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노조' 과연 있기는 한거유!
2011.10.11 03:00 댓글쓰기
용두사미(龍頭蛇尾)’란 말이 제격일까? 2006년 봄 의료계를 뜨겁게 달궜던 전공의 노조. 추진 당시부터 숱한 화제를 몰고 다니며 우여곡절 끝에 출범한 그 노조가 5년이 지난 현재 완연히 자취를 감춰 버렸다. 언급하는 이도, 회상하는 이도 없이 그렇게 역사의 한 페이지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스승이면서 상사이기도 한 교수들에 맞서 열악한 처우 개선을 외치던 당찬 목소리는 흔적이 없고, ‘전공의 파업’이라는 희대의 카드도 종적을 감춘지 오래다. 지난 5년, 전공의 노조에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시간을 되짚어 올라가 봤다.

뜨거웠던 함성 어디로…

2006년 7월 4일 전공의노조가 노동부로부터 인가를 받았다. 전공의들의 숙원이 이뤄짐과 동시에 대한민국 최초의 의사 노조가 탄생한 날이었다.

그 날의 함성은 뜨거웠다. 전공의들은 “이제야 열악한 처우를 개선할 수 있게 됐다”며 환호했고, 모든 언론 매체도 전공의노조 출범을 타전하며 사회적 관심을 불러 모았다.

일반 노동자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노조를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전문직 종사자, 그것도 화이트칼라의 상징인 의사들이 만든다는 사실에 국민들은 의아함과 호기심을 감추지 않았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주당 100시간 이상에 달하는 과도한 근무와 2000만원에 못 미치는 연봉으로 혹사당하면서 신분상의 이유로 개선하기 어려웠다”며 노조 설립 취지를 설명했다.

분위기는 금방이라도 고조될 듯 보였다. 협의회 측은 1만6000명의 전공의 중 7000명 이상이 노조에 가입할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절반에 가까운 인원이 조합원으로 가입할 경우 그동안 수련환경 개선을 등한시했던 병원 측에 한껏 힘 있는 목소리를 내고 여의치 않으면 집단파업도 불사할 분위기였다.

다만 전공의노조는 ‘의사이자 피교육생’이라는 이중적 신분의 특성을 고려, 전문성과 순수성을 강조하면서 여타 단체들과의 차별성을 표명했다.

근로자로서 자신들의 처우 개선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국민들의 생명과 직결된 직업인만큼 일반인들이 우려하는 행동, 즉 단체파업은 하지 않겠다고 천명했다.

그 의지를 뒷받침하기 위해 무분별하게 파업을 강행하는 단체들을 비판하는가 하면 민노총 등 상급단체 가입은 없을 것이라는 뜻도 분명히 하는 등 강단 있는 모습을 보였다.

예견된 실패
하지만 전공의노조의 부푼 꿈은 거기까지였다.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은 성공했지만 정작 조합원을 모으는데는 실패했기 때문.

실제 11명의 발기인으로 출발한 전공의노조는 극도로 부진한 가입율에 허덕이며 탄력을 받지 못하고 출범 직후부터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했다.

현재 전공의협의회 산하 노조가 편제돼 있기는 하지만 회의 한 번 하지 않는 유명무실한 조직으로 방치돼 있는 상황이다.

당연직 위원장인 전공의협의회 회장이 5명 바뀌는 동안에도 노조 활동은 진척이 전무했다. ‘필요는 하지만 사람이 없다’는게 회장들의 공통된 고민이었다.

제10기 이학승 前 회장은 “많은 기대와 관심 속에 출발했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혀 적잖은 어려움을 겪었다”며 “전공의들의 저조한 참여율이 가장 큰 문제였다”고 회고했다.

제12기 정승진 前 회장 역시 “결국 노조원 부족이 결정적 이유였다”며 “그렇다고 단위병원 대표를 의무적으로 노조에 가입시키기도 현실적으로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정 회장은 노조에 대한 무관심과 ‘찍힐지도 모른다’는 근본적인 불안감을 전공의노조 실패의 원인으로 꼽았다.

이 같은 전공의노조 실패는 이미 출범 전부터 예고돼 있었다. 전공의들의 노조 설립 소식에 병원계는 물론 교수나 선배들까지도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고, 무엇보다 의국 선배와 스승의 눈치를 봐야하는 전공의들이 과감히 노조에 가입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실제 전공의노조 공식 출범 행사장에는 젊은 후배들의 굳은 결의를 독려하는 선배 의사단체가 전무했으며 교수들은 대항마 형태의 전국수련교육자협의회를 구성, 제자들의 발칙한(?) 반항에 응수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주인을 찾지 못한 전공의노조 가입 신청서에는 먼지만 수북히 쌓여갔다.

귀족노조, 무엇을 남겼나?
비록 유명무실한 조직으로 전락했지만 전공의노조는 그 존재감 만으로도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는 분석이다.

노동조합으로서 교섭은 물론 단체행동 등의 역할은 수행하지 못했지만 전공의 처우 개선에 기폭제로 작용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전공의노조 설립으로 그 동안 전공의들의 열악한 수련 환경에 대한 주의환기에 성공했고, 이는 병원계의 전향적 태도 변화를 불러왔다는 평가다.

실제 전공의노조 출범 이후 의학회를 중심으로 전공의협의회와 수련병원협의회 등이 처우 개선을 논의, 올해 초 가시적인 성과를 내놨다.

대한병원협회는 지난 4월 전공의 당직과 휴가를 큰 폭으로 개선한 ‘병원신임평가 주요 개정안’을 확정하고 수련병원들에게 공지했다.

보건복지부 역시 여성 전공의의 출산 등으로 인한 불이익을 근절하기 위해 수련기간 변경에 자율성을 부여하는 법안을 입법예고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 14기 회장에 당선된 김일호 신임 회장은 이러한 전공의노조의 존재감과 영향력을 인정하면서도 그 성과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표했다.

김일호 회장은 “그 동안 워낙 전공의 처우가 열악했던 만큼 작금의 변화는 시작에 불과하다”며 “향후 보다 나은 수련환경 조성을 위해 일신의 힘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전공의노조 부활이나 재추진에 대해서는 조심스런 입장을 보였다. 김 회장은 “수련환경 개선을 위해 협의회를 중심으로 유관단체들과 논의를 해 나갈 계획”이라며 “여의치 않을 경우 전공의노조의 부활을 고려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가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관련기사
댓글 0
답변 글쓰기
0 / 2000
메디라이프 + More
e-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