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양보혜 기자/기획 1]발암물질이 들어간 중국산 원료 발사르탄을 사용한 고혈압 치료제가 대거 판매 중지되는 사태가 발생하면서 복제약에 대한 신뢰성이 도마에 올랐다.
정부가 재정 절감을 위해 제네릭 처방을 장려하고 각종 규제를 완화했으며, 제약사들도 원가 절감을 위해 중국이나 인도에서 값싼 원료를 공급받아 의약품을 제조한 것이 품질 저하라는 결과를 야기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제네릭 품질 논란에 대해 의료계와 정치권, 보건당국은 각기 상반되는 입장을 갖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제네릭=저질약’으로 보는 의료계 및 정치권과 달리 식약처는 글로벌 기준에 따른 검증을 거친 약으로 지나친 우려라고 반박하고 있다.
의사 10명 중 8명 “처방 패턴 변화 예상”
의료계는 이번 고혈압 파동을 겪으며 처방 패턴에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매일 복용해야 하는 고혈압약, 당뇨약 등의 품질 논란이 지속돼 환자가 약 복용을 중단하면 더 큰 위험이 생길 수 있는 만큼 신뢰성이 더 높은 약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그간에는 제네릭 처방을 장려하는 정부 정책을 어쩔 수 없지 따랐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다수를 이뤘다.
이번 발암물질 사건이 발생하자 대한의사협회는 성명을 통해 “그동안 의사들이 믿을 수 있는 오리지널 의약품을 처방하면 고가 약을 처방했다는 경고를 받는 등 저가 복제약 처방을 강요받아 왔다”며 “의사 처방을 규제하고 무조건 싸구려만 강요하는 현 제도를 바꾸지 않으면 이번 사태와 같은 일이 또 다시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의협은 “제네릭 약효와 안전성을 신뢰할 수 없다”며 “보건방국이 나서서 오리지널 약과 비교해 제네릭의 약효 동등성 및 성분을 확실히 검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실제 설문조사에서도 의료진의 인식 변화가 여실히 드러났다. 주로 고혈압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 260명 대상 ‘발암물질 함유 발사르탄 이슈 관련 실태 및 현황’ 설문조사(인터엠디)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79%가 “발사르탄 사건 후 이 제제 의약품 처방 방법에 대해 변화가 있다”고 답했다.
특히 고혈압 환자를 많이 보는 진료과(내분비내과, 순환기 내과, 신경과, 신장내과 등)에서는 전체 응답자 대비 6%p 높은 85%의 응답자가 “오리지널로 대체 처방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사태로 의사들이 문제가 없는 발사르탄제제 의약품 처방을 주저하게 됐을 뿐만 아니라 제네릭 전반에 대한 불신이 커진 것으로 해석된다.
또 오리지널 발사르탄 성분 의약품으로의 변경 의향(53% → 45%), 문제되지 않는 발사르탄 성분의 제네릭 의약품으로의 변경 의향(12% → 10%)이 모두 하락했다.
향후 고혈압치료제 선택 기준이 바뀔 것이냐는 질문에서 응답자 99%가 “변경될 것”이라고 답했다.
의약품을 처방하는 태도와 관련, “중국산 원료인지 아닌지 등 원료를 따져보고 처방할 것”이라는 응답이 46%로 가장 많았고, “제네릭보다는 오리지널을 처방하게 될 것”이라는 응답이 11%p 오른 23%를 기록했다.
실제로 오리지널 의약품인 노바티스의 ‘엑스포지’, ‘디오반’ 처방이 급증해 전(全) 용량 품목이 동이 나는 현상이 벌어 지기도 했다.
일부 의사들은 발사르탄 대체방안으로 카나브(피마사르탄), 미카르디스(텔미사르탄) 등의 다른 오리지널 의약품으로 스위칭한 것으로 파악됐다.
학회는 조치 대상인 환자들은 해당 의약품을 처방받은 병· 의원에서 재처방 혹은 처방 변경을 받고, 필요하다면 담당 의사와 상담하도록 권고했다.
