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정숙경 기자] "환자가 그토록 고통을 호소하는데도 가족들은 휠체어에 환자를 태운 채 엠뷸란스를 타고 병원으로 온다. 예외적으로 본인의 가치관을 말하는 환자도 있지만 상당수는 연명의료계획서는 가족들이 작성토록 하면될 것을 굳이 왜 내가 써야 하느냐고 호소한다."
우여곡절 끝에 시행된 연명의료결정제도가 5개월을 맞이했지만 연명의료행위 중단 등 그 결정에 있어 혼선을 겪는 등 현장에서는 상당한 진통을 겪고 있다는 지적이다.
서울대병원 종양내과 허대석 교수[사진]는 1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개최된 ‘연명의료결정제도 현장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 모색 토론회’에서 이 같은 경험을 소개하며 조속한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먼저 지난 2월부터 5월까지 통계를 보면 서울대병원에서는 매달 100여 명이 사망하는데 본인이 연명의료계획서(14.8%)나 사전연명의료의향서(0.8%)를 작성하는 비율은 15.1%에 그쳤다고 보고했다.
반면, 가족 2인 추정, 가족 전원 동의를 통한 법정서식 작성은 57%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허 교수는 “지난 2016년 통계청 집계 결과 28만827명이 사망한 가운데 연명의료결정법을 따르는 기관은 고작 10~20%였다”며 “80~90%의 기관은 관행에 따라 DNR을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서울대병원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연명의료결정법 법정서식의 본인 작성 비율이 1/3 수준이었고 의사 추정 1/3, 가족 대리 1/3으로 나타났다.
허대석 교수는 “어떤 서식이든 본인 작성 비율이 1/3에 그친다는 대목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자기결정권을 존중한다는 취지에서 법을 만들었음에도 어떤 통계를 봐도 가족에 의한 추정과 대리결정이 대다수”라고 꼬집었다.
그나마 법정 양식을 지키고 있는 10~20%에 해당하는 의료기관은 상급종합병원이며 그렇지 못한 소규모, 요양병원은 법정 양식을 지키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는 “최근 한 상급종합병원 실제 상황을 파악한 결과 의료기관윤리위원회에서 판단은 했지만 내부 지침은 따라지 않아도 된다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해봐야 골치 아프고 이득도 없기 때문이다. 소규모 요양병원은 지킬 수도 없을뿐더러 대형병원 마저도 실제로는 지킨다고 해 놓고 아예 규정을 따르지 않고 있다”며 “그야말로 법은 만들어 놓았지만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회에서 연명의료결정제도가 만장일치로 통과됐지만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어떤 요인 때문일까. 허 교수는 ▲환자와 가족 ▲의료진 ▲서식 등 행정적인 전산화 문제 등을 지목했다.
허대석 교수는 “실제 의사가 가족들과 소통을 해야 하지만 당신이 곧 죽을 것이라는 얘기를 하는 것 자체가 서로에게 고통이다. 가족이 그렇다고 해서 환자와 소통을 하는 것 아니다. 의사와 가족, 의사와 환자, 환자와 가족, 어떤 관계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의료진의 입장에서는 현행 한국의 제도 하에서는 협조가 어려울 수 밖에 없는 점을 언급했다.
그는 “일본이나 대만 등을 봐도 말기, 임종기를 구분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억지로 구분하다 보니 의견 불일치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책임 문제가 맞물려 있는 상황에서 의사에게 책임을 돌려선 안 된다”고 짚었다.
가장 큰 쟁점은 현재 연명의료결정법에서는 환자의 의사 확인이 불가능한 경우 가족 전원의 동의를 통해 연명의료행위를 계속 시행할 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부분이다.
허 교수는 “현재 대리결정을 위해서는 전원 및 2인 이상이 해야 하는데 다른 나라는 서명 조차 요구하지도 않는다”며 “말기환자를 두고 이토록 복잡한 자기결정권을 논쟁하는 나라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연명의료결정제도의 원칙은 자기결정권 존중이다. 하지만 환자가 고통을 당하지 않게끔 도와주려면 무엇이 최선인지 돌아보고 제도를 조속히 개선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