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특별법 제정과 병원계 숙제
박상근 대한병원협회 회장
2015.12.20 20:00 댓글쓰기

[특별기고]우리나라 전문의제도는 1951년 의료법에 전문과목표방허가제가 신설되면서 시작됐다.

 

이후 수련병원 지정 및 정원책정을 위한 자료조사업무 등 전공의 수련을 위한 실질적 행정업무는 국립보건원에서 시작해 1967년부터 현재까지 50년 가깝게 대한병원협회(이하 병협)에서 전담해 왔다.

 

정부의 위임사무를 공정하게 뒷받침하기 위해 병협은 중립적 전문기구인 ‘병원신임위원회’를 구성했다. 위원회에는 병협뿐만 아니라 의사협회, 의학회, 26개 전문과목학회, 군진의학협회의 추천을 받았다. 또한 보건복지부와 전공의협의회도 참여하고 있다.

 

물론 전공의 수련을 위하여 투입되는 모든 비용은 온전히 수련병원의 몫이었다.

 

위원회를 통한 전공의 수련제도 운영에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 즈음이다. 정부 지원 한 푼 없이 온전히 병원의 예산으로 전공의를 수련시켜야 하는 병원 입장과 과도한 업무를 감당해야 하는 전공의 사이에는 수련을 바라보는 시각이 같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또한 의료와 관련된 각종 제도와 급변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수련병원들이 적극적으로 수용할 수 없도록 한 열악한 의료환경이 수련관련 문제점 개선을 더디게 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2012년 발표된 ‘수련환경 개선안’을 포함한 관련 시행령이다. 정부와 관련단체들은 오랜 논의를 거쳐 전공의 수련시간 제한 등을 포함한 8개 수련환경 개선 항목을 합의하고 이행 중이다. 그리고 이 제도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진료공백을 채워 줄 인력과 재원이 선결돼야 한다.

 

이에 대한 해결책 마련을 위해 보건복지부는 병협, 의협, 의학회 및 전공의협의회 대표로 구성된 수련환경 개선 TF를 운영해 그간의 격렬한 논의 결과를 병원들이 수용함으로써 수련환경 개선을 위한 갈등이 일단락되는 듯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급기야 이와 같은 내용을 담은 법률이 국회를 통과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내용의 타당성은 차제로 하고, 지난 50년간의 수련병원의 노고가 폄하됐다는 점에 병원계는 주목하고 있다. 법이 통과된 시점에서 이에 대한 논란은 불필요한 하소연 일수 있다. 그러나, 훌륭한 전문의들을 배출하여 대한민국 의료의 현재를 이루어낸 병원계와 의료진들은 허망함을 감추기 어렵다.

 

금번 법령 제정과 관련해서 우리병원계가 가장 주목하는 부분은 수련시간에 대한 제한이 수련목적에 따른 수련과정에 지장이 없도록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다. 전문의가 되기 위해서는 중환자나 상태가 불안정한 환자의 진료와 수술이 가능하도록 술기를 익히는 것이며, 이는 진료현장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번 법률안에서 정한 수련시간 등에 대한 획일적 규제가 개인별 맞춤교육을 제한하지 않도록 체계적 수련시스템이 우선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현재 대한의학회를 중심으로 관련 연구가 시작되었지만, 제도시행이 이보다 앞서게 되는 우를 범한 것이다.

 

다음은 지난 2년간 논의가 계속되어 왔으나 결론에 도달하지 못한 진료공백 대책마련에 대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 동안 전 국민 건강보험제도에서 보장해 온 국민의 의료접근성과 진료이용 패턴을 반영할 때 의료인력에 대한 공급이 적정한지, 금번 법률제정이 필연적으로 초래한 수련병원의 진료공백에 대한 대책은 있는지에 대한 것이다.

 

일부 병원을 중심으로 병원전문의(hospitalist) 시범사업을 추진 중이고 일부 긍정적 효과도 도출하고 있으나, 전체 병원에 적용가능한 지에 대한 부분은 여전히 의문이다. 또 하나의 축인 의사보조인력(PA)을 제도화하는 것은 논의 시작과 함께 중단됐으며 포괄간호서비스 도입으로 인한 인력공백도 진행형인 상황이다.

 

여러 가지 보건의료정책이 난립하는 가운데 국민들에 대한 의료서비스 제공의 가능성에 대한 심층 논의가 이뤄지지 못한 것이 우려되는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수련환경 개선을 실질적으로 실현하기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전공의 수련교육비용의 국가적 책무에 대한 현실적 대책 마련이 여전히 미흡하다. 2003년 보건복지부는 일부 필수 전문과목의 지원 기피가 사회문제로 대두되자  국공립병원 해당과목 전공의들에 대해 ‘수련보조수당’을 신설했다.

 

1인당 월50만원씩 지급하여 왔으나, 매년 국회 예산심의과정에서 의사인 전공의들에 대한 국가예산 지급은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병원계에서는 수년간 수당수준과 지급대상 확대를 지속적으로 요구했으나 몇 년째 감액되어 왔고 2016년 2월을 끝으로 완전히 중단될 예정이다.

 

"병원만 책임 부담 커진 상황…정부·국회도 제도정착 위한 지원책 마련 최선 다해야"

 

이것이 우리나라 국회와 정부가 전공의 수련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그동안은 전공의 수련교육을 위해 수련병원들은 자체적으로 매년 1조 가까이 수련교육비를 부담했다. 앞으로 수련환경 개선에 따른 수련시간이 단축됨으로 매년 약 3500억원 정도 추가비용이 필요하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동 법안 심의에 앞서 기재부에서 제출한 검토보고서에는 예산 신설에 대해 언급한 바가 없다. 우리 병원계가 제도 시행을 위해 전면적 체질개선을 준비하는 기간 동안 정부와 국회도 이를 위한 예산확보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전공의특별법은 진료 공백을 채워 줄 추가인력 확충과 이에 따른 재정지원 계획도 없으며, 진료공백에 대한 의료법상 책임뿐만 아니라 획일화된 근무시간 기준으로, 이를 어길 경우 수련병원에 과도한 과태료를 부과하는 일방적이고 비민주적 법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협과 전국의 수련병원은 이 법률 제정으로 환자진료 공백, 양질의 전문의 교육 저해, 수련병원 포기 등 국민건강 관리체계에 심각한 피해가 미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예정이다.

 

이제는 국회와 정부가  전공의특별법 제정이 우리에게 던져진 숙제인 제도정착을 위한 지원책 마련에 최선을 다해 줄 것을 다시 한 번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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