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일방적 불공정행위, 치외법권인가?'
허대석 교수, 포괄수가·응급실당직 등 쓴소리…'무책임 행정, 피해는 국민'
2012.07.09 11:52 댓글쓰기

"저임금의 전공의들이 밤낮과 휴일없이 일하고 전문의들은 제한된 시간 내 가능한 많은 환자를 보게 하고 있다. 그나마 가까스로 유지되고 있는 대형병원들도 극한 상황에 도달했다."

 

9일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내과학교실 허대석 교수는 대한의사협회 게시판을 통해 최근 포괄수가제 확대 시행 및 응급실 당직법 등 일련의 보건의료 정책에 대해 쓴 소리를 던졌다.

 

허 교수는 "대통령 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정부는 포괄수가제와 응급의료법 개정안 등 국민복지 향상을 위한 의료정책의 시행을 서두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서 "그러나 추가로 발생하게 될 비용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허 교수는 "정부가 국민들에게 더 나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새로운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서비스 확대에 수반되는 비용에 대해서 정책입안자들이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응급실 당직을 전문의가 서게 하는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을 그 사례로 들었다.

 

허대석 교수는 "무엇보다 응급진료와 관련된 수가가 대폭 인상돼야 하지만 그런 논의나 대책은 전혀 없고 병원이 알아서 해결하도록 하니 '전화당직'이라는 기형적인 형태로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의료문제의 상당 부분은 저수가 정책에 근본 원인이 있다고 짚었다.

 

허대석 교수는 "국민의 건강과 직결되는 필수의료와 관련된 의료서비스 수가가 원가에 미치지 못하고 있음을 정부도 인정하면서 강제 적용을 하고 있는 곳은 우리나라가 세계에 유일하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정책에 관한 독점적 권한을 가진 정부가 의료기관에게 원가이하의 수가로 의료서비스를 공급하도록 강제하는 건강보험은 '자기의 거래상의 지위를 부당하게 이용하여 상대방과 거래하는 행위'를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불공정거래행위이지만 의료는 치외법권지역에 있는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는 것이다.
 
허대석 교수는 "그 동안 병원과 의사들은 제한된 시간 내 많은 환자를 진료하거나 비급여 진료를 통해 손실을 보전해왔으나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면서 "그로 인한 여러 가지 부작용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례로 건강보험수가로는 원가보전이 어려워 병상당 매년 5000만원 이상의 적자가 발생하는 신생아 집중치료실을 대부분의 병원이 폐쇄했다.

 

또 원가에 미치지 못하는 출산비용으로 분만실을 유지하다가 한 번의 의료분쟁라도 발생하면 신용불량자가 될 수밖에 없는 산부인과 개원의들은 출산과 관련 없는 부인과 진료만 하고 있는 실정이다.

 

허 교수는 "환자를 병원이나 의사로부터 시혜를 받아야할 대상으로 보는 구시대적 관점으로 의료제도를 계속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저수가 정책의 주 대상인 필수의료나 중증환자를 진료해야하는 분야는 젊은 의사들이 지원을 기피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성형수술을 하는 의사는 넘쳐날지 모르나 응급 심장수술을 위해 외국인 의사를 수입해야 할 상황이 곧 오지 않을까 우려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내년부터 7개 질환군에 대한 포괄수가제가 모든 의료기관에 적용되는 것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허대석 교수는 "동일 상병이라도 중증환자들을 주로 수용해 왔던 대형병원들이 비슷한 수가로 해당 환자를 진료하기 위해서는 큰 손실이 불가피하다"며 "암과 같은 복잡한 질환까지 확대해 나간다면 상황은 더욱 어려워진다"고 내다봤다.

 

그는 이어 "비용을 지불해야 물건과 서비스를 살 수 있는 경제법칙이 의료분야라고 예외가 될 수 없다"며 "추가적인 재정수요에 대한 대책도 없이 의료서비스에 대한 복지를 지속적으로 늘리면서 그 비용을 의료기관에게 전가해오던 관행을 계속한다면, 결국 무책임한 정책의 부메랑은 국민을 향해 날아올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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