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암 치료 환경에 많은 변화가 일고 있다. 정밀의학 발전으로 보다 세밀한 암종 진단이 가능해졌고, ‘꿈의 암 치료기’라 불리는 초고가 장비가 속속 등장하면서 암 정복에 대한 희망을 높이고 있다. 암 치료 발전 속도가 빨라지면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암 환자를 치료하는 빅5 암병원장들 역시 분주해졌다. 발전된 암 치료법이 국내 실정에 알맞게 뿌리내릴 수 있도록 표준을 제시하는 게 이들의 임무 중 하나다. 코로나19 사태로 혼란스러웠던 병원 현장도 안정을 되찾고 있는 상황에서 데일리메디는 서울대, 연세대 등 빅5 암병원장들에게 향후 국내 암 치료가 나아가야 할 방향 등을 들었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⓵ 이우용 삼성서울병원 암병원장
⓶ 양한광 서울대병원 암병원장
⓷ 허수영 서울성모병원 암병원장
⓸ 김태원 서울아산병원 암병원장
⓹ 금기창 연세의료원 암병원장 ※ 병원명 가나다 順
[데일리메디 박정연 기자/
기획 4] 서울아산병원 암병원은 지난해 외래환자 100만명 시대를 열었다. 2014년 암병원으로 승격한지 8년 만이다.
코로나19 시국 속에서도 모든 진료성적이 우상향 그래프를 그리는 모습이었다.
환자들의 높은 신뢰는 국내 지표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지난해 병원은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발표하는 ‘임상분야별 세계 최고 병원 2021’ 중 암·내분비 분야에서 한국 1위‧세계 5위를 기록했다. 전년도 순위 세계 7위를 기록한 것보다 두계단 더 올라섰다.
국내·외에서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는 병원은 또 한 번의 도약을 준비 중이다.
일단 오는 2027년 개원 목표인 서울아산병원청라(가칭)를 중심으로 한 대규모 시설투자가 예정돼 있다.
내부에선 진료 프로세스 전체 과정을 대상으로 한 ‘원내시스템 효율화 혁신’이 시작됐다.
병원의 이 같은 미래 계획에는 ‘환자 중심’이란 목표가 있다. 환자 입장에서 보다 나은 의료서비스가 무엇인지 생각하고, 이를 실현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실행하는 것이다.
최근 데일리메디와 만난 김태원 서울아산병원 암병원장은 “암이란 커다란 질병과 싸우는 환자들이 우리 병원을 찾았을 때 이전보다 훨씬 더 양질의 경험을 구현할 수 있을지, 그것이 가장 큰 고민”이라고 말했다.
“종합정보시스템 혁신 기반 ‘기다림 없는 병원’ 지향하고 진료지침 표준화 확립”
코로나19 이후 암병원 중장기 계획을 묻는 질문에 김 병원장은 “서울아산병원 중점 분야가 바로 암(癌)이다. 국내 암환자의 14%를 우리 병원에서 보고 있다. 많은 환자들이 찾는 만큼 ‘병원 얼굴’이란 생각으로 책임감을 갖고 앞으로의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고 운을 뗐다.
당장 추진 중인 사업은 ‘종합정보시스템 혁신'이다. 한마디로 현재 병원에서 이뤄지는 진료과정을 전체적으로 손질하겠다는 의지다.
외래부터 치료까지 필요한 전(全) 과정에 대한 모니터링을 실시, 환자가 진료를 받는데 소요되는 시간과 자원을 최적화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 게 목표다.
김태원 병원장은 “대형병원은 필연적으로 내원 초기단계에서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며 “처음 병원을 찾은 환자는 ‘내가 과연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을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신속한 진료”라며 “현재 추진 중인 종합정보시스템이 자리를 잡으면 내원 초기단계에서 소요되는 시간이 상당히 단축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신속한 진료’를 위한 병원의 또 다른 계획은 ‘진료지침 표준화’다. 지금까지 사용되던 단순한 지침서를 개선‧보완해 복잡한 치료과정의 효율화를 도모한다.
검사에서 진단까지, 진단에서 치료까지, 치료에서 더 좋은 성과를 내기까지 일련의 과정에 필요한 각종 지표들을 분석해 최적의 지침을 만든다는 게 병원 계획이다.
이를 위해 병원은 현재 각 치료지표의 데이터화를 통한 분석작업을 실시하고 있다.
그는 “단순히 경험적 근거에 의존하지 않고 객관적 데이터에 근거한 진료지침서를 만드는 게 목표”라며 “먼저 지금까지 병원에 축적된 40만건의 유전자 및 일반 검사 데이터를 활용하고자 한다”고 전했다.