대한고혈압학회는 “많은 국민들이 고혈압약을 장기간 또는 평생 복용해야 하기 때문에, 보건당국은 엄격한 관리기준을 세워 확인하고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며 “학회는 이런 문제 발생의 원인, 재발방지 및 대책에 대해 관련 기관 혹은 전문 학술단체와 논의해 향후 국민과 정부에 정확한 정보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국회 “제네릭 난립 비정상적” 지적
국회도 제네릭 효능과 안전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카피약=저질약’으로 규정하면서 특히 비정상적으로 제조 품목이 많은 점을 문제 삼았다.
지난 7월 26일에 열린 식품의약품안전처,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 심사평가원의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집중 추궁 및 비판이 봇물을 이뤘다.
중국산 발사르탄을 원료로 하는 약이 영국은 2개사 8개 품목, 미국은 3개사 20개 품목으로 많지 않았지만 우리나라는 무려 76개사 174개 품목으로 집계됐다.
원료 하나에 제네릭 품목 수가 100개가 넘다보니 문제가 된 의약품을 회수하는 등 후속조치를 취하는 과정에서 다른 나라보다 애로사항이 많았다.
윤일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다른 나라에서는 제네릭 숫자가 적어 불미스러운 사건이 터져도 신속하게 조치를 취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품목 수가 115개나 된다”며 “비정상적인 구조가 이번 사태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눈여겨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도자 바른미래당 의원도 “환자들의 불신 해소를 위해서라도 체계적인 의약품 조사를 통한 위험성 평가가 진행돼야 한다”며 “최근 제네릭에 대한 불신이 아주 높아 시장에 오리지널 약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져 공급이 부족할 수 있다는 염려마저 나오고 있다”고 우려했다.
또한 국회에선 식약처가 원료 및 완제 의약품에 대한 관리 및 후속처리가 미숙했다는 질타도 나왔다.
김광수 민주평화당 의원은 “오죽했으면 식약처가 ‘뒷북처’라고 조롱받고 있겠냐”면서 “만약 유럽의약품안전청에서 문제가 되지 않았으면 식약처는 전혀 모르고 넘어갔을 일 아닌가”라고 따져 물었다.
식약처 “제네릭, 저질약 아니다” 해명
제네릭의 품질에 대한 의료진과 국회 의구심에 대해 식약처는 “이번 사태의 본질이 호도되고 있으며 제네릭은 ‘저질약’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국회 보건복지위 업무보고에서 피관기관장으로 참석한 류영진 식약처장은 “카피약은 저질의약품이 아니다”라며 “국제적으로 보더라도 오리지널과 제네릭 생동성시험 기준은 80~ 125%이고, 국내 제네릭도 이 기준에 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류 처장은 이어 “식약처는 제약사들로부터 자료를 충분히 받아 안전성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유독 국내에 제네릭이 많은 현실에 대해 공감한다”고 덧붙였다.
식약처는 평균 이상으로 많은 제네릭에 대해 복지부와 협의체를 구성하는 등 대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제약사들에게 발암성 물질 안전성에 관한 입증 자료를 의무적 으로 제출하는 후속 대책도 마련했다. 실제 식약처는 '의약품의 품목허가·신고·심사 규정 일부개정안'을 행정예고했다.
개정안에는 의약품 중 유전독성·발암성 유연물질의 안전성을 입증하고 관리기준을 설정토록 하는 심사기준 내용이 담겼다.
의약품에 잔류 또는 혼입될 수 있는 금속불순물에 대해 제조 방법, 용법·용량 등을 고려, 안전성 수준 이하로 관리됨을 입증하는 자료도 제출토록 했다.
식약처 측은 “발암성 불순물 등으로 인한 안전성 문제가 발생 하면 이로 인해 유발되는 사회적 비용이 크기 때문에 의약품 허가단계부터 안전성 확보를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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