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당직비 어디에' 속앓이 하는 전공의들
2010.07.05 03:33 댓글쓰기
●● 전공의 당직비는 눈먼 돈?

A대학병원 정신과 레지던트 K모씨는 지난 해를 회상했다. 1년차였던 그가 한 달에 15번 당직을 섰으니 반절은 집이 아닌 병원에서 지냈다. 주말도 한 번밖에 쉬질 못 했고, 휴식이라봐야 병원 반경 5분 거리를 ‘구경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그의 손에 쥐어진 당직비는 한푼도 없었다.

K씨는 “병원에서 각 과별로 의국비가 주어진다. 우리 과는 한달에 30만원 정도가 주어졌는데 교수님이 관리했다. 교수님은 의국 회식이 있을 때 사용할 것이고, 필요한 물품은 언제든지 사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정작 어디에, 어떻게 쓰여지는지 알 수 없는 돈이 바로 당직비였다”고 고개를 떨궜다. A대학병원에서는 당직비와 의국비가 과별로 지급된다. 의국에 일괄 지급하고 의국 통장을 통해 총무가 나눠주는 형태다. 그런데 의국비라는 것이 턱없이 부족하다 보니 당직비가 의국비로 충당되는 일이 발생한다.

문제는 그 중간 과정에서 돈의 용처가 묘연하다는 점이다. K씨는 “지금이야 '리베이트 정책'으로 인해 제약회사들의 지원이 끊긴 상태지만 당시만 해도 의국 회식이다 뭐다 하면 제약회사들이 지원을 해줬기 때문에 교수님이 우리들의 당직비를 관리한다는 것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당직비가 100% 투명하게 운영된다고 보기 어려운 대목이다. 하지만 전공의들은 ‘굳이’ 나서서 당직비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따져 묻지 않는다. 정당한 노동을 하고도 그에 따르는 대가에 대해서는 ‘행방’을 모르는 것이 당연시 되어 버렸다.

경기도 B대학병원 내과 레지던트 L모씨는 “그 동안의 관행이라 아무도 문제 제기를 하지 않는다. 아니, 못 한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 오히려 외과, 흉부외과 전공의들이 비교적 정확히 지급받을 수도 있겠다. 안과, 피부과, 정신과 등 주로 마이너과들에서는 교수 입김이 상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 의국비로 둔갑한 당직비도 ‘천차만별’

대한전공의협의회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전공의들의 당직비는 日 1만원부터 4만원까지, 月 1만원부터 70만원까지 천차만별로 드러났다. 일부 병원에서는 아예 당직비 자체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전공의협의회는 “삼성서울병원의 경우 월 60만원에서 70만원 정도로 비교적 높게 나타난 반면 일부 대학병원에서는 당직비 자체가 지급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는 전공의들의 부당한 대우와도 무관하지 않다. A대학병원 김모씨는 한 마디로 “교수가 원하는 레지던트가 돼야 한다”고 잘라 말한다. 간혹 어떤 교수들은 레지던트를 비서처럼 부려 먹는다. 심지어 과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교수님’을 모실려면 차를 구입해야 한다는 것이 공식이다. 그것도 두 짝 달린 문은 절대 안되고 꼭 네 짝 달린 문이어야 한다.

K씨는 “전공의를 정말 값싼 노동력 정도로 밖에 여기지 않는 것 같아 씁쓸하다. 간호사는 정규직이지만 레지던트는 비정규직이나 임시직이라 그런가. 24시간 당직을 서봐야 시급으로 치면 2~3000원”이라고 말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당직비를 의국 운영 목적에 쓰이는지 아니면 ‘비공식적’인 루트로 흘러가는지 그 쓰임새에 대해서도 알 길이 없다는 것이다. C대학병원 한 전공의는 “실제로 어디에 쓰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따져묻지 않는다. 더러는 전공의들 자체가 당직비를 정식 월급이 아니라고 인식하고 있어 어디에 쓰는지 그 내용은 알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D대학병원 정신과 레지던트 L모씨도 “며칠 밤을 꼬박 새서 일한 대가로 받은 당직비가 고스란히 의국비로 사용되고 있다. 처음에는 당황스럽고 억울했지만 곧 얘기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님을 알고 자괴감에 빠져 들었다”고 토로했다. 이어 그는 “교수들에게 얘기하면 행여 진로에 악영향을 줄 것 같아 어필할 수도 없는 처지”라면서 “더욱이 도제식으로 이뤄지고 있는 현재 수련 교육 제도 하에서는 감히 스승에게 ‘그까짓’ 당직비를 운운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 입국비 100만원·당직비도 당연히…

