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 위기 '대한민국 필수의료 구제책' 시급
지역적 어려움에 기피 진료과 상황까지 더해져 '의료진 수급' 난망
2022.10.14 08:15 댓글쓰기

[기획 1]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사건으로 한국 ‘필수의료’가 민낯을 드러냈다. 이번 사고는 시설과 인력 등 모든 면에서 국내 최대 규모이자 세계 최고 수준인 의료기관에서 발생, 의료계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안겨줬다. 하지만 일각에서 전문가들은 ‘예견된 참사’라고 입을 모았다. 의료진들의 고된 업무와 의료사고 위험, 저수가 등 의료계의 누적된 많은 고질적인 문제로 인해 필수의료 인프라는 이미 서서히 파괴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 진료과를 포함 흉부외과, 신경외과 등 고난도 수술이 필요한 곳은 전공의들 사이에서 기피과로 낙인 찍힌지 오래다. 전공의 충원이 이뤄지지 않아 고령의 교수들이 강도 높은 업무를 소화하며 명맥이 끊길 위기에 놓인 국내 필수의료 실태를 짚어봤다. [편집자주]


지방과 수도권, 인기과와 비인기과를 기준으로 의료인력 선호도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지방 필수의료 인프라는 이미 붕괴가 시작됐다.


지방은 중소병원 뿐 아니라 국립대병원 역시 매년 전공의 충원에 어려움을 겪으며 정원 미달을 피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산부인과 자연스레 폐과 수순, 지역 필수의료 인프라 붕괴 시작”

농어촌과 소도시에서 산부인과 찾기는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라 해도 과하지 않을 정도로 어렵다.


농어촌 인구 감소에 따라 출산율이 저하되고, 이는 농어촌 지역 분만 산부인과 폐원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토연구원이 발간한 '지역 삶의 질 격차' 보고서에 따르면, 15세 이상 50세 미만 가임여성 인구 10만명당 산부인과 의원은 서울이 16.6개로 가장 많았다.


그 뒤로 대구가 16.1개, 제주 15.5개, 전북 13.7개, 울산 13.2개 순이었다. 전국 평균 의원 수는 11.4개였다.


반면 전남은 가임여성 인구 10만명당 산부인과가 5.5개에 불과, 서울과 격차가 11.1개나 됐다. 인근 광주(10.5개), 전북(13.7개), 경남(9.1개)은 물론 전북 다음으로 의원 수가 적은 경기(8.5개), 인천(8.7개)과 비교해도 차이가 컸다.


특히 농어촌 지역을 중심으로 분만을 할 수 있는 산부인과는 더욱 급속히 줄어드는 추세다.


이에 지방 산모들은 거주 지역 내 분만실을 갖춘 산부인과가 없어 인근 광역시 병원에 다니는 불편을 감수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분만취약지 지원사업 안내 자료’에 따르면, 분만이 가능한 전국 산부인과는 2010년 808곳에서 2020년 517곳으로 감소했다. 11년간 291곳이 문을 닫은 것이다.


지방에서 산부인과 씨가 마르는 것은 이미 수년 전부터 예상된 결과다.


산부인과 전문가들은 "분만 인프라를 재건하기 위한 탄탄한 계획 및 정부 지원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지방 산부인과 불모지는 점점 더 늘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동석 대한산부인과의사회(직선제) 회장은 “산부인과는 지금 자연스레 폐과 수순을 밟고 있는 실정”이라며 “의료사고 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 개정, 300병상 이하 종합병원 산부인과 필수과목 제외 사안 등을 정부가 나서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아혈액종양 전문의, 병원별 1~2명 전부


소아청소년과 역시 지방의료 인프라 파괴는 별반 다르지 않다. 서울은 20세 이하 소아청소년 인구 10만명당 소아청소년과 의원이 31.7개로 나타났지만 전남은 8.5개에 그쳤다.


지역별로는 ▲대구 27.6개 ▲인천 26.3개 ▲경기 25.5개 ▲부산 25.4개 ▲제주 25.0개 순으로 많았다.


