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논문 중복게재 등 의학계 자정노력 강화
솜방망이 처벌이 불법적 관행 키워…출판 윤리 정립 등 시급
2013.07.18 12:23 댓글쓰기

의학계 자정 노력은 이어지고 있지만 솜방망이 처벌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숙제로 남는다.


대한의학회의 경우 부정행위가 확인되면 게재 취소는 물론이고 데이터베이스에서 해당 논문 삭제, 향후 5년간 투고 금지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학회 홈페이지 및 연구 부정행위 판정 후 처음으로 발간되는 ‘의사학’에 해당 내용을 공시하고 부정행위자 소속기관과 학술진흥재단에 관련 내용을 알리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조치가 너무 가볍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도 점점 표절 등 부정행위를 저작권 등을 침해한 범죄로 인식하게 되면서 이 같은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의학계는 학문 특성상 내부 결집력이 강하다. 출신 학교, 활동 학회 등으로 촘촘한 인적 네트워크가 짜여 있다. 잘못에 대한 처벌을 내부에서 하기 어려운 조직 구조인 셈이다.


이 사안에 대해 한 교수는 ‘징계권자의 자격’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징계를 결정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연륜이 있다. 그 분들의 경우 젊었을 때 지금의 표절이나 중복게재를 별다른 의식 없이 해왔다. 지금 후배들을 이 같은 이유로 징계하기 어려울 것이다”라고 말했다.


실제 황우석 사건 직후인 2006년 서울대학교 왕규창 의과대학 학장은 “2006년 7월 이전에 일어난 표절이나 중복게재를 문제 삼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는 이전 문제까지 추적할 시 생기는 혼란을 방지함과 동시에 이후 생기는 문제에 대해서는 엄중한 책임을 묻겠다는 의료계의 과거와 현재를 모두 고려한 선언이었다.


한 교수에 따르면 그 후 실제 여러 사람이 표절이나 중복게재 등의 문제로 중징계까지는 아니지만 교육 등의 징계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홍 부회장은 “아직은 과도기라고 본다. 출판 윤리가 정립되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 동안 외부 조직인 의편협에서 공신력 있는 의견을 제공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논문 표절의 근본적인 원인은 학력이 스펙인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논문 표절 문제가 대두되자 학력 세탁용으로 이용되는 특수대학원을 없애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의사 사회에서도 학력이 스펙으로 작용하는 것은 별반 다르지 않다. 일반적으로 석·박사 학위는 대학병원에 있을 생각이 있는 의사들이 주로 밟는 코스였다. 박사 학위는 더욱 그렇다.


요즘은 좋은 스펙을 쌓기 위해 학위 코스를 밟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학위를 받으면 좀 더 다양하고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믿음에서다.


단적인 예로, 최근에는 개원을 계획하는 의사조차 학위를 따기 위해 뛰어든다. 개원 시 병원에 걸어놓을 프로필에 ‘○○의과대학 ○○학위 취득’이란 한 줄을 넣기 위해서다.


또 이것을 미래를 위한 투자로 여기고 있다. 수술이나 진료를 아무리 잘해도 박사 학위 없이 대학병원 교수가 될 수 없는 사회에서 겪는 부침이다.


석사 학위를 딴 한 개원의는 “레지던트 생활을 하면서 대학원을 등록하면 수업도 제대로 못 듣고 대리 출석하는 경우도 많다. 사실 수업 듣는 것 자체가 큰 의미가 없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또 최근 7년에 걸쳐 박사 학위를 딴 또 다른 개원의는 “의학논문은 주제의 참신성 등이 고려돼 논문을 표절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바쁜 생활 속 논문을 써야해 표절 유혹에 끊임없이 흔들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나만해도 그랬다”며 소회를 털어놨다.

 

논문심사 교수에 전적으로 맡겨진 검증


서울대학교대학원 의학과 석·박사학위 논문심사 내규를 살펴보면 논문 제출자의 자격, 논문 심사 절차 등이 규정돼 있다.


석사의 경우 논문심사위원은 지도교수가 심사위원 4명 이상을 대학(원)장에게 추천하도록 돼 있다. 각 대학원 학사위원회에서 위원장, 부위원장, 위원으로 구성된 3명 이상의 심사위원을 선정하되 해당 학생의 지도교수는 심사위원장이 될 수 없도록 했다.


또 각 심사위원의 자격을 명시했고, 1명의 심사위원에 심사대항자가 편중되지 않도록 심사위원을 선정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고 있다.


