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M의 왓슨 포 온콜로지 이후 영상과 이미지를 통해 질병 진단을 보조하는 소프트웨어는 어느새 친숙한 존재가 됐다. 지금은 식약처의 첫 허가를 어떤 국내 업체가 먼저 받을 수 있을지 관전하는 흥미진진한 상황까지 왔다.
주인공은 영상자료를 통해 질병 진단을 보조하는 의료 소프트 웨어로 뷰노와 JLK인스펙션 두 업체다.
뷰노는 ‘뷰노메드 온에이지’라는 성장기 자녀의 골연령을 측정하는 소프트웨를 보유하고 있다. 엑스선(X-ray)으로 촬영한 손 뼈 영상을 분석해 골연령의 판단을 보조한다.
업체에 따르면 해당 시스템을 적용한 임상시험 결과 정확도가 평균 10% 향상된다고 한다.
JLK인스펙션은 AI 기반의 뇌경색 MR영상 진단 보조 시스템 ‘JBS-01K’의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전 세계 많은 업체들이 개발하고 있는 병변을 검출하는 기능에 더해 뇌경색 원인을 분류해 전문의 진단을 보조하는 기능을 탑재하고 있다.
이밖에도 미국 스타트업 투자 분석 업체 CB인사이츠(CB Insights)가 꼽은 100대 AI기업에 선정된 루닛도 딥러닝 기반 AI와 흉부 X-ray 이미지 인식 기술을 접목시킨 의료영상 진단보조 소프트웨어로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의료AI 싱크탱크 야심 길병원·서울아산병원
이 같은 국내 벤처뿐만 아니라 병원들도 단순 활용을 넘어, 자체적인 AI 기반 진료 보조 시스템 개발에 착수하고 있다.
의료기관 가운데 왓슨 시스템을 맨 먼저 채택한 가천대 길병원의 약진이 돋보인다.
신경외과 이언 교수가 인공지능병원추진단장을 맡아 인공지능 진료의 수가 항목 도입을 주장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대학 병원을 찾는 중증 당뇨병 환자를 위한 인공지능 클리닉을 개소했다.
당뇨병의 특성상 나이가 들수록 유병률이 높아져 특히 대표적 고령 질환으로 경각심의 대상이다. 만성 합병증의 위험성으로 중증·고위험 당뇨병환자의 치료 및 관리 또한 이슈다.
이에 길병원은 인슐린 펌프 및 다회 주사, 인슐린 양과 주입 횟수 계산, 환자 맞춤 당뇨교육과 임상 영양교육 등에 인공지능 기술을 접목할 방침이다.
예를 들어 인슐린 펌프에 연속혈당 측정기(CGMS)를 연동해 혈당이 떨어지면 인슐린 주입속도를 늦추고, 반대로 높아지면 인슐린 주입속도를 빠르게 해 자동으로 고혈당과 저혈당을 예방하는 식이다.
당뇨·내분비센터 김병준 교수는 “다학제 진료와 췌장이식을 비롯해 혈당 관리를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인공지능 프로 그램을 활용해 국내 당뇨병 치료수준을 한 단계 상승시키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서울아산병원은 뷰노 및 코어라인소프트, 메디컬스탠다드 등 국내 의료영상소프트웨어 전문업체들을 비롯해 분당서울대 병원 및 한국과학기술원과 공동으로 인공지능 의료영상 사업단을 2017년 1월 발족해 의료용 인공지능 기술 연구를 진행 중이다.
또 2017년 12월부터는 보건복지부가 주관하는 ‘의료기기 중개임상시험지원센터’ 사업에 최근 새로 선정돼 앞으로 4년 6개월 간 약 45억 원의 사업비를 지원받고 인공지능 수술 로봇 및 소프트웨어 등 의료정보융합 자동화 의료기기 개발 기업과 협업할 계획이다.
인공지능 기반 의료기기 등은 연구개발 비용이 많이 들 뿐 아니라 임상과정도 까다로워 개발이 지연되거나 완료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서울아산병원 측은 국내 중소기업 지원을 통해 사업기간 동안 36건 이상의 비임상ㆍ임상시험을 지원하고, 국내외에서 5개 이상의 의료기기를 허가받을 계획이다.