전남은 소아청소년과 의원도 인근 광주(14.7개), 전북(20.9개), 경남(15.0개)과 큰 차이를 보였으며 전국 평균 의원 수는 23.4개였다.


소아청소년과의 소아혈액종양 분야는 ‘기피과 속 기피과’로 문제가 더욱 심각한 실정이다.


대한소아혈액종양학회에 따르면 2022년 현재 강원, 경북, 울산 지역은 소아혈액종양 전문의가 부재하거나, 최근 교수들 은퇴로 후임이 없어 소아청소년 암환자의 입원 진료가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4~5명의 전문의가 있는 지역에서도 각 병원 별로는 1~2명에 불과한 인원이 근무 중으로 항암 치료 중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응급 상황에 대처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학회는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제4차 암관리종합계획’의 비전은 ‘어디서나 암 걱정없는 건강한 나라’이지만, 우리나라 소아청소년암 환자들은 국내 어느 지역에서 질환이 발생하더라도 걱정해야 하는 현실 속에 살고 있다”고 꼬집었다.


외래에서 통원 치료가 가능한 환자군이 많은 성인암에 비해 소아청소년암 환자는 대부분 입원치료가 필요하다.


이에 숫자가 적더라도 입원 치료가 필요한 소아청소년 암환자가 있는 한 365일 24시간 응급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전문의가 병원별로 최소 2~3인 필요하다.


그러나 최근 소아청소년과 전공의가 없는 지방 병원에서는 1~2명의 소아혈액종양 전문의가 주말도 없이 매일 입원환자와 외래환자를 관리해야 한다.


수도권 소재 A대학병원 소아혈액종양 전문의는 “병원에서 의사를 더 고용하면 되겠지만 중증 진료를 할수록 적자인 우리나라 건강보험수가 구조와 소아청소년암 진료에 대한 국가 지원이 전무한 현실에서 어느 병원도 소아혈액종양 전문의를 추가 고용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그는 “몇 명 남지 않은 소아혈액종양 전문의들이 이러한 현실을 사명감만으로 버티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결국 우리나라에서는 안전한 소아청소년암 치료를 포기할 수밖에 없고, 국내 소아청소년암 완치율 생존율은 점차 낮아질 위기에 처해 있다”고 호소했다.


지방 공공의료원의 필수의료는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기피지역에 기피과라는 특성까지 겹치며 의사인력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된 지 오래다.


지방의료원 3곳 중 2곳은 일부 필수진료과 전문의가 없이 운영되고 있다. 필수진료과 중에서도 핵심으로 꼽는 내외산소(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에 전문의가 없는 경우도 5곳 중 1곳 이상이다.


최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실린 보고서 ‘지방의료원 지불보상체계와 재정 지원 개선 방안’(배재용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에 따르면, 2020년 12월 기준 서울의료원 등 지역의료원 35곳 중 9개 필수진료과 전문의가 모두 있는 의료원은 10곳(28.6%)에 불과했다.


9개 필수진료과는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정형외과, 비뇨의학과, 정신건강의학과, 신경과, 신경외과다.


이 중 4개 필수진료과(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로 범위를 좁히면 35곳 중 8곳(22.9%)에서 일부 진료과에 전문의가 없다.


지방의료원 35곳 중 정신건강의학과는 17곳, 신경외과는 15곳, 비뇨의학과는 11곳에서 전문의가 없었다.


외과는 1곳, 산부인과는 4곳, 소아청소년과는 6곳에서 전문의가 없었다. 중환자실 등 필수의료시설이 없는 경우도 있었다.


2020년 5월 문을 연 성남시의료원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의료원 34곳의 필수의료시설 운영 여부를 살펴보면 중환자실은 28곳, 분만실은 20곳, 음압격리 병실은 23곳에만 있었다.


보사연 배재용 연구위원은 “대부분의 지방(지역)의료원은 규모 측면뿐만 아니라 인력, 시설, 장비 측면에서도 지역 책임의료기관 기능 수행을 위한 역량을 갖추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가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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