소위 인기과로 불리는 과에서 ‘찜’ 당한 전공의들일수록 더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일종의 인사 치레인 입국비로 A씨는 200만원을 냈다고 했다. 당연한 것이라 여겼고, 그 동안 관행적으로 그렇게 해왔기 때문에 크게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들어온 만큼 입국비, 당직비를 고스란히 내면서도 당위성은 더 강해지는 거다. 때문에 자본의 입장에서 인턴, 레지던트의 존재는 매력적이다.

그는 “일단 인턴들이 하는 일들은 대개의 경우 따로 사람을 고용해서도 가능한 일이다. 어차피 전공의 제도가 존재하는 한 병원 자본의 관점에서는 그 실행 주체가 모호한 일들을 모두 전공의에게 몰아주면 그만인 것”이라고 자조섞인 얘기를 털어놓았다. 전공의로부터 거둬들인 돈을 교수들이 쌈지돈처럼 쓴 정황들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고 했다. 당직비 사용 내역이 투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턴은 1년이 지나면 끝이나니 호봉을 올려줄 필요도 없고 노조와의 관계도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또한 파견이란 명목으로 인턴들로 하여금 실제적인 수익을 올리게 만들 수도 있다. 대개 인턴을 뽑을 정도의 규모는 되지만 레지던트 수련을 하기에는 부족한 2차 병원들의 TO를 가지고 와서 인턴들을 파견 보낸다. 파견기간 동안 월급은 파견 병원에서 지불하는데 실제 지불하는 돈보다 훨씬 적은 돈을 받게 된다. K씨는 “당직비 혹은 파견 보너스 명목으로 나오는 돈들은 모병원이 삼켜버리는 일이 흔하게 발생한다”면서 “물론 선심쓰듯이 조금 돈을 더 얹어주는 병원도 있지만 차비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 피해사례 접수한 서울시의사회

물론 그 동안 후배 의사들이 받고 있는 부당한 대우에 선배 의사들이 두 손 놓고 있었던 것만은 아니다. 지난 2006년, 교수들도 교수들이지만 전공의 당직비 미지급 병원에 대한 불만이 곳곳에서 터지자 서울시의사회가 피해 사례를 접수한 바 있다.
당직 의사들의 임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병원에 대해서는 의료계 자체적으로 뭇매를 때리겠다는 의지였다. 당시 의사회는 응급실 당직의들의 임금을 상시로 체불하고 심지어 지급 거절하는 사례가 빈번했던 상황을 인지하고 이를 뿌리뽑기 위해 나섰던 것이다.

응급실 당직의 대부분이 전공의들로 신분상 약점에 발목이 잡혔으며 임금을 받지 못하더라도 노동부에 제소하는 등의 강력한 대처를 할 수 없었던 실정이었다. 지불 능력이 충분함에도 불성실하게 또는 고의로 지불을 미루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당시 추진 배경에 따르면 “무엇보다 임금 우선 지불은 경영 윤리상 당연한 일이며 더욱이 동료 의사들의 노고에 성실히 보답하는 것은 의료계의 철칙인데 예전부터 당직비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일부 병원들의 비도덕적 행위에 대한 민원이 끊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움직임만으로는 약발이 먹히지 않았을까. 서울시의사회 관계자는 “지금은 집행부가 바뀌면서 많은 정책들이 변경됐고 현재는 전공의 당직비와 관련한 피해 사례 접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분명 문제의 병원들에게 적잖은 부담을 지우겠다는 것이 당초 계획이었지만 의사회가 사법기관이 아니라는 점에서 한계에 봉착했기 때문으로 보여진다. 만약 신분상 제약이 있는 전공의들의 경우 병원 단위의 전공의협의회 또는 중앙 조직을 통해 민원을 접수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지방의 중소병원에서 수련을 받고 있는 한 전공의는 “귀찮다. 피곤하고, 쉬고 싶다. 어차피 바뀌지도 않을 것이라면 굳이 총대를 메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더불어 그는 “앞으로 전문의를 따면 취직도 해야하고 교수라도 할라치면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교수들이 원하는 레지던트로 사는 것이 가장 현명할 지도 모른다”며 씁쓸해 했다.

[위 내용은 데일리메디 오프라인 여름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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