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20일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MERS) 첫 환자 발생 이후 감염자는 꾸준히 증가했다.
정부의 초동 대처 미흡이 도마 위에 올랐으나, 그보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따로 있었다. 바로 국내에는 메르스 관련 정확한 진단시약이 아직까지도 찾아보기 힘들다는 현실이다.
이 같은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을 만한 자료가 공개됐다. 최근 데일리메디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업계로부터 메르스 진단시약에 대한 전반적인 현황을 수소문하고 있었다.
식약처는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에 질의서를 보내고, 업계 주요 종사자들에게 답변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요 내용을 살펴보자면 ▲영국, 중동, 미국 등에서 허가 받은 메르스 진단시약이 있다고 한다. 어느 업체 제품인가? 관련 정보가 있는가? ▲메르스 진단시약이 국내 유통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메르스 진단시약을 국내 수입예정인가? 등으로 압축된다.
지금까지 메르스 감염 여부 판정에 사용되고 있는 진단시약은 식약처로부터 정식으로 허가받은 제품이 아니다.
한 때 논란이 됐었던 실험실 조제시약과 같은 형태로 지난해 말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가 국내 업체와 개발했던 연구용 제품이 실제 메르스 현장에서 사용되고 있다.
A사 관계자는 “희귀병을 진단하는 체외진단제품의 경우 상품가치가 낮기 때문에 대형병원 내에서 자체적으로 조제해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귀띔했다.
이번 메르스 진단시약도 비슷한 양상이다. 지난 5월 첫 메르스 확진환자가 나오기 전까지 정부는 메르스 진단시약을 충분히 보유하지 않았다.
결국 식약처가 국내 메르스 사태 발생 이후 무려 한 달이 지난 시점에서 이 같은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는 것은 그동안 정부가 얼마만큼 메르스 대처에 미흡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업계는 기초적인 양성, 음성 판정조차 명확하게 내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감염자가 더욱 증가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A사 관계자는 “일부 감염 의심자의 1차, 2차, 3차 판정 결과가 다르게 나오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본다”며 “상품가치가 없는 진단시약이라고 안일한 대처를 했기 때문에 메르스 사태가 더욱 확산됐다”고 지적했다.
업체별 메르스 관련 외국산 제품 수입 ‘산 넘어 산’
문제는 또 있다. 정작 미국 FDA, 유럽 CE 인증을 받은 외국산 진단시약이 국내에 유통되려면 별도의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
현재까지 의료기기 관련 국내 법령에서 ‘긴급사용승인’ 또는 ‘임시사용승인’과 같은 위기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제도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미국 FDA는 긴급사용승인 권한을 갖고 있다.
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관계자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메르스 진단시약을 유통하기 위해서는 다른 제품과 마찬가지로 식약처로부터 임상시험 결과를 포함한 안전성·유효성을 입증하는 모든 자료를 제출하고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전했다.
즉, 제도에 발목이 붙잡힌 나머지 메르스 진단시약과 같은 시급한 제품의 경우에도 국내 도입이 쉽지 않은 것이다.
한편, 현재 일부 업체에서는 대승적인 차원에서 자료 요건을 검토한 뒤 수입 허가 진행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