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브란스 예강이 사건→의료분쟁 자동중재 도화선?
조정신청 각하시 피해구제 난항…개정안 국회 통과여부 주목
2014.08.21 20:00 댓글쓰기

 

“사실 조정보다는 정확한 사인을 알고 싶다. 아이가 하늘에 갔을 당시에도 의구심이 있었지만 부검으로 아이를 또 다시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았고, 현재 갖고 있는 자료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요추천자시술을 받다 병원 응급실에서 사망한 9살 정예강 양의 엄마 최윤주 씨가 지난 4월 열린 한국환자단체의 ‘제10회 환자샤우팅카페’에서 한 말이다.


‘예강이 사건’이 분쟁조정절차 자동개시를 규정하고 있는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으로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지난 1월 23일, 초등학교 3학년 故 전예강 양은 신촌세브란스병원 응급실에서 사망했다.


유족 측이 공개한 의무기록 등에 따르면, 전예강 양은 사망 3일 전 코피를 쏟아 응급실을 찾았다. 응급실에 들어간 지 4시간이 지나서야 RBC수혈을 받았으며, 수혈 시작 5분 뒤 뇌 감염 여부를 파악하고자 마취 없이 요추천자시술을 했다.


유족 측은 “환아 상태를 무시하고 40여분 동안 여러 병원 직원에 의해 신체가 억제된 상태에서 레지던트 1년차 2명이 유추천자를 5회나 실패했고, 그 도중 저혈량성 쇼크로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자녀를 잃은 부모는 사망 원인을 알고자 했으나 병원의 반응은 냉랭했다.


병원은 "유족 측은 미숙련 의료진의 문제를 지적했으나 전공의 환자진료는 나라에서 허가하고 있는 사안이다. 병원에서는 요추천차 시술만으로 환자가 사망한 것으로 보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이어 "정확한 사인은 병원 측에서도 알 수 없다"고 전했다. 부검을 하지 않은 탓이다. 병원 관계자는 "의료진 입장에서 어린 환자가 사망한 것에 도의적 책임을 느낀다. 하지만 의료적 시술이나 절차가 잘못돼 사망한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답답한 마음에 유족 측은 의료분쟁조정을 신청했으나 각하당했다. 신촌세브란스병원 측이 조정을 거절한 것이다.


유족 측과 환자단체는 8월21일 신촌세브란스 연세암병원 앞에서 “병원을 통해 딸의 죽음에 관한 어떠한 대답도 얻지 못했다”며 “또 다른 피해를 막고, 딸의 진상 규명을 위해 자동중재개시가 이뤄져야 한다”고 호소했다.


의료분쟁조정법 27조 8항은 조정신청 상대방이 동의하지 않거나, 14일 간 응답하지 않으면 중재를 각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2011년 이후 피신청인의 동의거부나 14일 간의 무응답으로 각하된 비율은 58.6%다.


환자단체는 ‘예강이 사건’이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하 중재원)의 조정중재의 한계를 보여준 사례로 꼽고 있다.


의료사고 의심 환자에 조정신청 각하 의미는


조정신청 각하는 환자에게 의료인이나 의료기관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할 기로에 서게 한다. 중재원의 조정과 달리 소송은 기간, 금액, 책임성 규명 등에서 환자에게 큰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중재원에서는 90일(최대 120일) 내에 의료사고로 인한 손해배상액을 조정중재 한다. 중재원에서 추산하 바에 따르면 1심 판결에 평균 26.3개월이 소요된다. 그 기간동안 변호사 선임비 등 고액의 소송비가 드는 것은 당연하다.


또 다른 핵심은 소송을 제기한 환자 측이 의료인 과실을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재원에서는 의료사고감정단에서 분쟁해결에 필요한 사실조사, 과실 및 인과관계 규명 등의 역할을 수행한다.


이들은 보건의료인 및 법조인, 소비자단체 임원경력자 등 공정성·전문성을 인정받은 전문가 50~100인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감정위원은 학식과 경험이 풍부한 분야별 전문의, 치과의사, 한의사 2명, 판사·검사, 변호사의 자격있는 자 2명, 소비자권익을 대표하는 자 1명 총 5명으로 꾸려진다. 의사 · 치과의사 등 자격이 있는 조사관은 이들의  업무를 보좌한다.


중재원에서 이러한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물론 조정이 성립됐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즉, 조정 자체가 각하된 예강이 유족은 사실조사, 과실 및 인과관계 규명 등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최윤지 씨가 조정 각하 후 민사소송을 진행하고 있음에도 “사실 조정보다는 정확한 사인을 알고 싶다”며 목놓아 운 것은 유족 측이 인과관계 규명 등을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 국회 통과 가능성은


지속된 문제제기에 지난 3월 당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이었던 오제세 의원은 의사 동의 없이도 조정이 시작될 수 있도록 한 의료분쟁조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는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 계류된 상태인데, 아직 심의가 이뤄지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난항이 예고된다.


우선, 자동조정개시는 의료계에서 극렬하게 반대하는 사안이다. 조정신청이 남발될 수 있고, 의사와 환자 간 신뢰관계가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환자단체나 시민단체에서도 반길 수만은 없는 상태다. 시만단체에서는 ‘원용금지’ 조항과 현직 검사를 배제할 수 있도록한 조항을 독소조항으로 꼽고 있다.


개정안에서는 ‘조정 절차에서의 당사자 또는 이해관계인 진술이나 생성된 감정서 또는 상대방이 제출한 자료는 민사소송에서 원용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중재가 결렬돼 소송을 진행할 경우 중재 과정에서 생성된 이해관계인의 진술, 감정서, 상대방이 제출한 자료 등을 법원에서 쓸 수 없다는 의미다. 이는 환자에게 중재원의 중재안 수용을 사실상 강제한다. 


또한 개정안에는 ‘검사로 재직하고 있거나 10년 이상 재직했던 사람 1명’을 감정위원으로 둘 수 있도록 했다. 현직 검사 한 명을 필수적으로 두도록 한 것에서 그 범위를 넓힌 것이다.


시민단체에서는 현직 검사가 감정위원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사실조사, 과실 및 인과관계 규명 등에 있어 보다 실효성 있고 핵심적인 접근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형사소송으로 이어졌을 경우 중재원에서의 감정서가 제 효력을 발휘하게 될 수 있다는 믿음도 그 이유 중 하나다.


오제세 의원실 관계자는 “현행법은 중재의 전제조건인 합의 기회조차 박탈하고 있다. 이해관계인 간 협의를 통해 법안이 조속히 통과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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