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분쟁기금 마련을 위해 의료기관 개설자들에게 손해배상금 대불제 시행 및 운영방안을 공고한 것은 합법이라는 행정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로써 의료분쟁조정원이 34억9000만원의 재원 마련을 위해 의료기관 개설자(병·의원장)들에게 대불금을 부담케 하는 법적 근거가 생기게 됐다.
이번 판결로 진료 및 수술 과정에서 환자들이 입게 될 의료사고 손해배상을 위한 대불금 책임이 전국 병·의원장들에게 있음이 확실시 되면서 사실상 의료계의 주장이 모조리 기각돼 향후 미칠 충격 역시 상당할 전망이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 문준필 부장판사는 최근 30명의 의사들이 의료분쟁조정원을 상대로 청구한 '손해배상금 대불시행 및 운영방안 공고처분 취소' 소송에서 의사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소송의 쟁점으로 부상한 것은 의료분쟁조정법 제47조(손해배상금 대불) 1항과 2항이다.
1항에 따르면 의료사고로 인한 피해자(환자)가 손해배상금을 지급받지 못할 경우 미지급금을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 대신 지불할 수 있다. 2항은 의료기관 개설자는 위 대불금에 필요한 비용을 부담해야한다.
이 제도는 의료사고에 따른 피해를 신속하게 구제하고 보건의료인의 일시적인 경제적 곤란을 방지해 최종적으로 안정적인 진료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목적이다.
법률에 따라 의료분쟁조정원은 의료기관의 종류에 따라 의원급은 약 3~10만원, 병원급이 100만원, 상급종합병원이 600여만원에 달하는 대불 재원을 지급하는 취지의 공고를 공표했다.
이에 동의하지 않는 의료기관 개설자들이 분쟁조정원을 상대로 "손해배상 책임이 없는 개설자들에게 대불금을 내라는 것은 위법하고 재산권과 평등권을 침해하는 위헌소지가 있으므로 공고처분을 취소하라"고 행정소송을 제기하면서 법적 분쟁으로 번졌다.
특히 이번 이슈는 심리를 맡은 행정법원 11부 문준필 부장판사가 '개설자들의 대불금 지급 책임'이 명기된 의료분쟁조정법 47조 2항에 대한 위헌 소지가 있다고 여겨 위헌법률 심판마저 청구할 만큼 예민한 상황으로 전개됐다.
그러나 헌법재판소가 의료분쟁 손해배상금 대불금을 의료기관 개설자에게 부담케 하는 것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리면서 승소의 저울추가 의료분쟁조정원으로 기울었다.
소송을 제기한 30명의 의사들은 "의료사고에 대해 아무 책임이 없는 개설자에게 대불비용을 부담케 하는 것은 재산권 침해 행위"라며 "대불제도의 실질적 수혜자인 의사와 환자에게 대불비 책임을 주지 않고 개설자에게만 부과하는 것은 평등원칙에 위반돼 위헌이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의료분쟁 해결 여부와 비율, 손해배상금 대불비용 비율, 의료기관 특성에 따른 의료사고 발생가능성, 의료사고와 병의원 개설자-의사와의 인과관계, 책임 비율 등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고 성토했다.
즉 의료사고를 야기한 자는 개설자가 아니라 병의원에 고용된 의사 등 의료인인데 무작정 개설자의 책임만을 강조하는 것은 위헌이며 의료사고를 야기한 자와 책임을 지는 자가 달라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법원은 "의료사고의 책임은 피용자인 의사가 아닌 사용자인 개설자에게 있으므로 대불금 책임 역시 개설자에게 있다"며 분쟁조정원의 승소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의료기관 개설자라면 누구나 의료사고 발생과 경제사정 악화의 위험부담을 안고있으므로 이 위험을 완화시키기 위한 대불제도의 책임을 개설자에게 지우는 것은 합리적이다"라고 못 박았다.
이어 "분쟁조정원은 대불 적립 목표액을 34억 9000만원으로 한정하고 의료기관 종류에 따라 적정한 부담금을 책정해 개설자들의 향후 부담시기를 예측할 수 있도록 했다"며 "모든 의료기관 개설자는 대불제를 통해 위험을 줄이는 이익을 누리므로 개설자들의 재산권을 침해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