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의 급여등재 기간이 지나치게 길다”며 단축을 요구하고 있는 다국적 제약사들이 정작 등재 ‘허가-급여 연계제도’ 신청은 한 건도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급여등재 기간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은 외면하면서 길어진 등재기간을 정부 탓으로만 돌리는 이중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27일 정부 및 제약계에 따르면 다국적 제약사들은 정부가 지나치게 낮은 약가를 요구하는 탓에 의약품 접근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하고 있다. 보험 등재까지 걸리는 기간이 그만큼 길어진다는 의미다.
최근 대한종양내과학회 학술대회 기간에 진행된 한국암치료보장성확대협력단 특별 세션에선 우리나라의 항암제 급여 등재기간이 허가 후 평균 789일에 이른다고 발표됐다.
이 같은 통계를 근거로 다국적 제약사들의 모임인 KRPIA(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는 “정부가 급여등재 기간을 단축해야 한다”고 줄기차게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수치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기는 곤란하다는 것이 정부 입장이다. 적지 않은 제약사들이 허가 후 본사와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실제 급여를 신청하기까지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보다 높은 약가를 받기 위해 급여시기를 저울질하거나, 다른 제품과의 경쟁을 고려해 적응증을 조율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일부는 약가에 대한 견해 차이가 아닌 근거자료의 미비 등으로 인해 자료를 보완하는 과정에서 심사기간이 늘어지기도 하고, 더러는 전략적 판단에 따라 자진 취하하는 경우도 있다.
정부는 급여 신청 후 등재까지 걸리는 기간을 240일에서 270일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특히 항암제나 희귀질환 치료제에 대해서는 이보다 빠르게 심사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허가 후 등재까지 평균 789일이 걸린다는 제약사측의 주장과 급여 신청 후 등재까지 최대 270일이 걸린다는 정부의 주장이 모두 사실이라 가정하면, 제약사의 노력으로 500여일을 줄일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적어도 제약사들이 급여신청까지 시간을 줄임으로써 그들이 주장하는 ‘의약품 접근성 향상’에 상당히 기여할 수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약품 접근성 향상’을 주장하는 이들은 정작 가장 빠르게 급여 등재에 이를 수 있는 ‘의약품 허가-급여평가 연계제도’는 전혀 활용하지 않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지난 2014년 시행된 ‘의약품 허가-급여평가 연계제도’는 급여등재까지의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약제급여평가 담당자가 시판허가 단계에서 제약사 자료를 사전에 검토하는 제도다.
하지만 제도 시행 이후 현재까지 단 한 건도 ‘의약품 허가-급여평가 연계제도’를 활용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정부의 지적이다. 의약품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활로는 모색하지 않고 정부 탓만 하고 있는 셈이다.
보건복지부 곽명섭 과장은 “제도적으로는 허가와 동시에 급여신청이 가능한데 제약사들이 전략적인 판단으로 식약처의 허가 후 급여 신청을 늦추는 경우가 있다. 그럼에도 건보공단과 복지부에 책임을 묻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