해당 사업 책임연구자인 의공학과 최재순 교수는 “병원에 구축된 임상 인프라를 바탕으로 ▲수술ㆍ재활ㆍ간호 로봇과 자동화 의료기기 ▲임상데이터 기반 인공지능이 융합된 신개발 의료기기 ▲환자 생체 및 영상 정보 기반 신개념 의료기기 등을 개발하는 기업에게 비임상 및 임상시험 과정을 직접 컨설팅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다변·다각화 인공지능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까
임상 현장에서는 빠른 발전이 가져오는 의료 환경의 변화를 두려워하는 시각도 있다.
서울소재 A대학병원 외과 교수는 “수술로봇의 등장을 보면서 우리 세대에 의료기기가 더 발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며 “빠른 변화가 계속되면 이를 좇기 어려워 도태되는 의사가 등장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병원 환경 발전으로 업무 효율이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인공지능 기반 소프트웨어를 통해 뇌지도를 작성하고 있는 동국대 일산병원 김동억 교수는 “정확성을 높인 진단 보조 AI가 있다면 전공이 아닌 의사들도 판별에 도움을 얻을 수 있다”며 인공지능이 진단 효율을 높여줄 것으로 예측했다.
병원 예약 및 진료일정 등 상담서비스에 인공지능 챗봇을 처음 도입한 부산대병원 관계자는 “고객 민원 90%를 챗봇이 응대하고 있으며 시간과 장소에 관계없이 병원 이용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해 준다는 측면에서 효과적”이라며 “향후 챗봇 서비스를 통해 파생되는 빅데이터를 분석해 신규 서비스를 창출하는 방안도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내 한 의료AI 스타트업 관계자는 “인공지능이라는 광범위한 개념 안에 다양한 기술이 포함된다. 사실 인공지능 적용을 표방하는 많은 기술들은 알파고만큼 복잡하지 않다”며 “병의원에서도 의료기관 규모와 필요에 맞는 인공지능을 활용할 수 있다면 업무효율 개선과 홍보 효과도 있지 않겠느냐” 고 말했다.
이처럼 진료 외 업무에 AI기술이 도입되는 것은 병원 시스템 효율화에 기여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AI 의사와 동료가 될 수 있을까
문제는 AI가 진료실 내로 침투할 때다. 진단 보조 소프트웨어 이상의 비중을 갖추고 다양화될 수 있으려면 진료 수가가 인정돼야 하는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최근 대표적인 의료 AI인 왓슨이 의료 기기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왓슨이 진단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보조 역할 이상을 해내지 못한다는 점에서다.
그렇다면 AI가 스스로 진단과 수술을 시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긴데 이번에는 법적인 문제가 생긴다. 의료사고 발생 시 책임 소재를 스스로 판단하는 AI 의료기기가 져야 하는지, 아니면 이를 허가한 의사의 몫이 돼야 하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은 최근 발간한 ‘자동화기계를 이용한 의료수술의 형법적 쟁점 연구’에서 “수술로봇 활용도가 높아지고 있으며 머지않아 입력된 명령에 따라 자율적으로 수술을 하는 자율수술로봇 시스템이 상용화될 가능성도 있다”며 “현실에 반해 수술로봇으로 인한 의료사고를 규율하는 현행 법제는 아직 미비한 수준”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혼란스런 상황에서도 의료AI 개발에 뛰어드는 움직임은 계속되는 상황이다.
최근 정부는 10년 이내 상용화가 유망한 10대 보건의료 기술로 인공지능재활치료를 꼽고, AI 기반 국산 정밀의료 솔루션의 개발을 지원하기 위해 유관부처 및 민간 전문가, 기업 등이 참여하는 ‘지능형 정밀의료 솔루션 추진단(가칭)’을 구성했다.
사업을 주관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측은 “보건의료 빅데이터특별법 제정 지원 및 지능형 의료SW 수가반영 등을 관계 부처와 협의할 계획”이라며 “의료 AI가 발전할 수 있도록 다양한 서비스 발굴에 나설 것”이라고 자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