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제약·바이오기업을 겨냥해 부풀린 연구실적에 관한 회계 점검을 예고하자 중소제약사 및 바이오기업 등에서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지난 28일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결산 결과가 공시되면 개발비 관련 결산 및 감사시 유의사항, 주식공시 모범사례를 중심으로 회계처리 현황 등을 신속히 분석·점검하고 회계위반 가능성이 높은 회사를 선정해 테마감리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이 같은 점검은 기술적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는 R&D 비용을 무형자산으로 인식해 영업이익을 부풀릴 경우 투자자들에게 잘못된 투자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은 연구 개발비에 대해 실현 가능성 등 특정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에는 '무형자산'으로,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비용'으로 처리토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금감원에 따르면 제약·바이오 상장사 152곳 중 83개사가 개발비를 자산에 포함시키고 있다. 일부 기업의 경우 임상시험에 들어가기도 전에 개발비를 무형자산으로 계상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 기업의 평균 개발비 비중은 총자산의 4%, 이 가운데 19개사는 개발비 비중이 총자산의 10%를 넘었다. 개발비 비중이 평균 1%인 전체 상장사들과 비교해 매우 높은 수치라는 것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글로벌 기업들은 신약 개발의 불확실성을 고려해 대부분 정부의 판매승인 시점 이후 연구개발 지출만 자산에 포함하지만 국내 기업들은 국내 임상실험 전에 자산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금융당국의 연구개발비 감리 착수에 대해 제약·바이오기업들은 제약산업 특수성을 고려하지 못한 조치로, 연구의지가 꺾일 수 있다고 우려하는 모습이다. 특히 중견제약사와 바이오업체들에서 반대 의견이 많은 실정이다.
국내 한 중견제약사 관계자는 "제약사가 실적을 부풀려 주가 상승을 통해 큰 이익을 보려고 했다면 이는 바로잡아야 하는 일"이라며 "하지만 타깃 물질도 얼마든지 기술수출의 대상이 되는데, 3상 이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허위 실적으로 보는 것은 제약산업의 특수성을 반영하지 못한 결정"이라고 토로했다.
상장 바이오기업 관계자도 "주식 투자자가 옳지 못한 정보를 보고 피해를 보는 일은 막아야 하지만, 이제 커가는 단계인 바이오산업의 연구개발 의지를 꺾는 정책"이라며 "미래 가치가 높은 약만 자산으로 기재하라는 것인데 여러 후보 중 딱 하나, 아니 하나도 개발에 성공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상당수가 잠재적 회계 분식기업으로 몰리는 게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제약바이오協·상위 제약사 "보편적 시각서 보면 규제 필요" 긍정적 입장
반면, 한국제약바이오협회와 상위 제약사들은 금융당국의 이런 조치가 과하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상식선에서 R&D 투자를 비용으로 기재하는 게 맞고, 해외에서도 이 기준을 적용하고 있는 만큼 준수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근거를 내세웠다.
협회 관계자는 "보편적인 상식에 근거해서 보면 3상 이하 연구개발 투자비를 자산으로 잡는 것은 맞지 않다"며 "글로벌 제약기업도 신약 개발의 불확실성을 고려해 대부분 정부 판매승인 시점 이후의 지출만을 자산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건강한 제약산업 생태계 조성을 위해 필요한 규제는 수용한다는 게 협회의 기본 입장"이라며 "물론, 이 과정이 일부 업체에겐 고통스러울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수용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반대로 열심히 하는 기업들에겐 다방면의 지원이 제공돼야 한다"고 밝혔다.
상위 제약사들도 금융당국의 회계 점검에 대해 수용한다는 반응이다.
상위 A제약사 관계자는 "우리 회사는 오래 전부터 최소 임상 3상 이상으로 개발이 무르익은 단계에서만 연구개발비를 자산으로 처리하고 있다"며 "금융당국의 이 같은 조치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상위 B제약사 관계자도 "우리와 비슷한 규모의 회사들은 대부분 다 이 기준을 따라온 것으로 알고 있다"며 "임상 3상을 시작해도 엎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1상이나 전임상 연구결과를 자산으로 잡으면 되레 기업 가치나 신뢰가 떨어질 수 있다고 본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