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동의서 '무용지물'…궁지 몰리는 '의사들'
자기결정권 침해 판결 잇따라…“사전 충분한 정보 전달해야”
2016.02.14 20:00 댓글쓰기

환자의 수술 선택권을 엄격히 보호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 법원이 ‘자기 결정권’을 들어 환자의 편에 서면서 의사가 수술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소송에서 지는 현상이 늘고 있다. 


 

S대학교병원 부속 B병원은 최근 손해배상 소송에서 설명의무를 위반한 사실 때문에 패소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제18민사부는 고인 최모씨의 유가족이 B병원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S대병원을 운영하는 학교법인 D학원은 소송 수계인인 두 자녀에게 각 5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건강검진을 통해 무증상 담낭 및 담석이 발견된 최씨는 B병원에서 내시경 역행 췌담관 조영술(ERCP)를 받은 후 사망했다.


 

의료진이 미다졸람, 페치딘(마약성진통제), 프로포폴 투여 후 시술을 진행하던 중 활력징후 및 산소포화도가 급격히 떨어져 심정지가 발생했고, 심폐소생술 후 일시적으로 심장이 뛰었으나 저산소성 뇌손상을 입었다.


 

이후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 적용, 저체온요법 등 지속적인 집중 치료가 시행됐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사망했다. 


 

고인 측은 ▲마취약물 투약과정의 과실 ▲응급상황 대처 소홀 ▲시술 및 마취 필요성, 방법, 부작용 등에 대한 상세 설명 소홀 등의 이유를 들어 6250만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일단 의료진의 과실은 인정되지 않았다. 법원은 적절한 방법에 따라 적정 용량의 약물이 투여됐고, 환자 상태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 하는 등 응급조치도 제대로 이뤄졌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법원은 설명의무 위반 사실을 들어 환자의 손을 들어줬다. 미다졸람, 프로포폴 사용 시 마취 부작용이 발생할 위험성이 있음에도 상세하게 설명하지 않아 환자가 시술의 위험성 및 필요성을 충분히 검토해 볼 권리를 박탈했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설명 사실은 인정되지만 의료진이 고인에게 어떤 내용의 설명을 했고 얼마나 구체적이었는지 등은 알 수 없다”며 “또한 사건기록에는 의료진이 고인으로부터 동의서 등을 받았음을 인정할 만한 아무런 자료가 없다”고 판시했다.


 

Y병원 강동점을 운영하는 의사 김씨와 같은 병원 강남점을 운영하는 의사 고씨도 환자에게 구체적인 설명을 하지 않아 소송에서 졌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제18민사부는 환자 하모씨가 두 의사를 상대로 낸 1억4704만원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의사 김씨에게는 1000만원을, 고씨에게는 200만원 배상을 명했다.


 

퇴행성관절염 진단을 받은 환자 하씨는 김씨로부터 무릎연골자가배양이식술 및 고위경골절수술을 받았다.


 

환자는 1차 수술 직후 극심한 통증으로 마약성 진통제를 투여 받고 퇴원했다. 이후 6주 동안 목발 및 석고붕대를 하며 재활 치료를 받았으나 잘 걷지 못했고 통증은 계속됐다. 


 

다른 대학병원에 내원해 핵의학검사를 받은 환자는 추가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소견을 들었다. 김씨에게 이 같은 사실을 알렸지만 추가검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환자는 제대로 걷지 못하고 통증이 지속되자 이번에는 Y병원 강남점을 찾았다. 의사 고씨는 MRI검사 후 '정강이뼈 핀 박은 부위가 골절돼 금이 가서 골막에 문제가 있다. 계속 피가 나와 뼈에 붙어 신경을 눌러 아픈 것'이라는 취지의 소견을 냈다.


 

고씨로부터 정강이 골막을 제거하는 골막절제술 및 연골성형술을 받았으나 통증 및 보행 장애는 계속됐다. 3차로 골막절제술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환자는 현재 20분 이상은 걸을 수 없으며 우측 슬관절 퇴행성 관절염이 발병했다.


 

김씨와 고씨도 의료과실 책임은 면했다. 하지만 환자의 자기 결정권을 침해한 책임에서는 자유롭지 못했다.


 

재판부는 “1차 수술을 시행한 김씨가 받은 수술 동의서에는 '본인과 본인에 대한 수술, 마취, 검사의 필요성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며 예상 또는 합병증과 후유증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는 취지의 일반적인 내용만이 기재돼 있을 뿐 수술에 관한 내용은 전혀 나타나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또한 위 청약서마저 환자 본인이 아닌 남편이 서명, 날인했을 뿐이고 1차 수술을 시행함에 있어 위 수술과 관련된 부작용, 이후 경과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했다고 인정할 만한 아무런 자료가 없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2, 3차 수술을 시행한 고씨 역시 수술 필요성 및 방법, 부작용 등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았고, 동의서 또한 남편에게 받았다”면서 “수설명의무 위반 정도에 따라 각각 1000만원과 200만원을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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