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윤리 등진 낯 뜨거운 '논문 스캔들'
2010.10.20 03:20 댓글쓰기
#1. A 의과대학 ○교실에서 연구 중인 두 교수. 이전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던 이들이였지만 그 갈등의 불씨는 논문 한 편으로 인해 법적 싸움으로까지 번져 완전히 등을 지게 됐다. 공동으로 진행하던 연구를 한 교수가 자신이 혼자 이뤄낸 논문인 냥 학술지에 발표했기 때문이다.

#2. B 의과대학의 신규교원 채용을 진행하던 시기, 한 지원자의 연구업적을 평가하던 중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똑같은 연구논문을 서로 다른 학술지에 한글과 영어로 이중게재한 것이 들통 난 것이다. 결국 해당 지원자는 임용에서 탈락됐다.

#3. C 의과대학 △교실은 학과 특성상 전공자가 많지 않기에 스승과 제자 간에 허물없이 지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후배 교수들은 연구논문을 발표할 때가 되면 고민이 깊어진다. 으레 스승님의 이름을 저자로 올리는 관습 탓이다. 연구에 일절 참여하지 않았지만 스승의 이름은 자연스럽게 연구논문 저자에 포함됐다.


이 같은 사례는 모두 의학논문 연구ㆍ출판윤리에 어긋나는 명백한 부정행위다. 의과대학에서 실제 일어났던 ‘논문 스캔들’의 낯 뜨거운 현장이기도 하다.

연구자의 의미 있는 관찰을 평가받고 실험 가능성을 열어주며 결과적으로 그 정당성을 인정받아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과학(의학) 논문 출판의 가장 큰 목적이다.

연구자는 많은 논문을 게재해 배포하는 것을 희망하지만 또 이를 받아들이는 독자는 연구의 가장 큰 뿌리인 ‘진실’과 ‘양심’을 지켰으리라는 희망을 저변에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이러한 희망들이 꺾였을 경우 학문의 정직성은 퇴색되고 학자로서의 명예는 실추돼 학계 전반의 위상마저 흔들리게 한다.

"돈독한 관계가 오히려 독(毒)…으레 논문 저자로 모시는 스승님"

사실 의학계의 논문 관련 스캔들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따금씩 논란의 핵으로 떠올랐던 사건들을 포함해 학회 내부에 크고 작은 부정행위는 여전히 존재한다.

지난 6월 교수신문과 KBS 시사 프로그램 추적 60분은 ‘시간강사 처우 및 실태’ 공동 설문조사를 실시, 그 결과를 공개했다.

놀라운 점은 교수로부터 논문 대필을 요구받은 경험이 가장 많은 것으로 조사된 분야가 바로 의ㆍ약학 분야(46.7%)였다는 사실이다. 일각에서는 보수적인 집단으로 평가받고 있는 의학계의 성격이 이 같은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출판윤리에 벗어난 환경을 접하곤 한다는 한 의대 기초의학교실 교수는 “선후배 문화를 중요시 여기고 돈독한 관계 유지가 중요한 의대 특성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서로 집에 밥숟가락이 몇 개인지까지 훤히 알고 있는 상황에서 논문 대필을 비롯해 도와달라는 부탁을 전해들을 경우 쉽게 거절하기 힘들 것이다. 껄끄럽다”고 언급했다.

의대의 뿌리 깊은 위계질서와 대학병원 교수로의 좁은 진입장벽 풍토가 불합리한 구조를 만들고 있다는 의견이다.

그는 “의대 내부를 들여다보면 연구에 매진하지 않는 기초교수들도 일부 있다. 나이 지긋한 교수의 경우 퇴임할 때까지 논문에 이름을 넣어줘야 한다는 암묵적인 관행 역시 잘못된 부분”이라고 꼬집으면서 “이런 식으로 이름을 올린 논문이 해외학회에서 발표가 됐지만 정작 해당 교수는 관련 내용을 전혀 모르는 황당한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공저자는 본래 ▲학술적 개념, 계획 및 자료 수집ㆍ분석ㆍ해석을 하는데 상당한 공헌을 하고 ▲논문을 작성하거나 중요 내용을 수정하며 ▲출간될 원고를 최종적으로 승인하는 경우에만 그 자격이 주어진다.

하지만 선물저자, 유령저자, 교환저자 등의 유형 아래 논문 수를 늘리기 위한 방법으로 악용될 수 있는 ‘저자 수 늘리기’가 문제로 지적돼 왔다.