이 같은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인프라는 이미 충분하다. 병원은 지난 2017년 ‘암병원 데이터센터’를 열고 병원에서 수집되는 각종 지표를 분석할 수 있는 기초연구에 착수했다.
연구에 활용되는 모든 데이터는 환자 동의를 얻고 익명화 처리가 완료된 자료다.
5년 간의 기초연구를 마친 데이터센터는 진료지침 외에도 각종 임상현장에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질 지표 개발에 돌입할 계획이다.
암종별 ‘러닝 맵’을 도입해 치료여정에 따른 맞춤 교육 프로그램도 늘려나가는 것도 그 중 하나다.
김 병원장은 “기본적으로 다학제 진료가 이뤄지는 암은 그 치료 여정이 매우 길다”며 “힘든 질환과 싸우는 환자가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다방면에서 고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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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운영체계 외에도 환자가 있는 공간 등 시설적인 측면에서도 개선과 확장을 모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보다 많은 환자들이 적기에 진료 받고 원활한 회송시스템으로 최적 서비스 받도록 총력”
김태원 병원장의 ‘환자편의’에 대한 고민은 비단 서울아산병원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암 환자 편리가 증진되기 위해 모든 병원이 합심해 적재적소에서 진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는 지론이다.
그리고 "국내 암치료 인프라를 개선하기 위해선 ‘암환자 수도권 쏠림현상’에 대해 의료계와 정부가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암환자 쏠림현상은 모든 대형병원들의 고민이다. 계속 강조했듯이 진단이나 치료에서 지연이 생긴다면 환자 편의가 저하된다. 이를 위해서라도 각 의료기관이 적절한 환자 수요를 소화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먼저 대형병원에선 회송시스템 강화를 위해 노력 중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서울아산병원 암병원에서 지난해 지방병원으로 회송된 환자는 2019년 대비 무려 43% 증가했다. 내원환자 100만명 중 약 8만명은 지방병원 등 다른 의료기관에서 치료를 받은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회송의 ‘양(量)’뿐만 아니라 ‘질(質)’"이라고 김 병원장은 강조했다.
그는 “암환자들이 조금 더 큰 병원을 찾는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때문에 다른 병원으로 보낼 때는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에게 회송 이유와 근거를 정확하게 설명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서울아산병원 암병원에서는 먼저 환자 상태가 회송이 가능한지 여부를 의료진 회의를 거쳐 살핀다.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표준화된 치료를 통해 병증의 개선이 가능한 환자들을 확인하는 것이다.
다음 단계는 해당 환자에게 적합한 전문가를 소개하는 것이다. 병원과 의료진이 가진 네트워크를 활용, 학계에서 해당 암종에 대한 역량을 인정받은 담당의를 환자와 곧바로 연결한다.
이러한 과정은 환자에게 쉽고 자세하게 설명된다. 이같은 노력을 통해 보다 많은 환자들이 안심하고 다른 병원으로 회송될 수 있다고 김 병원장은 말했다.
“수도권 쏠림현상 해소, 지방병원 역할 정립 중요”
그는 “대형병원과 지방병원들 간 암(癌) 의료진 역량에는 차이가 없다. 세계 의료기관의 치료성적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대부분 암종의 치료성적에서 한국은 최상위 치료성적을 기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방병원들 과제는 이들의 역량만큼 환자들 신뢰를 얻는 것”이라며 적극적인 행보를 독려했다.
정부를 향해서도 제언했다. 현재 서울을 중심으로 거점병원들이 중증질환 전문병원으로 전환되고 있는데, 이렇게 되면 결국 암 치료 인프라가 수도권에 집중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김 병원장은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면 그동안 지연됐던 암 치료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러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 일찍이 의료전달체계 개선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물론 암 치료에서 대형병원이 해야 하는 중요한 역할도 있다.
그는 “최근에는 정밀의학이 도입되면서 분류나 진단 기준 자체가 세분화되고 있다. 이러한 부분에서 디지털 병리등을 한발 먼저 도입한 대형병원의 경우 세컨드 오피니언(second opinion)을 제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대형병원 암 치료 최전선에서 활약하는 의료진들에게도 격려의 한 마디를 남겼다.
김 병원장은 “심평원 집계에 따르면, 2021년 대면 다학제 신청 건수의 약 30%를 서울아산병원이 담당했다. 수차례 회의가 필수적인 다학제진료는 의료진의 열정과 공감이 없으면 어려운 일”이라며 “새로운 치료의 표준을 제시하는 우리 책무도 열심히 수행해 나가자”라고 독려했다.
이어 “가장 큰 암 치료기관들이 환자 수로 경쟁하는 시대는 지났다”며 "각 의료기관이 각자의 역할에 충실할 때 국민들에게 더 좋은 진료서비스가 제공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