 EMA도 중국 제약사가 자발적으로 그 사실을 알리고 나서야 의약품 회수 조치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고의적으로 벌어진 일이 아니라 전혀 알 수 없어서 생긴 일에 대해 제약사에게 모든 책임을 추궁하는 것은 지나치다. 물론, 제약사가 완제 의약품 제조 및 품질관리에 대해 책임이 있지만, 여전히 후속조치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피해보상 및 구상권 청구부터 논의한다는 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서울 소재 대학병원 내분비내과 A교수도 "정부가 처음 메르스 사태가 터졌을 때도 병원에 모든 책임을 전가하더니, 발사르탄 사태도 제약사만 죄인으로 몰아가고 있다"며 "제약사가 잘못한 부분도 있지만 의약품 허가 및 관리 책임을 가진 복지부나 식약처가 제 역할을 못한 부분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자기 반성은 없고 언제나 남 탓만 하며 법적 책임까지 묻겠다는 보건당국의 발상이 놀랍다"면서 "의약품 목록 공개부터 마무리까지 끝까지 아마추어처럼 행동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또한 어떤 기준을 적용해 책임의 범위를 규정하고, 적용할지 의문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현재 시판 중인 의약품은 모두 식약처의 허가기준을 통과한 것으로, 절차 위반사항이 없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제약사가 위탁제조사에 제네릭 생산에 관한 모든 책임과 권한을 위임한 경우, 자진 회수한 불량의약품과의 (처벌 정도에 대한) 형평성 문제 등도 문제제기됐다.
B제약사 관계자는 "현행 기준에 따라 의약품을 제조해 팔았는데 없는 규정 때문에 부도덕한 기업으로 몰려 손해배상 책임까지 지게 됐다"며 "우리가 지키지 않은 의무가 무엇인지, 그 의무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규정이 전무한데 희생양으로 몰리고 있다"고 토로했다.
판매 중지 해제 품목을 가진 C제약사 관계자는 "충분하게 조사되지 않은 식약처 발표로 우리 회사 이름이 여러 차례 언론에 오르내리면서 영업활동에 애로사항이 많았다"며 "자신들의 잘못에 대한 반성은 없고, 병(丙) 중의 병(丙)인 만만한 제약사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건 아니냐"고 반문했다.
D제약사 관계자는 "우리는 위탁사에 모든 것을 일임했는데 피해보상 청구서가 날라오면 누가 비용을 지불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불법의약품도 자진 회수하면 제약사에 불이익을 안 주는데, 이번 사안로 손해를 배상해야 하면 공정한지를 두고 논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약사회 관계자도 "복지부가 공단에 건보재정 피해 규모를 추산해 구상권을 청구한다는 뉴스를 보며 제약사에게 어떤 기준으로 어디까지 책임을 지게 할지가 궁금증이 생겼다"며 "차후 이런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해결책을 모색하는 일이 더 중요한 시점에 엉뚱한 이슈가 논란거리로 등장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