“실제로 연구해 쓴 논문은 몇 십 편에 불과하지만 선물저자 등을 통해 300여 편을 낸 것으로 된 교수도 있다”, “이번 내 논문에 너의 이름을 넣어 줄 테니 다음 네 논문에 나의 이름을 넣기로 약속했다” 등의 실태가 바로 ‘저자 수 늘리기’ 현실인 것이다.

이처럼 ▲저자 됨 ▲이해관계 ▲중복출판 ▲심사와 편집 과정에서의 윤리 등으로 나눌 수 있는 출판윤리 조항 중 범죄 체감도가 유독 낮은 것은 ‘부당한 저자 표시’와 ‘이중게재’다.

또 다른 의대 임상 교수는 “이중게재는 명백히 잘못된 일임에도 불구하고 과거부터 관행화ㆍ고착화됐던 부분이 있다. 인식 부족인 경우가 많았다. 논문을 쪼개거나 이미 발표한 것에 자료를 추가해 동일한 결론을 유도, 재출판하는 경우 등이 그러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현재 적법한 절차를 거쳤을 경우에는 이중게재와는 다른 이차게재가 가능하도록 돼 있다. 원전 출판지와 이차출판지 편집인 양쪽의 승인을 받고 해당 내용을 논문 제목에 싣는 등의 정해진 절차를 밟으면 문제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이 정당한 승인 없이 이중게재를 시도, 자기 표절 등의 저작권 위반 및 결과를 과대평가하는 비윤리적인 작업이 일부 있다는 지적이다.

의학계 "부정행위 점검 보다 철저 기할것"

이 같은 현상의 기저에는 무엇보다도 연구출판 부정행위에 대한 범죄의식이 높지 않다는 인식이 가장 큰 부작용이자 문제점으로 꼽히고 있다.

현재 국제의학학술지 편집인위원회(ICMJE, International Committee of Medical Journal Editors)에서는 생의학 학술지에 투고하는 원고의 통일된 양식을 마련해 놓았다.

한국도 ICMJE 기준을 준수해왔지만 2005~2006년 몇몇 국내 학회를 통해 이중게재 논란이 뜨거워지면서 대한의학학술지편집인협의회(이하 의편협)는 2006년 7월 협의회 산하에 출판윤리위원회를 신설했다.

이에 따라 2008년 1월 ‘의학논문 출판윤리 가이드라인’을 제정하고, 위반자에 대한 처리 역시 확정해 시행 중에 있다.

의편협 출판윤리위원회 배종우 간사(경희대동서신의학병원 소아청소년과)는 “과거에는 부정행위에 대한 인식이 전반적으로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의학계에서 부정행위 점검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명해옴에 따라 현재는 많이 달라졌다”고 피력했다.

의편협에서 진행한 국내 논문 이중게재 현황조사에서 2004년 조사 논문 중 약 6%가 해당되는 것으로 나타나 충격을 주기도 했다.

그는 “당시 조사결과는 상당히 놀라운 수치였다. 어느 연구자의 경우 이중게재를 넘어 9중게재를 시도하는 등 국내 연구출판 부정행위에 대한 공론화가 절실한 상황이었다. 지금은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지고 각 학회별로도 조치 등이 이뤄지고 있다”고 밝혔다.

한 예로 학술지 홈페이지에 실린 논문의 경우 임의로 내리거나 수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출판윤리 위반자의 것에는 상단에 취소된 논문이라는 문구를 삽입하게 돼 있다.

출판윤리의식 고취·연구 질적 성장 중요

이는 부정행위자라는 불명예를 안게 되는 것 뿐만 아니라 지울 수 없는 큰 오점을 연구인생 내내 짊어져야만 하는 것이다. 특히 대학별로 교수업적평가 시행이 보편화되는 추세인 가운데 SCI급을 포함해 논문의 질적 경쟁이 예고되고 있어 출판윤리 등에 각별한 의식이 보다 중요해질 것이란 전망이다.

지방 소재 한 의대 교수는 “논문에 대한 부담이 커진다 해도 교수들은 그 추세에 맞춰야 할 것이다. 다만 진료와 연구교수 등을 분리해 그 짐을 줄이고 부정행위 환경을 보다 개선하는 등 논문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방향의 변화도 고려할만 한 것 같다”고 역설했다.

이에 대해 의편협 배종우 간사는 “가이드라인이 발표된 후 각 학회와 연구 현장에 이 내용을 전파, 대한의학회의 출판윤리준수 선언이 이어지는 등 2006년 이후에는 이중게재 등 부정행위가 줄어들었을 것으로 예상한다”면서 “의편협에서 진행 중인 실태조사와 더불어 내년 초 사례집 발간 역시 준비하고 있다. 보다 나은 연구 환경을 위해 의학계 전반이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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