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의원 출입금지 영업사원들 '시(時)테크'
예전 비해 시간적 여유…기존 활동 패러다임 변화 추세
2013.04.15 18:53 댓글쓰기

거래처 재방문·약국 탐색 등…병원 외부서 의사 만나기도


의료계의 제약사 영업사원 ‘병·의원 출입금지령’ 파장이 수그러들 기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제약업계의 기존 영업 활동 패러다임이 조금씩 변화되는 모습이다. “아직 대다수 개원가 움직임으로 번질 만큼 여파는 크지 않지만 ‘출입 금지’ 팻말을 내건 개원의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


한 영업사원은 한탄의 목소리를 내뱉었다. 차라리 병원보다 외부에서 보자는 의사들의 목소리도 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동안 쌓여온 인간관계 때문에 만남을 갑자기 단절하긴 어려운데다 환자들의 시선을 의식해서 내린 차선택이었다. 하루 동안 다니는 거래처들의 ‘출입 금지령’에 발길을 돌리며 갈 곳 없는 신세가 돼버린 영업사원들은 기존 활동 방식과는 다른 그들만의 생존법을 찾고 있었다.


이러한 사태는 회사 입장에서도 점점 부담으로 다가온다. 거래처 출입금지에 따른 공백 시간에 그들이 선택한 일은 무엇일까.

 

“병·의원 출입금지 수위 갈수록 높아지는 느낌”


국내 상위 A 제약사 영업사원의 말이다. 실제 이 회사 전체 서울지역 영업지점 거래처들의 상황을 살펴보면 개원의 중 5% 정도가 적극적으로 영업사원 출입을 금지하고 있었다.


의료계 자정선언 이후 신규 거래처를 뚫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기존 거래해온 제약사들도 접촉이 어려운 상황에서 그렇지 않은 회사들에게 의료계의 ‘방문금지’ 목소리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A사 관계자는 “개원가의 반응을 보면 현재로선 생각보다 심각하지 않지만, 갈수록 강도가 세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영업사원을 만나지 않겠다고 못 박은 거래처 수만 현재 5%에 달한다. 점점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특히 전국의사총연합회(이하 전의총)는 훨씬 적극적으로 영업사원 출금 행보를 이어가는 모습이다.

올 초 국내 D제약사의 대형 리베이트 사건 수사 결과가 나오면서 대한의사협회가 자정선언과 함께 영업사원 출입금지를 선포한 가운데 전의총은 해당 제약사 제품의 불매운동에 나섰다. 


지난 3월 14일 전의총 김성원 대표는 ‘처방약 중 D사 제품을 환자에게 더 좋은 약으로 처방’, ‘수련받은 의국에도 이를 설득’ 등의 구체적인 불매운동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영업사원들의 기존 업무 패러다임이 조금씩 바뀔 수 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갑자기 출입금지를 내건 거래처가 있는 경우 그 방문 시간은 공백이 돼버리기 때문에 기존 실적을 메우기 위해서라도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들의 선택은 현 상황에 관대한 거래처를 한 번 더 방문한다거나, 약국을 자주 찾는 것이다. 또한 신규 개원한 곳을 평소보다 많이 가보는 방법도 있다.


이 관계자는 “시간이 남는다고 해서 소위 ‘땡땡이’를 치지는 않는다. 원래 업무 태만이었던 사람들은 영업사원 출입금지와 상관없이 비는 시간에 논다. 그러나 보통은 이러한 시간을 쪼개서 잘 활용하려 한다. 영업사원에겐 실적이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비는 시간 동안 같은 곳을 한 번 더 가는 경우가 많다. 얼굴을 한 번이라도 더 비쳐 관계를 쌓아올리기 위해서다. 약국에 가는 것도 중요하다. 내 거래처가 처방한 약들이 조제되는 약국이야 말로 정보의 바다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구체적으로 그는 “약국을 통해 우리 회사 약이 얼마나 처방되고 있는 지 파악할 수 있을뿐더러 부작용이 있는 환자들이 약국을 먼저 찾는 경우가 많아 이러한 정보를 모아 원장님들에게 알려드린다. 영업사원들은 이 때 의원과 약국을 이어주는 정보통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간이 남는 경우 비거래처였던 곳을 많이 방문한다. 직접 원장님과 대화하기 어렵거나, 환자들이 많을 경우 간호사와 대화를 많이 나누며 친분을 쌓는다. 그러다 내 거래처가 된다면 이보다 기쁜 일은 없지 않은가”라고 덧붙였다.

