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언어를 사용하는 국가가 둘로 갈라져 있는 곳은 이제 우리 대한민국 밖에 없다. 더구나 남북은 모두 단군의 후손으로 단일민족이라고 자부하는, 세계 어디에서도 보기 어려운 단일 민족공동체다. 이렇게 자랑스러워야 할 우리민족이 이제 딱 하나 남은 분단국가라니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새 정권이 들어서면서 남북관계가 더욱 경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정권에서 금강산 관광사업이 문을 닫더니 이제 그나마 경제협력이라는 얇은 관계성의 끈마저 끊어져 버리기 일보 직전이란 생각이 든다.
궁지에 몰린 북은 마지막 수단으로 핵무기를 협상 수단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 더욱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실로 남북의 앞날은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상황이 되고 말았다.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체제 대립으로 인해 분단된 우리와 비슷한 분단 체험국가로 독일을 살펴보자. 비록 정치적 이념의 차이로 동서로 나뉘어 있었지만 비정치적인 분야에서는 비교적 자유로운 왕래가 있었음을 우리는 안다. 특히 의료와 같이 철저히 정치와는 무관한 학문 분야에서는 활발한 학술적 교류는 물론이고 같은 의료 용어를 쓸 정도로 비슷한 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물론 정치적 차이에 의한 사회제도 차이로 동서독 간에 의료 운용 시스템의 차이는 있었지만 전체적인 의료계의 모습은 현재의 우리와 비교하면 가히 하늘과 땅 정도의 차이라 할 정도로 다른 모습을 보여 주었다.
우리나라가 지금의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통일을 맞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비단 의료계 뿐 아니라 전 사회 분야에서 야기될 혼란은 이루 말 할 수 없을 것이다. 상호간에 비정치적인 분야만이라도 교류를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의료인이기 때문에 의료계에서 예상되는 혼란과 관련해서 몇 가지 지적하고자 한다. 거듭 지적하지만 북한의 극단적인 폐쇄성 때문에 남북한 의료의 차이는 전 영역에 걸쳐서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니다. 가까이는 의학 용어, 의료의 체계, 의료 수준, 심지어는 질병의 발병 양상까지도 철저하게 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남북간의 교류가 거의 막혀 있기 때문에 앞서 열거된 의료와 관련된 여러 가지 사항에 대한 현황을 알려 주는 정확한 정보를 얻기가 대단히 어렵다는 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통일이 이루어진다면 다른 분야는 모르지만 의료 관련 혼란만으로도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입을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 비슷한 상황의 독일 만해도 통일 후 시스템의 차이 때문에 약간의 혼란이 있었지만 짧은 시간 안에 극복될 수 있었던 것은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거의 모든 영역에서 잦은 교류를 통해 상황에 대한 지식을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점들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작년에 서울의대에서 통일의학센터를 설립한 것은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보통은 직접 북한을 방문해서 잘 사는 남한이 못사는 북한을 의료물자로 도와주는 식의 의료계 교류가 대부분이었다면 이 센터에서는 차분히 남북한 의료계 각 영역에서의 현황을 비교하여 그 차이를 줄이기 위한 대책이 되는 정책을 준비하는 기관이라는 점에서 색다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 센터의 활동과 보조를 맞춰 통일의료에 관심이 있는 세 분의 국회의원들과 통일의학포럼이 지난 1월 출범했는데 이 또한 의미 깊은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의료가 분명 비정치적 분야이지만 정치적 후원이 없이는 실제적으로 아무런 대책을 세울 수 없는 것이 대한민국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제 곧 통일의학센터가 세워진 지 일 년을 맞는다. 그간 여러 연구비 지원을 통해 중요한 작업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뿐 만 아니라 그 사이에 두 차례의 포럼도 개최되었다. 통일 후 의료계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한 남북한 의료정보의 벽돌이 한 장씩 차근차근 싸여져 가고 있다. 언제 올지 모르는 통일이지만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올지라도 나는 오늘 한그루 사과나무를 심겠다'던 스피노자의 마음이 대한민국 의료인 모두의 바람일 것이라는 소박한 생각으로 오늘도 보람찬 하루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