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역 병원에 근무하는 응급구조사가 잇따른 투서로 홍역을 앓고 있다.
최근 서울 A 종합병원과 유명 B대학병원에서 연달아 응급구조사가 무면허 의료행위로 보건소 조사를 받았다.
A 병원의 경우 투서를 접수받은 보건복지부가 해당 보건소에 응급구조사 배치를 확인하라는 공문을 보냈고 B 병원은 관할 보건소로 직접 제보가 접수됐다.
A 병원에서는 응급실 외에도 중환자실(ICU), 수술실 등에서 응급구조사가 배치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법상 응급구조사가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별표 14에 명시된 15개 항목을 제외한 다른 행위를 할 경우 불법이다.
따라서 관할 보건소는 응급구조사가 해당 부서에서 할 일이 적다며 의문을 제기하고 3월 말까지 응급실과 구급차 이외에 배치된 인원을 조정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사실상 해고를 의미하는 것이어서 A병원에 근무하는 24명 지위가 위태롭게 됐다.
B 병원도 관할 보건소에 응급구조사 의료행위 동영상을 포함한 투서가 접수됐다. 해당 보건소 관계자는 “정식 접수는 아니지만 향후 점검할 때 참고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제보내용에 대해 보건복지부에 유권해석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2004~20011년까지 면허에 합격한 응급구조사는 총 9120명으로 이중 병원 응급구조사는 최소한 3000여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돼 유권해석에 따라 향후 파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이 사건들은 복지부에서 진행하는 점검 중 발생한 것이 아니라 익명의 제보에 의한 것이라는 점에서 병원내 직무가 겹치는 다른 직역의 견제가 의심되는 상황이다.
A 병원은 응급구조사 근무 배치도와 명단 등 자세한 내용까지 노출됐고, B 병원 경우 관할 보건소에 “우리가 조사를 해본 결과 응급구조사들이 불법 의료행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는 것.
한 응급구조사는 “복지부에서 진행된 것이라면 보건소에 현황 파악을 하라는 공문이 내려왔을 것”이라며 “관련단체가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된다”고 추측했다.
또 응급구조사들은 "잇따른 투서에 속앓이를 해야 하는 배경에는 잘못된 현행법이 문제가 있다"며 억울함을 나타냈다.
A 병원 한 응급구조사는 “지금까지 하고 있던 것이 갑자기 불법이라고 하니 억울하다”며 “3~4년씩 공부하는 강도와 국가고시를 통과해야 하는 자격증임을 고려하면 업무 범위가 너무 좁다.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 병원 응급구조사들은 인력수급이 어려운 병원 등에서 간호사나 간호조무사가 하는 간단한 일들을 대신하고 있다.
현행법상 불법임에도 계속 이뤄지는 이유는 1995년 응급구조사 제도가 신설될 때는 응급구조사의 진료보조가 합법이었기 때문이다. 2000년 의료법이 개정되는 과정에서 해당 조항이 삭제됐지만 관행에 따라 이후에도 계속 근무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현행법상 불법이기 때문에 고발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해 11월에는 제천 C 병원 응급구조사가 환자 상처를 봉합하는 동영상이 언론을 통해 공개돼 담당 의사는 입건되기도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응급구조사들은 임상구조사회를 만들고 병원 내 근무하는 응급구조사들의 진료보조를 합법화할 것을 주장했다.
임상구조사회 김건남 회장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병원에서 시키는 대로 한 것뿐인데 문제가 됐다”며 “응급구조사가 할 일이 아니라면 병원에서 시키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41조에 따르면 의료기관 내에서 응급처치를 할 수 있다”며 "응급구조사 의료행위가 합법화돼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