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다영 기자] 분만 중 신생아가 입은 장애를 두고 억대의 손해배상금을 요구하며 가족들과 의료진이 오랜 기간 벌인 법정싸움에서 의료진은 잘못이 없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등법원은 최근 분만 중 신생아에게 일어난 장애의 책임을 묻는 손해배상청구소송 파기환송심에서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대법원까지 올라갔다가 파기환송되면서 총 네 번의 재판을 거친 이 사건을 두고 법원은 의료진의 무과실로 결론지었다.
사건의 발단은 2009년 11월 중순경 벌어졌다. A병원에서 정기적으로 산전 진찰을 받았던 B씨는 임신 38주째인 2010년 6월 10일 양막이 파열돼 A병원에 입원했다.
A병원 의료진 C씨는 초음파 검사를 통해 태아가 후방후두위 상태였지만 태아심박동 및 자궁 수축은 정상이라고 판단했다.
같은 날 자궁경관 안쪽으로 태아의 머리가 보이자 의료진은 자궁 상부를 7회에 걸쳐 압박하는 질식분만을 시도했다. 이때 태아의 머리는 잘 나왔지만 어깨가 산모의 골반 내에 걸려 잘 나오지 않는 견갑난산이 발생했다.
의료진은 B씨의 양쪽 다리를 배까지 끌어올려 치골궁에 압력을 견인하는 맥로버트 수기법으로 3.92kg의 D양을 분만했다.
출생 직후 D양이 울음은 없고 청색증의 소견을 보이자 의료진은 D양에게 자극을 주면서 기도흡인과 심장마사지, 앰부배깅을 실시했다. 이 같은 조치에 D양 상태는 다소 호전됐지만 울음이 강하지 않고 양쪽 쇄골 골절이 의심돼 의료진은 상급병원으로 전원이 필요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후 E대학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았으나 증세가 호전되지 않아 D양은 현재 뇌성마비로 인지기능과 발달기능 장애를 보여 뇌병변 1급 장애로 등록된 상태다.
B씨 가족은 "의료상 과실"이라고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B씨 가족은 "의료진은 수기회전이나 재왕절개가 아닌 질식분만을 시행했고 D양 출생 직후 이뤄져야 하는 기관내 삽관조치가 17분이나 늦어졌다. 또한 기관내 삽관은 직경 3.5~4mm가 아닌 3mm 튜브가 삽입돼 앰부 배깅시 공기가 새는 소리가 들렸음에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심 법원은 B씨 가족의 청구를 기각하고 병원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의사는 진료를 행함에 있어 환자 상황과 의료수준, 본인의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에 따라 생각할 수 있는 몇 가지 조치 중에서 적절하다고 판단되는 진료방법을 선택할 수 있고 그 중 어느 하나만이 정당하고 그와 다른 조치를 취한 것에 과실이 있다고 말할 수 는 없다"면서 "의료진이 태아가 후방후두위에 있음을 확인하고 재왕절개수술을 시행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는 의료상 과실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한 "일반적으로 신생아의 경우 3mm 튜브를 가장 많이 사용하고 삽관 이후 상태가 호전됐으며 의료진이 심폐소생술을 실시하고 나서 D양의 상태가 호전됐다는 점 등을 고려했을 때 의료상 과실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B씨 가족은 1심 판결에 불복하고 항소했다. 서울고등법원은 B씨 가족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의료상 과실이 인정된다는 점을 들어 A병원에 3억7467만원을 배상하라고 주문했다.
법원은 "E대학병원으로 전원한 후 의료진은 앰부배깅시 새는 소리가 나는 것을 확인했는데 이는 후두 크기에 비해 작은 사이즈의 튜브가 삽입됐거나 기관 내 삽관이 잘못되는 등 오류가 있는 경우 발생할 수 있다"면서 "A병원 의료진이 기관내 삽관을 시행한 이후 D양에게 적절한 산소 공급이 이뤄지지 않았으며 이는 기관 내 튜브의 직경이 너무 작았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의료진이 기관 내 튜브를 제때 적절한 크기로 교체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지 못한 과실로 말미암아 D양이 저산소증 뇌손상으로 현재 뇌성마비 장애에 이르게 됐다고 볼 수 있다"고 판시했다.
3억원이 넘는 배상금을 선고받은 A병원 측은 항소심에 불복하고 대법원의 문을 두드렸다.
대법원은 항소심 재판부의 판결에서 법리를 오해한 부분이 있다며 서울고등법원으로 해당 사건을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D양의 호흡관리에 문제가 있었다기보다 기질적 원인에 의한 것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원심이 들고 있는 사정만으로는 A병원 의료진의 과실로 인해 이같은 결과가 발생했다고 추정하기 어렵다"면서 "의료진의 과실을 인정한 원심판결에는 의료사고에 있어서 증명책임 분배에 관한 법리를 오해하고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아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봤다.
이어 "원심판결 중 피고 패소 부분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 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하기로 한다"고 덧붙였다.
서울고등법원은 해당 사건을 다시 심리하면서 대법원의 지적을 받아들였다.
법원은 "A병원 의료진이 시행한 기관 내 삽관에도 불구하고 D양은 산소포화도가 낮게 나타났는데 이는 호흡관리보다 기질적 원인에 의한 가능성임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 "D양 뇌손상의 결과가 A병원 의료진의 과실로 인한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을 정도의 개연성이 답보되지 않는다. 의료진의 과실과 D양의 뇌손상 사이에 인과관계를 추정하기 어렵다"라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