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사율 90%로, 암(癌) 중 가장 치명적인 췌장암. 진단이 곧 사형선고로 여겨지던 이 췌장암의 치료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원발 지점이 ‘췌장’일지라도 종양 특성에 따라 접근을 달리해야 치료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다는 인식이 의료진 사이에 급속히 확산되는 추세다.
이러한 인식은 진단기술의 발달과 함께 ‘신경내분비종양(Neuroendocrine Tumor, NET)’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데 기인한다.
신경내분비종양은 신체활동을 조절하는 신경계와 호르몬을 조절하는 내분비계에 영향을 주는 세포가 비정상적으로 증식해 발생하는 암이다.
즉 일반적으로 장기에 생기는 암이 외분비조직에 기원한다면 신경내분비종양은 신경내분비세포가 암으로 진화하는 경우다.
신경내분비종양은 신체 어느 부위에서 발병 가능하지만 위장관 계통이 70%로 절대적 비중을 차지한다. 그 중에서도 췌장암 발병률이 높다.
스티브 잡스를 사망케 한 암이 바로 췌장신경내분비종양이다.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박영석 교수는 “같은 췌장암이라도 선암과 신경내분비종양은 치료가 다르기 때문에 잘 진단하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췌장암’이라는 단편적인 진단이 외분비와 내분비, 국소성과 전이성, 원격 전이와 국소 진행 등으로 세분화 되면서 그에 따른 치료법도 달라지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췌장신경내분비종양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이 각광을 받는 추세다.
내분비세포가 암으로 변형됐다는 사실에 착안해 이 세포의 성장, 증식 등에 관여하는 핵심 물질을 억제하는게 신개념 췌장암 치료법이다.
즉 암 세포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길목을 봉쇄함으로써 암 자체를 아사(餓死) 시키는 방식이다. 기존 치료법이 증상조절에 그쳤다면 이 방법은 보다 적극적으로 암 세포를 사멸시킬 수 있다.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오도연 교수는 “신경내분비종양의 주된 치료방향이 증상 조절에 국한하는게 아니라 종양 치료에 주력하는 양상”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현재 암 세포 성장에 관여하는 mTOR라는 물질을 억제하는 약물이 사용되고 있으며 많은 임상을 통해 그 효과가 입증됐다”고 덧붙였다.
서울아산병원 간담도췌외과 김송철 교수는 “드문 종양이기 때문에 많은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연구가 진행되기 힘들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번 신약의 치료 효과는 신뢰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오도연 교수는 약물치료 외에 신경내분비종양의 치료 효과 극대화 방안 중 하나로 조기진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인식 개선에 적잖은 진척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아직 임상에서 생소해 하는 경우가 적잖아 진단까지 5~9년이 소요되는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도 전했다.
오 교수는 “여느 암과 마찬가지로 신경내분비종양 역시 조기진단시 치료확률이 높아진다”며 “조기진단이 이뤄질 수 있도록 관련 진료과 의료진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