 

의료기관 밖에서 점심식사…등산·마라톤까지


B사 영업사원의 경우 병원 방문을 자제해달라는 원장과 외부에서 따로 만나는 방법을 선택하고 있었다. 다만 병원 방문이 아닌 만큼 매일 외부에서 만날 수는 없기 때문에 최대한 친분을 쌓을 수 있는 점심식사나 등산, 테니스 등을 함께 하며 시간을 보낸다.


이 영업사원은 “병원 내부에서 만남 자체를 꺼려하시는 원장님들의 경우 등산을 하거나, 테니스를 치는 분들이 있다. 그 때 함께 하는 것이다. 원장님들도 혼자하지 않아 좋아한다. 어떤 분은 마라톤을 좋아해서 그때마다 꼭 불러달라고 한다. 주중엔 주로 함께 점심식사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이렇게 친분을 쌓아가면서도 업무시간에 남는 시간은 ‘공부’를 하며 보낸다. 예컨대, 내과 의사들의 경우 통증과 관련해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싶어한다. 이 부분에 대한 책을 미리 가져와서 공부를 하고 방문 시 알려드리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아직까지 의료계의 자정선언이 먼 나라 얘기같다는 영업사원도 있다. C사 영업사원에 따르면 아직까지 병원을 찾아오지 말라고 한 원장이 아무도 없었다. 그의 동료도 마찬가지라는 설명이다.


그는 “현재까지 출입금지를 선포한 분들이 아무도 없다. 주변 동료들도 마찬가지더라. 우리 회사의 경우 영업용 ‘PDA’ 기기가 회사에서 지급돼 각자 거래처로 이동할 때마다 PDA를 통해 위치 파악이 된다. 그렇다고 꼼꼼히 거래처를 가는지 확인하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중요한 것은 실적이기 때문에 이 영업사원이 낮에 무슨 일을 하든 깊게 관여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는 “결국엔 실적만 좋으면 되는 것”이라며 “혹시 나중에 출입금지를 내린 병원이 생겨서 우리가 지금보다 공백 시간이 늘더라도 각자 실적을 좋게 하기 위해 나름의 노력은 하겠지만 달리질 부분은 없을 듯 하다”고 말했다. 


D사 영업사원도 “아직 방문을 금지하는 곳은 없다. 다만 여기저기 출입금지가 이뤄지고 있다는 얘기는 듣고 있을 뿐 소문인지 사실인지는 파악이 안 된다”고 밝혔다.


그는 “아무래도 현재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서로 의식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때문에 심적 압박감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E사 임원은 “우리 회사의 경우 개원가로부터 특별히 제한을 받고 있지 않다. 최근 리베이트 사건에 연루된 회사들이 영업사원 출입금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정상적인 영업활동까지 제한할 필요가 있을까. 리베이트를 자신들이 안 받으면 되는 것 아닌가. 출금 자체는 분명 문제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제약사 “병원에 꼭 필요한 영업사원 만들기 총력”


최근 이러한 업계 환경 변화 때문에 회사 자체도 영업사원들 역할에 대해 고민이 많은 모습이다.


F사 관계자는 “출입금지만을 놓고 봤을 때 당연히 기분이 나쁠 수 밖에 없다. 제약사 직원들은 학력을 포함한 스펙이 상당하다. 이렇게 매판원 취급을 받는 상황에선 자괴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특히 신입사원들일 수록 가족들이 봤을 때 과연 내 아들이 무슨 일을 하는 것인가라는 의구심이 들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몇몇 회사들은 업계에 반드시 필요한 영업사원을 만들고자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 관계자는 “이제는 리베이트가 아닌 정말 의사 고객들에게 필요한 존재가 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려고 하고 있다. 직원들의 학술 수준을 높이고 병원 경영에 가치를 줄 수 있도록 회사에서 각 영업사원들의 재능을 키우고자 관련 프로그램들을 구상 중이다. 영업사원들은 앞으로 그 재능을 각 병원에 기부하게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G사는 이미 그러한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영업사원 학술 및 커뮤니케이션 능력 향상을 위한 맞춤형 교육이다. 이 회사는 지난 2월 초부터 ‘이수/비이수’ 형태의 영업사원 주말 교육을 시작했다.


G사 관계자는 “금, 토요일 1박2일 간 4~5회 정도 교육이 시행됐다. 기존에도 기본 교육이 있었지만 이번에 더 확대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회사 내부적으로도 의료계의 필요 존재가 되기 위한 전략을 짜보라는 공지도 내려왔다. 과거와는 확실히 달라진 분위기”라고 덧붙였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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