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노인요양시설 촉탁의사 제도를 개선, 시행한데 대해 노인의학 전문가들이 ‘조삼모사’식 정책일 뿐이라고 반발하고 나섰다.
진찰 및 방문비용을 지나치게 낮게 책정한 가운데 의료사고에 대한 부담만 의료인에게 떠넘겼다는 지적이다.
대한노인의학회는 6일 서울시 종로구 나이트리벤션에서 열린 제25차 추계학술대회에서 기자간담회를 통해 “개선된 촉탁의 제도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촉탁의의 책임만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5월 노인요양시설 촉탁의사 제도를 대폭 손질한 개정안을 발표하고 지난 9월부터 본격적인 운영에 나섰다.
개정안은 촉탁의의 진찰비용과 방문비용 등 활동비용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진찰비용은 수급자 1인당 월 2회까지 급여를 받을 수 있으며 초진활동비는 1만4410원, 재진활동비는 1만300원을 지급한다.
또 방문비용은 장기요양기관당 월 2회, 촉탁의 1인당 월 2회까지 산정가능하며 1회당 5만3000원이 지급된다.
“의료분쟁 휘말리느니 차라리 무료봉사가 낫다”
이은아 학술이사(헤븐리병원)는 “제도 개선에 따라 무료봉사식으로 활동하던 촉탁의들은 한달에 110만원 정도의 건강보험 급여를 받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문제는 수가가 너무 낮게 책정됐다는데 있다. 특히 방문비용의 경우 방문 시 발생하는 교통비 등의 비용조차 감안되지 않았으며 가정간호 비용보다도 낮은 수준으로 정해졌다”고 지적했다.
이어 “또 다른 문제는 촉탁의가 혈액검사 등 기본적인 검사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장기요양보험 급여를 지급함으로써 의료사고에 대한 책임을 촉탁의에게 떠넘길 우려가 있다”며 “이러한 제도 운영은 촉탁의 제도를 파행으로 이끌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장동익 상임고문도 “우리나라에서 왕진(방문) 비용으로 5만3000원만 주거나 받는 경우가 어디 있나”라며 “촉탁의 진료를 개별 진료행위로 인정한다면 현실적인 수가 책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정부는 노인요양시설에서도 전문의로부터 진료를 받을 수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며 “진료라는 단 한 단어로 인해 촉탁의는 의료분쟁에 휘말릴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이럴거면 차라리 과거처럼 무료봉사 형식으로 운영하는게 나을 수 있다“고 피력했다.
또 학회는 건강보험급여를 받기 위한 행정 시스템과 촉탁의 등록 절차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 이사는 “요양시설과 건보공단에 이중으로 진료기록을 남겨야 하는 실정이다. 특히 요양시설에서는 수기로 진료기록을 남겨야 해 불편함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IT 강국을 자처하는 우리나라의 촉탁의 등록 수단은 팩스다. 지역의사회는 물론이고 요양기관 역시 마찬가지다. 당연히 온라인으로 등록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학회는 요양시설의 의료기관(요양병원)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이 이사는 “요양시설은 의료기관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식으로 홍보해 환자와 보호자에게 혼동을 줄 여지를 만들고 있다. 요양이 필요한 환자는 요양시설에, 진료가 필요한 환자는 의료기관에 갈 수 있도록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고문도 "의료기관도 아닌 요양시설에서 변칙적으로 의료기관인 것처럼 행세할 수 있다. 요양시설과 의료기관의 구분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밖에 학회는 정부와 대한의사협회가 촉탁의 제도의 문제에 대해 보다 깊은 관심을 갖고 대책을 마련해줄 것을 촉구했다.
이욱용 회장은 “촉탁의 제도의 개선은 좋은 취지에서 이뤄졌지만 이미 여러 가지 문제점이 노출됐다. 이에 학회에서는 복지부에 탄원서를 보내는 동시에 의협에 공문을 보냈지만 깜깜무소식인 상태다. 촉탁의 제도가 더 나은 방향으로 개선될 수 있도록 중지를 모을 때”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