논문 심사의 공정성을 기하기 위한 나름의 노력이 배어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어디에도 학위 논문의 표절이나 조작에 대한 심의 규정은 찾아볼 수 없다.


확인 결과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은 물론이고 서울대도 학위 논문에 대한 표절 검증 자체를 하지 않고 있었다.
대신 논문을 낸 학생으로부터 연구윤리준수확인서를 받고, 제보가 들어올 시 2006년 만들어진 연구진실성위원회를 열어 이를 검토한다.


한 서울대 관계자는 “제보가 들어오지 않는 이상 연구진실성위원회가 연구 결과물에 대해 직권으로 검증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고 답했다.


이러한 실정은 비단 서울대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는 2013년 교육부가 전국의 4년제 대학·전문대 등 253곳을 대상으로 ‘연구윤리 감시시스템 운영실태’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알 수 있다.


조사 결과, 논문 표절 검증 프로그램인 카피킬러, 턴잇인 등을 도입한 대학이 11.5%인 29곳에 그쳤고 이를 학위 논문에 적용하는 곳은 12곳에 불과했다.


결국 학위논문 표절 검증은 논문 심사를 맡은 심사위원 손에 달린 것이다. 그렇다면 논문을 심사하는 교수들은 표절 검증을 철저하게 하고 있을까.


우선 논문 표절에 대한 기준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교육부는 2007년 ‘논문 표절 가이드라인’을 완성했다.

논문은 ▲여섯 단어 이상의 연쇄 표현이 일치하는 경우 ▲생각의 단위가 되는 명제 또는 데이터가 동일하거나 유사한 경우 ▲타인의 창작물을 자기 것처럼 이용하는 경우 표절로 간주될 수 있다.


서울대에서 심사위원으로 다년간 활동한 한 의과대학 교수는 “학위 논문에서 표절 여부를 확인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논문 심사는 내용을 보고 가설에 맞게 증명했는지 등 논문 시각을 평가하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교수들이 표절 여부를 알 방법이 없다. 1년에 10편 이상의 논문을 심사하는데 참고문헌 등을 확인하면 다른 일을 전혀 못할 것이다”라고 토로했다.


이어 “학위 논문 심사 강화 차원에서 논문과 실험 노트를 확인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 역시 근본적인 방안은 아니다. 실험 노트를 조작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그는 “표절 확인 프로그램을 돌리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다. 기본적으로 학생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심사에 임한다”고 강조했다.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는 “학위 논문을 ‘세심’하게 들여다보면 표절 여부를 알 수 있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그 역시 신뢰를 강조했다.


그는 “관련 연구를 하고, 또 논문 지도를 하다보면 표절 여부를 알 수 있다. 다만, 이는 세심하게 들여다봤을 때 얘기다”라고 전했다.


이어 “조금씩 강화해 나갈 예정이기는 하지만 모든 논문을 대상으로 표절 검증을 하지는 않는다. 기본적으로 신뢰를 바탕으로 심사한다”고 밝혔다.

 

표절 근절 방안, 관리 강화 or 제도 개편


학위 논문 표절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는 방안으로 가장 고려되는 것은 ‘표절 확인 프로그램’ 도입이다.


영미권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표절 검색 프로그램은 ‘턴잇인(Turn it in)'이다. 이 프로그램은 미국 UC버클리대학 학생들이 처음 개발했다.


논문 등을 올리면 몇 십 초만에 영어·한국어 등 15개 언어로 된 전세계 11만개 학술지에 실린 기존 학위논문 1억2000만건, 학생 리포트 3억건, 인터넷 페이지 240억건과 대조해 표절 의심 부분을 뽑아낸다.


하버드대학 등 전세계 100위권 대학 중 70%와 영국의 대학 98%가 이 서비스를 유료로 이용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카이스트·포스텍 등 12개 대학이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하지만 서울대 강대희 의과대학장은 이 프로그램 도입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다. 비슷한 실험 방법과 도구 등을 쓰는 의과대학 논문의 표절 검증에는 별 도움이 안 된다는 판단이다.


대신 그는 논문이 필요 없는 학위제를 제안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한 개념이지만 실제로 많은 외국대학에서는 석사 학위 논문을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보고 있다.


학점을 추가 이수하고 졸업 시험을 통과하는 방식으로 논문을 작성하지 않고 석사 학위를 취득하는 것이다.
강 학장은 “의과대학은 특수성이 있으니 전공의 자격을 얻고 3년 등 일정 기간이 지나면 박사학위에 준한 자격을 부여하는 제도 등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댓글 0
답변 글쓰기
0 / 2000
메디라이프 + More
e-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