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사들에 막대한 피해를 줄 것으로 예상되는 베트남 정부의 갑작스런 의약품 입찰규정 개정 배경에 제약계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베트남의 자국 의약품산업 보호 및 육성이 표면적인 이유로 알려졌지만 그 이면에는 국내 제약사의 서류 미비, 품질 이슈 등 일탈이 빌미를 제공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8일 제약계에 따르면 최근 휴온스, 명문제약, 한국코러스제약 등을 비롯한 국내 제약사 수 곳에서 관련 서류 위조 및 제품 불량 등이 적발돼 베트남 현지에서 문제가 불거졌다.
현지 사정에 정통한 제약계 관계자는 “수년 전부터 베트남 현지 인허가에 대한 무지 또는 간과에서 발생된 사안이 발생했다. 일부에선 제품 불량이 실사를 통해 적발되거나 보고되기도 했다”고 상황을 전했다.
실제 휴온스의 경우 지난해 초 베트남 보건당국이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인허가 및 관련 서류 접수 과정에서의 서류 날조 등이 이유였다.
이에 따라 휴온스의 관리자급 임원 등이 지난해 초 베트남 보건당국을 방문, 미비점 등을 설명하고 보완했다는 전언이다. 또 거짓으로 명기된 서류들에 대해선 소명절차를 거쳤다.
30여 개국에 150여 품목을 수출을 하고 있는 한국코러스제약도 도매 역할을 담당하는 베트남 현지 대행사에서 이와 유사한 사안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명문제약 역시 수출과 관련된 첨부 서류 진위 여부에 대한 불신이 발생했다. 베트남 보건당국의 문제 제기 및 확인 요구에 따라 이곳 공장장 등이 직접 베트남을 방문, 확인 작업을 가졌다.
이후 국내에서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공장 현지실사 등을 통해 품질관리 현황 등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식약처는 현재 일부 문제가 발생한 제약사에 대해 행정처분 등을 검토 중이다.
제약사 “현지 에이전시 문제가 대부분”
논란의 중심에 선 제약사들에 대해선 그동안 베트남 수출로 인한 경제적 이득에 대한 손실과 함께 윤리적 해이 지적이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이들 제약사들은 “문제의 시작은 베트남 현지 에이전시였다. 과거 회사가 현지법인을 두거나 사전에 시장상황조차 파악할 여력이 되지 않을 당시 발생된 문제가 대부분”이라고 해명했다.
과거 국내사 대부분은 수출을 위해 현지 유통사와 계약을 맺는 사례가 많았다. 이들은 제품 유통 뿐만 아니라 베트남 보건당국의 허가 절차까지 담당했다.
이 과정에서 판매허가를 빠르게 얻기 위한 서류 날조, 공무원과 결탁 등이 횡행했다. 또 이 같은 일탈 사례가 관행적으로 수년째 이어져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휴온스 관계자는 “길게는 10년 전 믿었던 에이전시의 업무 처리가 최근 문제로 불거졌다”면서 “제품 품질의 문제라면 할 말이 없지만 현지 에이전시의 서류 날조 등 외부 문제가 발생, 억울한 측면이 있다. 법률 검토 등을 통한 대처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발표된 베트남 보건당국의 개정안에는 의약품 입찰 시장에서 미국, 일본, 유럽에서 인정받은 의약품만 제조품질관리기준(GMP) 1~2등급으로 인정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업계에선 ‘자국 의약품 산업 보호’가 우리나라 의약품 배제의 유력한 이유로 보고 있지만 국내사의 이 같은 관행적 일탈이 빌미가 됐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관계자는 “국내 업체의 일탈이 베트남 입찰규정 제한의 이유 중 하나였을 것으로 파악된다”면서 “단순 서류 누락 등이 대부분이지만 일부에선 제품 불량 등 기준에 크게 미치지 못한 곳도 있어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부 제약사의 문제가 전체 제약사 피해로 확대됐지만 해외에서 불거진 문제를 처벌하기가 쉽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베트남에는 국내 제약사 30곳 이상이 진출한 상태다. 베트남 의약품 수입국 중 3위에 해당하는 규모이며, 연간 2000억원에 달하는 매출을 올리고 있지만 개정안이 그대로 시행되면 국내사들의 수출은 벽에 막힐 공산이 크다.
한국의약품수출입협회 관계자는 “현지에서 문제가 발생했다고 해서 국내 약사법에 적용해 처벌하기는 어렵다”면서 “다른 업체에 직접적인 피해가 올 경우 해당 업체에서 손해배상 등을 청구할 수 있겠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고 상황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