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0일 의정협의체 소득 없이 해산···공은 복지부로
의·병협·시민단체, 각개전투 예고···政 “정책 반영 가능 사안 제도화”
2018.04.11 11:05 댓글쓰기

[기획 3]대한의사협회와 대한병원협회 간 합의안 도출이 불발되면서 결국 의료전달체계 개선 권고문 채택이 실패로 돌아갔다.

지난 2016년 1월 15일부터 2년에 걸쳐 정부와 의료계, 시민 사회계가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 온 의료전달체계 개선 방안 합의가 무산된 것이다.

의료전달체계 개선과 일차의료 활성화는 의료계 숙원사업 중 하나였다. 의원은 외래, 병원은 입원, 대형병원은 고위험환자 진료 및 연구로 이어지는 전달체계를 확립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당분간 재논의 및 협의 가능성은 희박해졌다. 의료계 일부에선 “차려놓은 잔치상을 엎은 꼴이다”, “논의를 시작하지 않은 것보다 못한 결과”라는 비판도 나온다.

의료전달체계개선협의체에 참여했던 한 의료계 인사는 “권고안 폐기는 현 상황을 유지하겠다는 선언과도 같다”며 안타까움을 피력했다.

그의 이야기에선 전달체계 개편 없이는 의원과 병원·종합 병원·상급병원이 환자를 두고 지금과 같이 무한경쟁을 벌이는 상황이 바뀔 수 없다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다른 인사도 “일부에선 권고안 폐기를 놓고 ‘의료계가 여전히 먹고 살 만한가 보다’는 야유도 나온다”면서 “단순히 눈앞의 이익에 급급, 자기주장만 반복하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우려했다.

일차의료 활성화 지원 요구 명분 사라진 의료계

실제 권고안 합의 불발 시 의료계가 감수해야 할 손해는 적지 않아 보인다. 일단 일차의료활성화를 위한 각종 정책적 지원과 그에 수반될 추가 투자를 받을 수 있는 명분이 사라지게 됐다.

당초 협의체는 전달체계 게이트키퍼로서 일차의료기관을 육성해야 한다는데 뜻을 모았다. 그에 따른 수가 지원 등은 당연한 수순으로 여겨졌다.

서울의대 김윤 교수는 “추가재정 투입은 정부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라며 “ 이해당사자들의 합의 결과라는 명분이 중요한데 (권고안 합의 불발로) 정부 입장에서는 전달체계 개편과 일차의료 강화를 명분으로 해 재정을 추가로 투입할 명분이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정부가 전달체계 권고안 합의를 반드시 성사시키고 싶어 한다는 것은 의료계의 착각”이라며 나빠진 상황을 우려했다.

그는 “장기적으로 가야할 방향은 맞지만 당장 재정 부담이 크다. 전달체계 개편과 관련해 정부는 굳이 지금 반드시 성사시켜야 할 이유는 없다”고 진단했다.

여당에서도 유사한 목소리가 나온다. 전달체계 개편 불발로 가장 손해를 보는 집단은 정부도 가입자도 아닌 의료계, 특히 개원가라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조원준 보건의료전문위원은 “정부가 의료전달 체계 개선 권고문 채택을 엄청나게 하고 싶어한다는 것은 의료계의 오판”이라고 꼬집었다.

권고안이 없을 때 오히려 정부의 자율성과 권한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전문가 합의로 나온 전달체계 개선 권고문이 마련 되면, 정부는 이에 근거해 정책추진을 해야 한다.

조 위원은 “전달체계 개편의 골자는 그간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일차의료기관에 물을 대겠다는 것으로 당초 병원계의 반발이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다. 제도 개선으로 가장 큰 수혜를 받게 될 집단이 가장 크게 반발하는 지금의 상황을 좀처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부, 시민단체 포함 개별 논의 전개

이제 의료전달체계 개선의 주도권은 보건복지부로 넘어갔다. 개선협의체에 참여했던 각 이해관계자들은 자신들의 의견 반영을 위한 각개전투를 치를 전망이다.

방향성마저 상실된 의료계와 달리 시민사회는 독자적으로 의료 전달체계 개편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소비자연구소·한국환자단체연합·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등 시민사회단체는 “의료이용체계 개선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과제였다. 권고문을 끝내 채택하지 못하게 한 의료계는 불발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권고문 채택 여부와 관계없이 합리적이고 투명한 의료 이용 체계, 소비자 요구에 근거한 새로운 의료환경 조성을 위해 시민사회 독자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대정부 협의를 강화하는 한편 의료전달체계 개선 협의체를 통해 논의하고 공감한 기본 원칙을 발전시키고 구체화해서 실제 정부 정책에 반영되도록 하겠다”고 피력했다.

이에 ▲의료기관 기능에 부합하는 수가체계 개편 ▲기능에 적합지 않은 의료 공급에 대해서는 수가 인하 ▲일차의료 기관의 입원 병상 중장기적 폐지 ▲수술 및 입원 기능을 수행 하는 외과계 의원은 2차 의료기관으로 분류 ▲시설, 인력, 장비, 운영기준 강화 등을 정부에 요구할 방침이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현재(3월 19일)까지 3차례 회의를 가진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 실무협의체 논의와 연계, 지불제도 및 전달체계 개편 등 낭비없는 건보재정의 지출 구조를 만드는데 전력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의료전달체계 개편 필요성은 예전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됐던 문제이고, 2015년 메르스 사태를 겪으며 시민사회와 의료계의 공감대 속에서 개선 논의를 본격화 했다.

무엇보다 의료전달체계 개선은 왜곡된 의료환경을 바로잡고 의료자원의 효율적 운영을 도모한다는 점에서 선택이 아니라 필수로 추진해야 할 과제다.

그런 측면에서 의료계의 적극적인 참여가 없더라도 복지부 차원에서 정책적으로 추진할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정부는 권고문 초안 중 정책에 반영 가능한 사안을 가려내 제도화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해당 내용에 입법적 조치까지 가미 되지 않아도 시행할 수 있는 사안들이 많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는 “3차 상대가치점수 개편 작업을 통해 상당 부분을 녹여낼 것”이라며 “이는 수가 현실화 논의와 연관될 수 있다”고 밝혔다.

현재 본격적으로 시동이 걸리고 있는 3차 상대가치개편 작업은 진찰료와 입원료 등 기본진료료 개선이 골자다.
1차와 2차 상대가치점수 개편에서 빠진 기본진료비를 개선 하고 종별가산 등 가산제도를 정비할 계획이다. 복지부는 3차 상대가치점수 개편을 통해 의료기관 종별 기능을 확립을 모색하겠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복지부는 만성질환관리 사업에도 관련 수가를 신설해 적용할 방침이다. 정윤순 보건의료정책과장은 “현재 만성질환관리 시범사업을 진행 중이다. 구체적으로 모형이 만들어지면 그 후에 본사업을 할 때는 수가가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복지부는 금년 3월 ‘2018년도 업무계획’을 국무총리에게 보고한 자리에서 동네의원 중심의 만성질환 관리 체계를 구축 하겠다고 보고했다.

동네의원에서 고혈압, 당뇨 등 통합관리서비스를 제공토록 하기 위해 올 상반기 중 기존 만성질환관리 사업의 장점을 연계·통합한 포괄적 만성질환 관리 서비스 모형을 개발하고 적용할 방침이다.

정 과장은 “의료전달체계 개선 논의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인 의원급 단기병상과 문제에 대해서는 시간을 두고 검토하겠다. 시간을 갖고 차근차근 풀어나갈 것”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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