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생 의대 광풍···"과도한 선행 사교육 규제 필요"
학원가, 전국 136개 프로그램 운영·6개월간 7년 선행학습 등 실시
2024.08.14 05:55 댓글쓰기

의대정원 확대 정책 여파로 현재 초등학교 재학생 사이에서도 의대 광풍이 번지며 교육계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에 성행 중인 ‘초등의대반’을 비롯한 과도한 선행 사교육을 법으로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의대에 들어가기 위해 초등학생이 무려 7년 과정을 선행 학습하며 수학 과목을 배우는가 하면, 초등의대반 테스트에 통과하기 위한 선행 학습 사례도 비일비재한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하 사걱세)과 국회 교육위원회 강경숙 의원(조국혁신당)은 13일 오후 국회의원회관에서 ‘초등의대반 방지법 제정을 위한 국회토론회’를 개최했다. 


강경숙 의원은 “현재 사교육 시장은 시험에 익숙한 최종병기를 양성하고 있다”며 “무려 14배속 선행으로 교육 효과를 본다는 건 들은 적이 없다. 명분·선언 수준에 그치지 않고 촘촘한 규제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토론회 취지를 밝혔다. 


구본창 사걱세 정책대안연구소 소장은 최근 조사한 사교육업체 초등의대반 운영 실태를 소개했다. 조사는 지난달 14일부터 30일까지 온라인으로 이뤄졌으며, 그 결과 전국 17개 시도 중 16곳(제주 제외)에서 초등의대반 관련 홍보물이 발견됐다. 


초등학교 5학년 학생이 고1 수학 선행학습 포착  


조사 결과 초등의대반을 개설·운영하는 학원은 89곳, 개설된 프로그램은 136개였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서울이 28곳으로 가장 많았고 경기 20곳, 대구 10곳, 광주 6곳, 인천 5곳, 부산 3곳 등이 뒤를 이었다. 


사걱세는 136개 프로그램 중 교습 범위를 파악할 수 있는 프로그램 72개의 선행 교육 정도도 살폈다. 5년 이상 교육과정을 압축적으로 운영하는 프로그램은 45개로 전체의 62.5%를 차지했다. 


▲10년 선행 2개 ▲8년 선행 5개 ▲7.5년 선행 1개 ▲7년 선행 6개 ▲6년 선행 11개 ▲5년 선행 20개 등이 있었다. 


대표적인 사교육 과열 지구 초등의대반 운영 현황을 살펴보면, 특히 서울 강남 소재 G학원은 14배속의 선행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초등학교 5학년이 7년 과정을 선행 학습하는데, 6개월 동안 고1 수학(상) 과정을 배우는 식이다.


초등의대반에 들어간 학생들은 대학과정에서 다루는 수준을 배웠다. 사걱세가 초등학교 5학년을 대상으로 초등의대반을 운영하는 학원 5곳의 교재를 살폈더니, ‘가우스 기호’와 ‘행렬식’ 등 대학 교육과정에 해당하는 문제가 다수 포함됐다는 설명이다. 


구본창 소장은 “초등학교 5학년을 이미 중학교 2학년 교재로 가르치는데, 여기 나오는 문제는 대학과정을 포함하고 있는 현실”이라며 “레벨테스트를 보기 위해 기본적으로 초등학생이 중3 과정도 학습을 마쳐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초등의대반을 운영하고 있는 학원 관계자도 구 소장에게 회의적인 입장을 내놨다고 했다. 


서울 소재 모 수학학원 원장은 “이미 20년 전부터 초등의대반이라는 건 있었지만, 제대로 따라가는 아이들은 5% 미만이다”며 “이 프로그램으로 상위권 성적을 받아 의대에 진학하는 경우도 있지만 아동학대 수준으로 가혹한 프로그램인 건 맞다”고 전했다.  


이에 사걱세 측은 ▲학교급을 넘어서는 선행 사교육 상품에 대한 금지 규정 신설 ▲사교육 레벨테스트에 대해 선행 출제 금지 규정 적용 ▲사교육 선행학습 유발 광고 위반 시 제재 규정 신설 등을 담은 법안을 제안했다. 


“의대 입학만을 위한 교육, 국민이 원하는 의사를 만들 수 있을까”


의대 재학생도 현재 ‘의대 입학’만을 위한 교육이 과연 국민이 원하는 의사를 기르는 자양분이 될 수 있는지 고민해봐야 한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과도한 경쟁에 노출된 아이들이 보상 심리에서 수익이 좋은 진료과를 택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토론에 나선 김준성 성균관의대 학생은 “의대는 의사가 되기 전 의학을 배우는 곳으로, 환자와 공감하고 사회 문제를 통찰해 주변인 협력을 이끌어내는 역량이 필요하다”며 “사교육에 잠식된 사회에서 이러한 역량을 갖춘 이가 의대에 가기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어릴 때 인문학적 소양을 쌓고 많은 이와 상호작용을 해야 하는데, 사교육에 파묻혀 있다가 의대에 가게 된다”며 “의대에 입학하고 나서야 책을 읽고, 사람을 만나겠다고 다짐하더라도 의대 학습량에 치여서 그마저도 실현이 어려워진다”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안주란 교육부 사교육입시비리대응담당관은 관련법 제정 시 보다 세심한 설계가 필요하다고 봤다. 


안 담당관은 “시·도 교육청과 합동점검을 나가 보면 높은 수준의 교육을 하는 학원에서 ‘심도 있게 초등학생 수준에 맞춰 가르치고 있다’는 주장을 하면 제대로 제재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의견이 있다”며 “교육 관련 규제를 위해서는 세부 내용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고교학점제 등 정책 변화도 있고, 선행학습 광고를 제재해도 학원가 설명회 등이 편법으로 진행돼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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