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메디 박정연기자/기획 3]금년 2~3월 대구 경북 지역은 그야말로 ‘전시상황’이었다. 대구 신천지교회 사태로 코로나19 감염자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시민들은 집 밖에 나서지 않고 거리는 텅 비었다. 단체모임은 말할 것도 없이 최소한의 생활만을 위한 외출만 하며 도시 전체에는 적막감이 돌았다. 일 500명이 넘는 확진자가 발생하면서 서울에선 ‘대구 봉쇄설’까지 나오게 됐다. 시민들이 몸을 움츠리고 있는 동안 유일하게 사람들이 북적이는 곳이 있었다. 바로 병원이다. 3월 말 기준 누적 검사자는 총 30만1천명이다. 대구 경북 지역 확진자가 전체 확진자의 약 80%를 넘게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뤄봤을 때 대구 경북 지역에서 진행된 검사 건수는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대구시의사회 이성구 회장이 의료인력 지원을 촉구하는 호소문을 발표하며 전국 의료인들의 원조를 요청했다. 그리고 이같은 호소에 많은 의료인들은 행동으로 답했다. 생업을 잠시 뒤로 미뤄두거나 없는 시간을 쪼개 병원, 선별진료소, 보건소로 달려갔다. 한 번 착용하면 식사도 못하고, 화장실도 못가는 레벨D 보호복을 입고 현장에 나섰다. 감염병이 두렵지 않냐는 질문에 “의사가 질환을 무서워해서 되겠냐”고 답하는 듬직한 모습은 불안감에 찬 국민들 마음에 위안이 됐다. 전례 없는 대규모 감염병 사태에서 더욱 빛났던 이름 없는 백의의 영웅들의 모습을 조명해봤다.
“존경하는 의사 선생님들! 지금 바로 선별진료소로, 대구의료원으로, 격리병원으로 그리고 응급실로
와주십시오!”
금년 2월 말 이성구 대구시의사회장이 홈페이지에 게재한 호소문이다.
이회장은 “대구는 유사 이래 엄청난 의료재난 사태를 맞고 있다. 의사 동료 여러분들의 궐기를 촉구합니다”면서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대구의 선별진료소와 격리병동 등으로 달려와 줄 것을 눈물로 호소했다.
“‘코로나19’ 감염자의 숫자가 1000명(사망자 10명)에 육박하고, 대구에서만 매일 100여 명의 환자가 추가로 발생하고 있다. 우리의 사랑하는 부모, 형제 자녀들은 공포에 휩싸였고 경제는 마비되고 도심은 점점 텅 빈 유령도시가 돼가고 있다. 생명이 위독한 중환자를 보아야 하는 응급실은 폐쇄되고 병을 진단하는 선별검사소에는 불안에 휩싸인 시민들이 넘쳐나는 데다 의료인력은 턱없이 모자라 신속한 진단조차 어렵고, 심지어 확진된 환자들조차 병실이 없어 입원치료 대신 자가격리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회장 호소문에선 당시 대구의 긴박했던 상황이 절절하게 느껴진다.
“지금 바로 선별진료소로, 대구의료원으로, 격리병원으로 그리고 응급실로 와달라”며 촉구한 뒤 “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요 어려울 때 노력이 빛을 발한다. 내가 먼저 제일 위험하고 힘든 일에 앞장서겠다”는 그의 요청에 많은 의료인들이 응답했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유명한’ 의사들의 행보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대한의사협회 의료 지원 요청을 받고 부인 김미경 서울대 의과대학 교수와 함께 대구로 내려가 진료를 봤다.
코로나사태 발생 직전 아주대의료원과 마찰을 빚었던 이국종 아주대병원 교수도 경기도로부터 의료 지원 요청을 받고 그 닥터헬기를 타고 대구로 향했다.
언론을 자주 타는 이들 만큼 힘썼던 ‘이름 없는 영웅들’의 이야기는 더 고무적이다.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의사 1천128명, 간호사 793명, 간호조무사 203명 등이 대구 경북지역으로 파견됐다.
병원 차원에서의 연이은 지원도 이어졌다. 서울 소재 대학병원 최초로 인력을 파견한 고려대의료원을 시작으로 대형병원은 앞다퉈 나섰다.
서울아산병원은 중환자실 진료 경력이 있는 의사와 간호사 십수명을 대구 경북지역으로 파견했다. 생활치료센터로 지정된 현대자동차연수원의 의료지원도 도맡아 진행했다.
