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 버리기 아까운 제도'
퇴임 앞둔 의료중재원 추호경 원장 “의료계, 애증의 대상”
2015.03.31 20:00 댓글쓰기

족적 일면 일면이 어쩌면 이 자리를 위함이었으리라. 소설가를 꿈꾸던 물리학도가 검사가 된지 6개월 만에 보건의료를 전담했고, 덕분에 석·박사도 법대가 아닌 보건대학원에서 수학했다. 또 국회 입법심의관, 법무부 법무심의관을 거쳐 대한의료법학회와 대한보건협회 등 학회와 관련 단체에서 활동했고, 사법연수원 교수로서 예비 법조인들에게 ‘의료과오 손해배상’을 가르쳤으며, 변호사로서 대한병원협회 법률고문을 맡았던 것이나 환자를 대리해 여러 건의 의료소송을 진행한 경험 모두 의료중재원 초대원장을 위한 준비과정이었다. 의학적 판단과 사법적 결정을 동시에 내리는 기구. 국내는 물론 전세계적으로도 유일무이한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은 그의 법조 인생의 정점이자, 가장 값진 시간들이었다. 3년 임기를 마치고 내달 8일 중재원을 떠나는 추호경 원장의 퇴임 일성은 ‘감사’였다. 의료인, 법조인, 특히 중재원 직원들을 향한 그의 마음은 진심이었다.

 

 

초대원장으로 지난 3년을 반추한다면

 

힘들었지만 참으로 보람된 기간이었다. 사실 취임 초기에는 무엇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  몰라 막막했다. 특히 각종 규정과 업무 매뉴얼 등을 만들면서 과연 이 제도가 잘 시행될 것인가 걱정도 많았다. 하지만 상임위원들과 직원들이 사명감을 갖고 열심히 해줘 생각보다 빨리 안착이 되고 업무도 제대로 돌아갈 수 있었다. 지난해 처음 받은 기관경영평가에서 A등급을 받은 것도 큰 보람 중의 하나다. 그 후 직원들의 사기가 크게 올라갔고 더욱 열심히 하고 있다.

 

재임기간 내내 의료기관과 환자 참여율에 대한 고민이 적잖았을텐데

 

초기에 일부 의료인 단체에서 중재원 조정절차에 절대 참여하지 말라는 공문을 발송하고 회원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는데 사실 좀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직원들에게 “참여를 거부하는 의료인을 비난해 봐야 소용없다. 한 건 한 건을 정확하고 공정하게 잘 처리해서 신뢰를 쌓아가야 한다”고 독려했다. 다행히 조정개시율이 2012년에는 38.6%에 불과했지만 올해는 48.9%에 이르렀고, 조정성립률도 90%대를 유지해 의료인들도 중재원의 진정성을 이해해 주는 것 같다.

 

중재원에 대한 법조계의 시선이 곱지 않다. 고충은 없나

 

혹자는 환자들이 중재원에 조정 신청을 많이 하면 변호사들의 수임 건수가 줄어들 염려가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물론 그럴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런 막연한 우려 때문에 중재원을 나쁘게 볼 변호사는 없을 것이다. 특히 중재원의 ‘수탁감정’을 이용한 경험이 있는 판사나 검사들은 이제 맘 놓고 재판과 수사를 할 수 있다며 전적인 신뢰를 보이고 있다. 조정위원・감정위원으로 참여하는 변호사들도 보람을 느끼고 있다. 재임 중에 법조계의 시선 때문에 불편한 것은 없었다.

 

의료계와의 소통을 평가한다면

 

소통. 참으로 중요하다. 중재원의 핵심가치도 ‘공정, 신속, 소통’이다. 사실 나 만큼 의료인들과 친분이 두터운 법조인도 드물 것이다. 그 동안 여러 네트워크를 활용 서울과 지방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많은 의료인들을 만났다. 의료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들었고, 의료분쟁조정제도를 제대로 이해시키려고 노력도 했다. 또한 직원들 모두 감정과 조정절차를 통해 환자・의료인 간 신뢰가 향상되도록 애쓰고 있다. 이러한 노력에 대한 성과라면 조정참여율이 50% 가까이로 상승하고 90% 선의 조정성립률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들 수 있겠다.

 

불가항력 의료사고 갈등이 여전한데

 

분만사고로 인한 조정참여율이 61.5%로 다른 진료영역에 비해 높고, 조정성립률도 94.6%에 달한다. 수치상으로는 중재원과 산부인과 사이에 갈등이 있다고 보는 건 무리다. 그래도 여전히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제도에 대한 반감은 크게 남아 있다. 이 제도가 의사들을 옥죄고 진료의욕을 꺾는 것이라면 가장 빠른 해결책은 제도 자체를 없애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너무나 아깝다. 이 제도가 ‘환자 측의 물리적 실력 행사’를 막는 데 매우 유용하고, 또 이용 사례가 늘어나면서 실효성도 상당하다는게 입증되고 있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없나

 

현행 제도에 문제점도 없지 않다. 법의 규정 형식도 문제고, 제도 운영을 국가나 의료중재원이 직접 나서서 맡도록 규정돼 있는 것도 입법론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개인적인 의견을 전제한다면 분만 의료기관들의 협의체에서 자율적으로 보상기금을 형성하면 그 액수의 2배 또는 3배 식으로 국고 보조를 해뤄 산부인과 의사들 스스로 그 기금을 운영하도록 하는게 올바른 방식이라고 본다다. 그렇게 한다면 거부감도 없을 뿐만 아니라 위헌 논란이 생길 여지가 없을 것이다.

 

 

의료계에 전하고 싶은 말은

 

의료계는 내부에서 이해관계가 엇갈려 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게 큰 걱정이다. 각 분파를 뛰어넘어 대승적으로 단합된 모습을 보여야 하는게 의료계의 제일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의료계를 이끈다는 일부 인사들의 경직된 사고도 우려스럽다. 어느 조직이건 그 지도층 인사는 그 조직 구성원에게 실질적으로 이익이 되는게 무엇인가를 정확히 알고 그쪽으로 이끌어야 하는데 의료계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아 매우 안타까웠다. 도울 수 있는 기회도 꽤 있었는데 결국은 도움이 주지 못하고 임기를 마치게 돼 많이 아쉽다.

 

향후 중재원의 발전 방향을 제시한다면

 

의료중재원은 준사법기관이다. 그러나 옳고 그름만 정확히 판단한다고 해서 그 소임을 다 했다고 할 수 없다. 법원이 ‘사법적 정의(judicial justice)’를 구현하는 곳이라면 중재은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까지 실현하는 치유적 사법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환자 측과 의료인 측 모두를 따뜻하게 보듬어 의료분쟁으로 받은 상처를 깨끗이 낫게 해줘야 한다. 그래서 중재원의 원훈도 ‘바르게, 따뜻하게’라고 한 것이다. 그 동안 의료감정이 의료계 쪽으로 편향됐던 것도 의료분쟁이 격화됐던 이유 중 하나였는데, 앞으로 공정성을 잘 살려 환자와 의료인 모두 신뢰하는 의료감정기관으로 발돋움해야 한다. 또한 사후적인 분쟁 해결에만 그칠 것이 아니라 의료사고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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