세브란스병원은 심장내과 교수 1명을 포함한 의료진 12명을 대구지역으로 파견했다. 국립중앙의료원 25명 의료진도 대구로 갔으며, 한양대병원도 계명대 동산병원에 의료진을 파견했다.
삼성의료원도 삼성서울병원, 강북삼성병원, 삼성창원병원 등 3개 병원의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진을 생활치료센터로 운영되고 있는 영덕연수원에 파견했다.
국립중앙의료원 긴급의료지원팀도 대구 지역으로 긴급 의료지원팀 25명을 보냈으며, 한양대병원도 계명대 대구동산병원에 의료진을 급파했다.
공중보건의사들의 노고도 빠뜨릴 수 없다.
지난 2월 100여명의 공보의들은 대구에 집결해 교육을 받고 각 의료기관 및 보건소에 파견됐다. 이들 공보의들은 파견 초기에는 마땅한 숙소도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현장에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적극 지원에 이성구 대구시의사회장은 “지금은 그렇게는(의료진이 부족하다고는) 생각 안된다”면서 “공중보건의과 군의관들을 중심으로 많이 보충이 됐고, 또 의사회에서도 많이 나가 일손을 도와서 지금은 의료진이 많이 딸리는 건 아닌 것 같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대구 경북 지역 뿐만 아니라 서울에서도 의료인들의 활약은 이어졌다.
세계적으로 호평받은 한국식 ‘드라이브-스루 선별진료소(이동식 선별진료소)’와 거주민이 많은 보건소로 지역으로 의사들은 향했다.
놀라웠던 것은 선별진료소에 지원봉사를 나선 의료인력이 크게 부족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잠실 드라이브스루 선별진료소와 동대문구 보건소 등에서 의료봉사에 나선 내과 전문의 김현지씨는 “이동식 선별진료소의 경우 주말 근무에 의사 3명씩 두 개 팀이 필요한데, 의료인력이 부족하진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생업의 이유로 먼 대구 경북 지역까지 나서기 여의치 않은 수도권 지역 의사들은 짬을 내 주말 등 시간을 운용해 지원에 나선 것이다.
물론 봉사과정은 녹록치 않다. 선별진료소 봉사에 나선 한 의사는 “보호복을 입어본 적은 있지만, 5시간~6시간 이렇게 장시간 입고 활동한 경험은 없다”며 “생각보다 땀이 많이 나고 답답하고 힘들다 그래도 전국민적인 시국에서 보탬이 된다는 생각에 기쁘다”고 말했다.
가까이서 환자를 살피는 간호사들의 활약도 인상적이었다.
대구 동산병원에선 ‘모녀 간호사’가 나란히 코로나19 병동 근무를 자청해 따뜻한 시선이 모였다.
신혼의 단꿈을 접고 청도대남병원으로 자원봉사를 간 간호사 오성훈씨 사연도 화제를 모았다. 지난 3월 1일 신임간호장교 75명도 대구로 향했다.
대한간호조무사 협회도 간호조무사 369명이 대구 경북 지역에 스스로 의료지원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의료진들의 이 같은 행보는 국민들에게 큰 힘이 됐다. 그리고 이윽고 국민들의 화답도 이어졌다.
지역 상인들은 치킨, 컵밥, 음료수 등 먹거리를 건넸고 숙박업주는 무료로 숙소를 제공했다. 학생들도 십시일반으로 보탬이 내기 위해 나섰다. 경상대학교 총학생회와 창원대학교 학생들은 기금 741만 모금해 대한 적십자사 경남지사에 전달했다.
기업들의 후원도 이어졌다. 아산사회복지재단과 정몽준 이사장은 재단과 개인차원 총 20억원을 기부했다. 한국철도공사는 대구 경북 지역 의료진들에게 무료 KTX 승차권을 제공했고, 주조회사 대선주조는 의료용 알콜 주조원료 20톤을 기부했다.
여기에 ‘퇴직금 168만원 기부한 익명의 택시기사’, ‘돼지저금통 기부한 무명의 기부자’등 이름을 밝히지 않은 기부자들까지 셀 수 없이 많은 온정의 손길이 이어졌다. 국가적 위기상황에서 솔선해 나선 백의 영웅들의 모습이 국민들을 하나로 모으는 계기가 된 것이다.
울산 사라몬테소리 어린이집 아이들이 보낸 편지는 지금 많은 국민들의 마음을 그대로 보여준다. 어린이들은 편지를 통해 “코로나 바이러스를 치료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의사선생님, 간호사 선생님 힘내세요”, “당신은 진정한 영웅입니다”는 응원 메시지를 적어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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